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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며 살며

월봉기 필사본

by Дона 2023. 5. 6.

중국 명나라 시대 한문 소설 한글 필사본


월봉기 권지일

대명 성화 연간에 태주성에 한 명부가 있으되, 성은 소요 명은 윤이라. 전조 이부상서 한경의 아들이요, 공열후 현성의 후라. 일찍 부친을 여의고 모친 장씨와 아우 위로 더불어 슬하(膝下)에 봉양(奉養)하니, 인인 상하 그 효성을 일컫더라. 소윤의 나이 이십에 당하여 행시에 삐이여(뽑히어) 회시에 오르니, 특별히 그 학문을 전강하시고 이조로 금하부 난계 현령을 제수하시고 부임을 재촉하니 마지 못하여 길을 떠나려 할 새(때), 대부인을 위하여 중당에 잔치를 배설하고 친히 잔을 들어 헌수(獻酬)하고, 모친을 위하여 낙춘방이라 하는 가사를 지어 제문고에 올리고 부인을 위로하고, 아우 위의 손을 잡고 왈(曰 말하길), "나는 몸을 나라에 허하였기 집에 오래 머물지 못하기로 오늘날 모친 슬하를 떠나니, 현제(賢弟)는 불초한 형의 이를 본받지 말고 혼정신성지절(昏定晨省之節 효도심)과 가중 범백사(家中凡百事)를 부지런히 하라. 내 수이(얼른) 돌아와 사례하리라." 한대(하니), 소위 대(대답) 왈, "가중사(집안 일)는 염려치 말으시고 해로 만리 위에 무사히 가옵소서. 치인을 잘하여 어진 일홈(이름)이 선조에 맺게 하옵고, 수이 돌아 오셔 모친 기다림을 덜게 하옵소서." 하고 인하여 대소(大笑)하며 우애하는 정이 비할 데 없더라. 술이 사오배 지나매 소위가 홀연 탄식하여 가로되(말하길), "인생이 비록 유한하오나, 형장은 해서산의 집을 생각하옵시어 수이 돌아오심을 바라나이다." 윤이 또한 비회(悲懷)를 금치 못하여 눈물을 흘려 이별하고 길을 떠날 새, 얼아의(두 노인) 소승 부처와 비복 이십여 인을 거느려 떠날 새, 정씨가 정당에 들어와 부인께 하직하니 부인이 새로이(새삼) 그 준골(덕행) 사랑하여 차마 떠나지 못하더니, 장 부인 왈, "현부(賢婦 어진 며느리)는 만리 행역에 귀체(貴體)를 내내 잘 보호하여 옥동을 낳아 수이 돌아와 나의 기다림을 위로하라." 정씨가 두 번 절하고 공경 왈, "존고(尊姑 시어머니)는 성체(聖體)를 안보하옵셔 불초한 윤의 부처를 생각 말으소서, 수이 돌아오리이다." 언파에(말을 끝내고) 육씨를 이별할 새, "낭자는 존고를 모시고 내내 안녕하심을 바라나이다." 언필에(말을 마치고) 육씨가 절하여 하직하고 왈, "형은 존당을 염려치 말고 만리 행로에 옥체(玉體)를 보중하와 수이 돌아오옵소서." 인하여(이어서) 서로 연연하다가, 덩(가마)에 들어 발행한지 일삭(一朔 한 달) 만에 동정군 산을 넘어 상강을 지나 광능에 당하니 이 땅은 전국서로라. 우순(虞舜 순임금)이 남으로 순수하사 창오야에 붕하시니 이비(二妃) 아황(娥皇), 여영(女英)이 상강가에 울어 눈물을 뿌려 대(대나무)잎이 젖었으니 이른바 소상반죽이라. 구의산 구름 나고 동정호에 달 밝고 소상강 밤 비 오고 황능묘 두견 울 제, 무심한 과객이라도 한숨 짓고 돌아가니 진실로 단장지지라.

뜻밖에 광풍을 만나 능히 나아가지 못하여 행장을 육지에 내리우고 다른 배를 기다리더니, 이때에 오파구에 사는 서릉이라 하는 놈이 산동 왕상서댁 배를 가지고 강상에 왕래하는 행인의 재물과 부인의 자색(姿色)을 보면 가만히 유인하여 사람을 죽이고 재물을 노략하연지 이미 십여년이로되 사람이 몰라 능히 금치 못하였더니, 이때 난계 일행의 재물이 유려(流麗)하고 시비의 자색을 보고 물욕을 금치 못하여 나아가 소윤께 아뢰되, "이 행차는 어디로 가시는지 소인은 이 땅 사람이요, 배는 경성 왕상서댁 배라. 부중공문이 소소하옵고, 또한, 소인이 이 땅 수로를 능히 통달하오니 선가후박(뱃값의 후하고 박함)은 고사하고 일행을 무사히 모셔지이니다." 하거늘, 소윤이 가장 깃거(기뻐) 행장과 노복을 거느려 그 배에 올라 뱃줄을 끌러 놓으려 하더니, 문득 언덕으로서 한 사람이 급히 불러 왈, "그 배를 잠깐 머물라, 나도 한가지로 가리라." 하니, 서릉이 대 왈, "이제 관 행차를 모시고 절강으로 가느니, 이 배에 겻군(격군,곁군)이 많으니 그대는 구태여 오지 말고 집을 지키라, 수이(곧) 돌아오리라." 그 사람이 답 왈, "형장은 막지 말으소서, 나도 절강으로 다녀오리이다." 하고 몸을 솟아 뛰어오르니, 그 곧 서릉 동생 서룡이라. 천성이 어진지라, 그 형 서릉의 행악함을 마음에 불측하여 따라다니며 그 행악함을 죽기로서 구하더니, 이날 소지현 일행을 싣고 물에 듦을 보고 급히 올라 구하고자 함이라. 서릉이 마음에 아쳐(안 내켜)하나 마지못하여 막지 못하니라. 이날 배를 재촉하여 저희 굴혈(窟穴 본거지)에 대이고(닿고), 주효를 내어 겻군을 먹이고 이르되, "오늘 배에 실은 재물이 많거니와 장중에 든 부인의 자색을 보니 천하 국색이라, 절단코 취하여 나의 실가를 삼으리라." 하니, 서룡이 이 말을 듣고 참혹함을 이기지 못하여 내달아 형의 손을 잡고 간절히 빌어 왈, "형은 어찌 이런 말씀을 하나이까? 이 사람이 벼슬을 갈아 가면 보화도 있으려니와, 이제야 도임하오니 무슨 재물이 있사오며, 또한, 그 부인은 범상한 사람이 아니라 반드시 절(정절)을 지키어 죽을지라, 어찌 형을 섬기리까? 형은 이기(이렇게) 생각하소서." 서릉이 대로(大怒)하여 큰 칼을 들고 왈, "그대는 말리지 말라." 서룡이 또 가로되, "불과 살해인명뿐이라, 명명한 하늘과 소소한 일월이 굽어 살피심이 있느니, 형은 이기 생각하라." 서릉이 왈, "과연 재물을 탐함이리오? 다만 네 아즘(아지매)이 죽은 후로 가사를 맡길 곳이 없어 하더니, 오늘 이 사람을 만남은 하늘이 지시하심이라. 너는 고집되이 말리지 말라." 하니, 서룡이 다시금 일러 죽기로서 말린대(말리니), 조삼용 등이 서릉 형제 실란함을 보고 서릉을(에게) 가만히 눈(눈치)주어 가로되, "소장조 말이 진실로 옳은지라, 사람이 어찌 이런 행악을 하리오? 그대 비록 하고자 하나, 우리 등이 결단코 천지간의 이런 궁흉극악지사(窮凶極惡之事)를 행치 아니(않으)리라." 서릉이 그 뜻을 알고 도로혀(도리어) 보고 이르되, "난들 어찌 아우 말이 옳은 줄 모르리요마는, 그대 뜻이 이렇듯 착하니 내 어찌 불의를 행하리요. 내 마땅히 행차를 절강에 모신 후에 선가를 후히 받아, 그대로 더불어 논하리라." 하고, 인하여 술을 내어 서룡을 권하니, 서룡은 본래 인후한 사람이라. 마음에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술잔을 내어 형을 치사(致謝)하고 언덕을 의지하여 잠을 이루고자 하더니, 이때 하늘이 저물고 밤이 이르매, 소지현의 일행이 서릉의 흉계를 알지 못하고 선중에 의장을 사면에 두르고 촛불을 밝히고 밤을 지낼 새, 시비는 장외에 있고 소생 부처는 장내에서 쉬고자 하더니, 이때에 서릉이 배를 끌러 거슬리 저어 경객간에 황천땅은 거친 뫼(산)이 사면에 둘렀으며, 사면으로 가히 없고 인적이 없는데, 다만, 흉계 할배 서릉의 적당이라. 서릉이 가만히 배를 물가에 대이고 일시에 적당을 배에 올리는지라. 이때, 서룡이 잠을 미처 깨지 못하였더니, 어지러이 들내는(들고 나는) 소리에 깨었는지라. 이때에 소생이 선창에서 잠을 이루려 하더니, 적당이 들내는 소리에 놀라 그 이(이유)를 듣고자 할 즈음에, 문득 조삼용 등이 한 칼로 소승을 버혀(베어) 물에 내리치니 그 안해(아내) 소승 구하려 하다가 물에 빠지고, 그 일행이 다 미처 이도(알지도) 못하여 창검에 베이어 수족이 각각 난호여(나뉘어) 죽고, 남은 시비는 장중에 싸여 살기를 구하는지라. 모든 도적이 그 자색을 흠모하여 죽이지 아니하고 각각 취코자 한대, 서릉이 큰 도채(도끼)를 들고 선두에 서 좌우를 돌아보며 일러 왈, "그러지 아니(않으)니, 다만, 이 밤에 구하는 바는 한 부인과 많은 재물이니, 만일 여러 목숨을 살려두면 타일에 필연 흔적이 누설하리니, 어찌 후환을 면하리오?" 하고, 도채를 들어 어지러이 제쳐 배 밖에 내치니, 가히 어여쁘도다! 꽃다운 얼굴은 놀란 피를 무릅 써 물결에 좇아 잠기고, 애원한 혼백은 칼날을 따라 스러지는지라. 오직 정씨 잔명을 보전하여 타일(다른 날)에 원수를 갚고 부귀를 누리실지라. 천지와 귀신이 밝게 살피시니, 이때 정씨 급함을 보고 장을 헤치고 물에 뛰어들려 하니, 소윤이 급히 붙들어 내어 서릉의 앞에 꿇어 앉아 이르되, "선중 금백을 다 가져가시고, 다만 우리 두 사람의 잔명을 보전하기 비나니, 장군은 넓히 생각하소서." 서릉이 칼을 잡으며 우어 가로되, "오늘 너를 살리기는 실로 어렵도다." 하고 도채를 들고 윤을 치려 하다가, 정씨가 바야흐로 소윤을 안고 한 몸이 되어 울며 비는 거동은 천지지신이라도 족히 감동할지라. 서릉이 그 탁월함을 한번 보매 정신이 놀라고 혼백이 황란하여 수족이 자연 풀어져, 소윤을 치고자 하나 스친 칼날이 정씨에게 미칠까 저어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정씨를 붙들어 치운 후에 윤을 죽이려 하여 주저하더니, 문득 한 사람이 급히 뛰어 배에 오르며 서릉을 안고 이르되, "형이 이미 내게 허하였거늘, 어찌 차마 못할 노릇을 행하느뇨? 밝은 하늘과 일월성신이 삼열하였느니, 어찌 두렵지 아니하리요." 하고 울며 말린대, 서릉이 이르되, "오늘날 사제는 실로 옛사람의 이른바 모진 범을 타고 내리기 어려움이라. 그대의 말을 비록 좇고자 하나 타일에 여러 사람의 목숨을 벌이 보전치 못하리니, 결단하여 살리지 못하리로다. 손을 놓으라." 한대, 서룡이 붙들기를 더 옭매어 하여 급히 이르되, "형아, 사람을 부디 죽이려 할진대, 차라리 물에나 넣어 저로 하여금 신체나 온전케 함이 어떠하뇨?" 이때, 모든 도적이 뱃가에 둘러들 싸니, 잡은 창검 날빛이 서리 같으되 저희 우의(友誼)도 상해 있는지라. 서릉이 서로 붙들어 다툼을 보고 감히 나아대지 못하는지라. 서릉이 도로혀 서룡더러 이르되, "내 그대 말을 들어 칼로는 상케 아니할 것이니, 내 손을 놓으라." 서룡이 답 왈, "형은 손에 든 도채를 놓으면 나 또한 손을 놓으리라." 서릉이 도채를 버리고 노(櫓)를 잡아 소윤을 향하여 이르되, "너를 부디 도채로 베어 죽이려 하였더니, 아우 말이 있기로 승삭(동아줄)으로 동여 물에 넣으니 원치 말라." 하고 동여 뱃전에 내칠 새, 정씨 먼저 배에 뛰어 물에 빠지려 하거늘, 서릉이 나는 듯이 뛰어 내달아 정씨를 붙들어 들이며 서룡을 돌아보아 이르되, "그대는 저 동인 놈을 물에 넣으라." 한대, 서룡이 가만히 맨 것을 눅이고, 소윤을 들어 뱃머리에 나아가 하늘을 우러러 길이 탄식하고 이르되, "그대는 사람을 원(怨)치 말고 하늘을 한(恨)하라. 현가(顯加) 어찌하리요." 하며, 눈물을 흘리며 마침내 물에 넣은지라. 서릉이, 소윤의 몸이 물결을 좇아 떠감을 보고 대희(大喜)하여, 정씨를 안고 선창에 들어가 깁(거칠게 짠 비단)으로 온몸을 다 동여 수족을 임의로 놀리지 못하게 하니, 정씨 가히 죽을 계교 없더라. 이에 모든 도적을 거느려 배를 돌리어 집으로 돌아가니, 황천땅에서 오파구는 불과 오십리라. 하늘이 도적을 돕는 듯, 날이 밝으며 바람이 순하여 집 앞에 닿았더라.

서릉이 집에 돌아와, 채색한 교자를 꾸며 시비로 하여금 "정씨를 모시고 오라." 분부하며, 주패란 계집을 불러 이르되, "정씨를 모셔 들어가 정실에 넣어 두고, 좋은 말로써 달래어 내게 순종케 하면 마땅히 천금으로 상할 것이오, 만일에 외지환이 있다가는 너를 죽이리라." 주패가 명을 듣고, 정씨를 협실에 들이고 수를 내어 위로하거늘, 정씨 대로하여 잔을 들어 주패를 치며 자결할 틈을 얻고자 하되, 촌철(寸鐵)이 없는지라. 기둥에 부딪쳐 죽고자 하되 주패와 모든 시녀로 더불어 붙들었으니, 한갖 손으로 가슴만 두드려 통곡할 뿐일러라. 주패가 심중의 참혹함을 이기지 못하여 눈물을 스스로 금치 못하나, 겉으로 사람을 두려워 말을 드려 가로되, "낭자가 이지경에 다다라 주인의 뜻을 좇지 아니하고 장차 어찌려 하느뇨? 사람의 목숨이 초로(풀잎 이슬) 같으니 무익한 고집 말고 남자의 소원대로 좇아 금의 옥식에 뭍이심이 진실로 여자의 소원이라. 헛되이 부르짖어 통곡하나 어느 사람이 찾아오며, 몸을 버려 황천에 들어가나 무슨 알음이 있으리요?" 정씨 한 말도 대답치 아니하고, 다만 눈물만 흘리어 옥빈 홍안(玉鬢紅顔)에 가득할 뿐일러라. 이때, 서릉이 당류(黨類 일당)를 거느리고 배에 나아가 소윤의 행장을 차례로 강변에 내어 푸니, 금은 보화 채단 의복이 수만금이나 한지라. 서릉이 셰히(셋으로) 난화(나눠) 한 깃(몫)은 모든 졸하를 주고, 하나는 제가 밖으로 쓰려 하고, 또 하나는 정씨 부인을 주려 하더라. 서룡은 나누는 데 참여 아니하여 추호도 범함이 없으니, 이는 본래 적류(賊類 무리)의 뜻이 아니매 서릉도 감히 줄 뜻을 못하더라. 이날 살찐 소와 돗(돼지)을 많이 잡아, 모든 도적이 서릉의 고은 부인 얻음을 경하하는지라. 서룡이 그 형의 불인함을 말리다가 도리어 하지 못하고 정씨의 잔잉함(애처롭고 불쌍함)을 능히 구치 못하는지라. 가중에 참여하여 주육은 한가지로 먹으나, 다만 다른 생각이 없어 일편 마음이라. 정씨를 인도하여 살아날 곳을 가르치고자 하더니, 날이 저물어 이미 황혼이 되었는지라. 서룡이 한 계교를 생각하고 말을 펴 가로되, "오늘 너희는 많은 금은을 나눔이 공평하되, 홀로 나에게 묻지 아님은 어찌이뇨?" 한대, 서릉이 그 아우 금백 달람을 듣고 크게 깃거 이르되, "현제, 마냥 우리 이렇듯 함을 마냥 더럽다 버리매 감히 줄 의사를 못하더니, 만일 가지고자 할진대 비록 다(모두)라도 주리라." 서룡이 답 왈, "그리 많이는 쓸 데 없으니, 다만 오십금이 쓸 데 있어라." 서릉이 즉시 백금을 내어주거늘, 서룡이 남의(남루한 옷) 속에 감추고, 큰 잔으로 더운 술을 가득 부어 형의 앞에 나아가 꿇어 드린대(드리니), 서릉이 황망히 받으며 공경하여 이르되, "아우 오늘날 어찌 이렇듯 관공하뇨?" 서룡이 가로되, "거야(지난 밤)에 과연 형의 뜻을 많이 어기오니 오늘 마땅히 사죄코자 하나니, 소제의 그럼을 만일 용서하실진대 드리는 술을 사양치 말으소서." 서릉이 비록 극악한 놈이나 형제간은 본래 화목한지라. 아우 은근함을 보고 못내 짓거(기뻐)하며 주는 잔을 순순히 받아 마시니, 좌우 제적이 서릉 형제 수작 공순함을 또한 짓거, 일시에 일어나 잔을 잡으며 이르되, "오늘 장수가 어진 부인을 얻었으니 이는 서문(서씨 가문)의 빛난 경사라, 우리에게도 또한 다행한 바이니 각각 잔을 드려 경하하리라." 하고, 잔을 차례로 서릉 앞에 나소오니 능히 이미 대취하였는지라. 정신을 거두지 못하여 자리에 쓰러져 잠을 깊이 들매, 모든 도적이 또한 취하여 흩어졌는지라. 서룡이 그제야 초롱을 들고 두루 돌아 뒷동산 문으로 들어가니, 집안 사람이 다 자고 오직 정당의 촉영이 밝았는지라. 서룡이 창 밖에 나아가 비겨 들으니, 주패가 바야흐로 정씨를 대하여 일변 주인에게 순종함을 달래고, 또 도망할 곳이 없음을 이르고, 또 물어 가로되, "부인이 이렇듯 뜻을 정하여 죽기를 가벼이 여기실진대, 어찌 뱃 가운데서 몸을 맡지 못하여 이곳에 들으시이까?" 정씨가 울며 답 왈, "내 어이 살기를 탐하여 이곳까지 왔으리오? 죽을 틈을 얻지 못함이라. 이제 목숨 끊기가 경각에 있는지라 다시 두려움이 없으나, 다만 나의 가군이 일즉 깃친(남긴) 자식이 없고, 첩이 잉태한지 구삭이라. 아무려나 구차한 목숨을 잠깐 보전하여 복중에 가진 자식을 낳아, 천행으로 소씨의 대를 끊지 말고자 하나 어찌 바라리오?" 주패가 울며 이르되, "낭자의 정세가 진실로 참혹하도다. 첩도 본래 이 도적의 집사람이 아니라. 배를 건너다가 잡힌 바 되었느니, 어찌 물욕을 귀히 여겨 마음이 이곳에 일각인들 있으리오? 이제 낭자를 모셔 도생코자 하나, 이 도적의 집이 극히 깊어 문장이 첩첩하고 또 각각 지키는 사람이 있는지라, 어찌 도탈하리오?" 차탄함을 마지 못하여 서로 체읍(涕泣)할 즈음에, 서룡이 창 밖에서 여어(엿)듣다가 이 말을 당하여는 참담함을 이기지 못하여 홀연히 문을 열고 들어서니, 정씨 놀라 넋이 없어 땅에 엎어지고, 주씨 또한 기절하여 인사(정신)를 차리지 못하여 하거늘, 서룡이 말씀을 나직히 하고 가로되, "두 부인은 놀라지 말으시고, 기운을 진정하여 나를 자상이(자세히) 보옵소서." 부인이 창황간에 겨우 인사를 차려 보니, 선창에서 구완하던 서릉의 동생이라. 그 본심이 어짊을 알매 잠깐 진정하고, 주씨도 또한 그 사람의 뜻을 아는지라 겨우 인사를 차려 일어 앉으니, 룡이 눈물을 흘리고 문(물어) 왈, "부인 경색이 저렇듯 참혹하신지라. 내 마땅히 죽기로서 인도하올 것이니, 앗게(아까) 두 부인 말씀대로 길을 열어 드리거든, 가형이 안즉(아직) 술에 취하여 미처 이지(알지) 못하니, 온전히 바라느니 두 부인은 이 밤에 빨리 가시면 이동곡 오십리를 가리니 가히 면화(免禍)하오려니와, 두 부인의 소견이 어떠하시니까?" 정씨가 이 말을 듣고 감격함을 이기지 못하여 일어나 백번 사례한대, 룡이 왈, "사세 급박하오니 빨리 나가소서." 하거늘, 부인이 아무 데로 갈 줄을 몰라 눈물만 흘리거늘, 주패가 그 뜻을 알고 가로되, "부인이 이제 이 문 밖에 나선들 어디로 가실 줄을 알리이까? 첩이 함께 부인을 따라 가리이다." 부인 더욱 감격하여 한가지로 서룡을 따라 후장 북문으로 나서니, 만수천산이 앞에 가렸으니 그 정색을 측량치 못할너라.

서룡이 즉시 푸대에 싸 오십 금은자를 드리며 왈, "이것이 도적의 더러운 재물이 아니라 부인 댁(宅) 행중 기물이니, 가져다가 한 때 행차를 보태소서." 북녘으로 큰 산을 가르치며 왈, "부디 저 산을 이 밤에 득달하소서. 형이 친히 추종을 하면 말리지 못하려니와, 만일 가정(家丁 머슴)을 보내면 죽도록 구하오리이다." 하고 연망(緣忙)히 돌아가거늘, 양인이 절하여 사례하고 어두운 밤에 갈 길을 알지 못하여 하다가 생각하되, 큰길로 가다가는 추종도 있을 것이요, 사람도 만날 것이니, 대로를 버리고 유벽한 길로 촌촌 전진하여 이십여리를 가니, 정씨는 죽기를 위안하매 오직 발 아픔을 잊고, 주씨는 발이 아파 능히 걷지 못하여 수풀 가운데 앉아 쉬더니, 호흡이 천촉(喘促)하여 행보할 길이 없어 서로 손을 붙들고 울며 왈, "첩이 부인의 정성에 감동하여 죽기를 가를 삼고 도망하는 부인의 후사를 잇게 함이러니, 이제는 움직이지 못하오니, 만일 하늘이 밝아 흉적이 미치면 이는 첩이 부인을 속임이라. 첩의 생사는 관계치 아니하오니, 원컨데 부인은 빨리 행하여 몸을 피하였다가 다른 날에 소원을 이루소서." 정부인이 눈물을 흘리고 왈, "그대 어진 마음이 부지를 버리고 이에 이르러 환을 면치 못하게 되니, 내 어찌 그대를 버리고 차마 가리요?" 주씨 답 왈, "부인은 불관(不關)한 첩신을 유념치 말으시고 급히 환을 피하소서." 정씨가 마지못하여 이별하며 가로되, "부디 나의 자취를 현노치 말으소서." 주씨 답 왈, "부인은 방심하고 신을 바꾸어 신고 가소서." 정부인이 그 뜻을 모르고 주씨 신을 바꾸어 준대, 주패가 신고, (정부인이) 두어 걸음에 돌아보니, 주패가 신을 벗어 의정 움물(우물)가에 놓고 물에 빠져 죽으니, 부인이 주패가 그 물에 빠져 죽음을 보고 망극 애원하여 슬퍼하나, 이미 하릴 없는지라. 혈누를 뿌려 주패의 신체에 두어번 뿌리고 앞으로 십여리를 행하니, 동방이 이미 밝았는지라. 정씨가 갈 바를 알지 못하여 뫼골에서 바자이며(짧은 걸음으로 왔다갔다 하며) 눈물을 머금고 하늘을 우러러 길이 탄식하더니, 문득 돌아보니 매우 희한한 암자 있으되 오히려 문을 닫고 거동이 남승 있는 곳이 아니어늘, 정씨 의심이 없지 아니하나 형세 마지 못하여 나아가 몸을 감추고자 하되 오히려 호의(狐疑) 있어 주체하더니, 문득 한 여승이 나와 정씨를 맞아 들어가며 이르되, "부인은 놀라지 말으소서, 이곳은 여승의 암자로소이다." 정씨가 그제야 심신을 진정하여, 황천땅에서 도적 만나 가군을 여의고 잔명을 보전하여 이리로 생(生)함과 장래 신명 보전할 곳을 청한대, 여승 중의 노리라 하는 중이 이르되, "부인이 두어날 머무시기는 가히 막지 못하려니와, 오래는 머물지 못하실지라. 만일 도적이 추종하여 옴이 있으면, 한갖 부인께 참화 미칠 뿐 아니라 우리 등이 다 환을 만나리니, 밀어 내치기도 차마 못하고 머무실 도리 어렵도다." 이러굴제, 정씨 홀연 배아프기 점점 급하여 능히 견디지 못하여 배를 붙들고 앓기를 구지하니, 노리의 연광이 오십이라. 중년의 승이 되어 해산하는 증정을 아는 고로, 곁에 나아가 정씨더러 이르되, "부인은 그이지(속이지) 말라. 부인의 앞이 높고 안정이 옅으니 반드시 임신한 기상이라, 장차 어찌려 하시나이까?" 정씨가 그이지(거짓말 하지) 못하여 이르되, "첩이 과연 잉태하연지 이제 구삭이라. 산시(해산 시기, 십삭) 차지 못하나, 가군의 참사함을 목전에 보고 모진 목숨을 보전코자 하여 이 밤에 여러 십리를 보행하니, 복중에 든 혈육이 어찌 무사함을 바라리요?" 노리 왈, "분명한 산기로소이다. 이곳 부처의 청정한 집이라, 가히 더러우지 못할 것이니 부인은 급히 다른 곳을 찾아 취택하소서." 정씨가 낯(얼굴)을 들어 간절히 빌어 왈, "불도는 본래 자비로 본을 삼나니, 만일 예(여기)서 이 같은 잔명을 구치 아니하고 내칠진대, 다시 어디를 바라리요? 이곳에서 죽어 저승에 어여삐 여김을 입으리라." 하니, 노리가 마음에 참연하여 모든 승으로 의논하여 이르되, "비록 이곳이 마땅치 않으나 정세 하 참혹하니, 뒤에 한칸방을 비워 정부인으로 하여금 해산을 무사히 하게 함이 어떠뇨?" 한대 제승이 한가지로 허(許)하거늘, 노리가 정씨를 붙들고 뒤에로 가더니, 한 방을 소쇄(掃灑 빗자루질)하고 정씨를 누이며 인하여 반갱(飯羹 밥과 국)을 차리더니, 이윽고 앓기를 자로(자주) 하며 정씨 침금에 지렸더니, 문득 없던 채운이 반공으로 조차 암자를 덮으며, 문득 한 여인이 칠보로 꾸민 관을 쓰고 명월패를 흔들며 운하의를 끌며 들어오더니, 정씨 곁에 서서 이르되, "부인은 이 아이를 아끼지 말으시고 거리에 버리라. 이후 십구년이면 원수를 갚고 서로 만나리라." 하고 문득 어디로조차 간 곳을 알지 못하며, 인하여 정씨 남자를 낳으니 정씨가 마음이 황홀하여 손을 합장하고 천지께 빌더니, 노리가 아이 소리를 듣고 황망히 들어와 위로하며 반갱을 권하며 이르되, "부인은 이기 생각하라. 이곳은 아이 딸린 부인은 있지 못할 것이요, 또한 아이를 거두어 이 문 밖에 날(나갈)진대 부인의 괴이한 용색을 스스로 감추지 못하여 강포한 남자를 만나리니, 만일 그러면 유아도 보전치 못할 것이요, 또한 더러운 욕을 당할 것이니, 부인은 넓히 생각하여 아기를 버림이 어떠하시이까? 이곳이 남자 귀하여 버린 아이를 보면 거두어 양육하기를 기출(자기 자식)같이 하나니, 부인은 아끼지 말으시고 한번 버리신 후 부인은 이곳에 안보하여 타일의 좋은 시절을 기다리며 주(주인)의 뒤를(대를) 끊지 맒이 어떠하시니까?" 정씨가 마음에 차마 버림이 앗처(애처로움)하나 산시에 선녀의 일름을 들었고, 또한, 노리의 말이 가장 유리한지라. 도로 생각하여 마지 못하여 버릴 뜻 결정한 후, 입었던 나삼(羅衫 얇은 비단 적삼)을 벗어 아기를 싸고, 금봉차(金鳳釵 봉황머리 금 비녀)를 빼어 가슴에 동이고, 일어나 하늘을 향하여 두 번 절하고 빌어 가로되, "첩의 지아비 소윤이 본래 사오납지(악하지) 아니와 평생 적악을 행함이 없더니, 천제 무심하사 흉적을 만나 청춘에 어별의 밥이 되고 인간에 끼친(남긴) 바 혈육이 이 아이뿐이오니, 만일 소씨로 하여금 앙얼(殃孼 지은 죄에 대한 벌)이 없거든 황천후토(皇天后土 천지신)는 이 아이를 어여삐 여겨, 어진 사람에게 거두어 가 양육함을 바라나니, 저로 하여금 다시 만나고 아비 원수를 갚게 하소서." 빌기를 마치매, 아기를 들어 노리를 맡기고 눈물을 금치 못하더라. 노리가 아기를 받아 품고 대류촌 큰 버드나무 밑에 놓고 돌아와 정씨께 사뢴대(사뢰니), 부인이 길이 한소리에 인사를 버리고 눈물만 흘리거늘, 노리가 급히 구호하니 겨우 인사를 차려 하늘을 우러러 탄식 왈, "이 몸이 전생에 무슨 죄악으로 금세에 나와 목전에 가장을 비명에 죽이고 또한 유아를 죽을 곳에 버리니 명명한 창천이 알으소서, 첩의 조그만한 목숨이 어찌 구차히 세상에 있사오리이까마는, 이 몸이 죽으면 가군의 궁천지통(窮天之痛)과 서릉 도적의 궁흉 극악을 세상에 갚사올 사람이 없삽기로 혈혈한(의지할 곳 없이 외로운) 잔명 구차히 보전하오니, 타일에 원수를 갚삽고 요행으로 버린 자식을 다시 만나게 하옵소서." 노리가 위로 왈, "지성이면 감천이오니, 부인은 하 설워 말으소서." 부인이 답 왈, "나의 잔잔한 목숨이 존사의 덕으로 이제까지 보존하오니 은혜 백골 난망이나, 다만, 예서 오파구 멀지 아니하고 또한 뫼이 얕으니, 만일 흉적의 이목에 들리면 목숨을 보전치 못하리니, 바라건대 노사는 첩이 장신할 곳을 가르치소서." 노리가 답 왈, "이곳은 과연 오래 은신할 곳이 아니라. 예서 북녘으로 오십리 곧 더 가면 월봉산이란 뫼가 깊고 물이 험하여 사람이 임의로 출입치 못하는 곳이라. 그 속에 한 암자 있으되, 도통한 여승만 모다 (모두 모아) 불경만 일삼사오니, 이른바 북악도장산이라 하오매 노신이 게(거기에) 가 의택고자 하오되, 다만 그 절에 한번 들어가오면 여염(閭閻 민가)으로 더불어 왕래 어렵기로 의식(입고 먹음)을 이룰 길이 없어 지금 가지 못하였나이다." 정씨가 답 왈, "그러면 게서 사는 생애(생활)를 어찌 하느뇨?" 노리 왈, "그 절 동구말 십리 밖에 큰 절이 있기로 값을 주면 양식을 준비하나이다." 한대, 정씨가 이 말을 듣고 품에서 백금은자와 찼던 보패를 끌러 노리를 주며 왈, "이것을 아는 자 곧 만나면 여러 백금이 될 것이니, 노존사는 이 두 가지 것을 가지고 우리 두 사람의 의식할 것을 장만하여 가지고 월봉산으로 들어감이 어떠하뇨?" 노리 답 왈, "이 백금만 하여도 두 사람의 십년 의식은 하올지라. 이는 부인을 위함이 아니라 소승의 평생 원하던 바이오니, 두어날 유하여 부인의 기운이 평복하시거든 가사이다." 하더니, 과연 사오일 후 정씨 기운이 평안하거늘, 발행 시에 불전에 하직하고, 노리를 재촉하여 월봉산 자호암에 들어가 자취를 감추니라.

이 적에, 서릉이 술을 깨어 정씨를 생각하고 급히 중당에 들어가니, 이때 방문이 열렸고 인적이 고요하거늘, 불을 혀고(켜고) 보니 정씨와 주패 간 곳이 없고 다만 후원 문이 열렸는지라. 이때, 서릉이 두 부인 없음을 보고 대로하여, 즉시 칼을 집고 북천 작은 길로 쫓아 이십여리를 가서 목이 갈하여 우물을 찾아가니, 희미한 가운데 신을 벗어 우물가에 놓았거늘 놀래어 굽어보니 사람의 신체가 물 위에 떴거늘, 놀라 급히 본즉 희미하여 외형은 살피지 못하나 다만 '정씨 이곳에 와 죽었도다' 하고 앙앙 분노하여 주패를 찾아 죽이고자 하여 찾아 또 십리를 가며, 대류촌에 가서 종적을 모르고 다만 어린 아이 소리 들리거늘 살핀 즉, 갓 낳은 아해(아이) 품에 금차를 안고 울거늘 서릉이 왈, "내 무자식하더니 하늘이 귀자(貴子)를 주시도다." 하고 즉시 품을 열고 그 아이를 안으니, 그 아이 울음을 그치고 마치 아는 일 있는 듯 하더라. 서릉이 귀히 여겨 걸음을 조용히 걸어 집에 돌아와, 그 졸하 조대희의 처, 자식을 낳아 즉시 죽고 흐르는 젖이 유여한지라. 조대희를 불러 이르되, "이 아이를 길에서 얻어 왔으니, 그대 버리는 젖을 먹여 사오년을 잘 길러 주면 내 자식을 삼아 후사를 잇고 천금으로써 상 주리라." 조대희 부처가 흔연히 허락하고 아이를 싼 채 안아 내어가거늘, 그 비녀와 백금 십냥을 주어 보내다.



각설, 소윤이 황천땅에서 도적에게 동이여 급한 물결을 따라 혹 잠기며 뜨며 서도로 행하여, 날이 밝으며 한 개어귀에 다다르니 그 땅은 두주땅으로, 이때에 객상도공이라 하는 사람이 배를 마침 이곳에 띄우고 장차 금범(錦帆)을 높이 달아 가고자 하더니, 문득 사람이 상류로 좇아 흘러 떠내려와 배 곁에 다다라 사람을 부르는 듯 소리 들리거늘, 도공이 사공을 급히 불러 건져 내며 맨 것을 끄르고 보니 이미 인사를 차리지 못하고 다만 가슴에 미미한 숨결이 있을 뿐이라. 인하여 배를 놓아가며 옷을 벗기고 마른 옷을 입히며, 여러가지 약을 내어 강탕에 타 무수히 먹여 구하니, 오시에 당하여 두어되 물을 토하고 인하여 인사를 차려 앉으며 이르되, "이 배는 뉘 집 배며, 이 땅은 어디뇨?" 선인이 답 왈, "이 땅은 두주지경이요, 배는 객선이어니와, 그대는 어느 땅 사람이며 무삼(무슨) 연고로 동이여 물 위의 주검이 되어, 나로 하여금 구함이 되뇨?" 소윤이 일어나 도공의 앞에 가 두 번 절하고 물어 가로되, "존옹은 어떤 사람이시며, 나는 어찌하여 이 배에 이르렀나이까? 한번 죽은 줄은 아오나 다시 살아남은 알지 못하니, 이것이 진실로 인간(인간세상)이니이까?" 도공이 한번 보매 의표 준매하고 언어 당당하여 옥을 다듬은 듯한 소년이라. 가히 범인이 아닌 줄을 알고 바삐 몸을 일어 답례 왈, "나는 한갖 흥판(興販)하는 선비여니와, 상공의 외형을 살피오니 벅벅이(확실히) 천한 형용이 아닌지라. 무슨 연고로 승삭에 얽매여 강상에 떠 곤하신고? 이 배 금조(오늘 아침)에 두주지경에 쉬더니, 상공이 상류로 떠내려 오기에 건져 배에 올려 의복을 갈고 약으로 구완하여 이제 겨우 명복(목숨 건짐)하였거니와, 어이 알지 못하시나이까? 묻잡느니, 어느 땅 어떠하신 상공으로서, 무슨 일로 이런 참악을 만나셨니까?" 소윤이 근본을 바로 이르지 아니하고 다만 이르되, "생은 탁주 땅 천한 사람으로 약간 재물을 가지고 의진에 와 흥판하다가, 도적에게 재물을 잃고 몸이 수중에 굿겨 마땅히 어별의 밥이 될 바라. 어찌 이에 존옹이 구하여 살았음을 뜻하였으리요? 이 은혜 이른바 자상지의(慈祥之意)니라. 이제 장차 무엇으로 갚으리요? 아지 못 게라. 탁주는 예서 얼마나 하며 의진 황천땅은 몇리나 하니이까?" 도공이 대 왈, "탁주는 일즉 왕래치 못하였으니, 자세히는 모르거니와 육로와 수로 다 천리 밖이라. 사람이 다자(多者)로 통(통행)치 못하는 곳이요, 황천땅이 또한 먼지라. 상공이 혈혈단신으로 이제 가진 은전 없기 득달키 진실로 어려운지라. 전두사(前頭事)를 장차 어찌코자 하시느뇨?" 소윤이 측연 탄 왈, "내 나이 젊으나, 이 한 몸이 포박하여 이 땅에 다다르니 벌써 적력(積力)이 시진(澌盡 쇠진)하여 다시 인사 차릴 길이 없는지라. 가향이 아득하니 비록 내 혼백도 이를 길이 없으니, 학발 편친(늙은 홀어머니)은 문을 비겨 이 불초한 자식을 생각하시며, 청년 처자(젊은 아내)는 정절을 지키어 슬픈 넋이 구원의 한을 품었도다. 이 다 나의 불초함이로다. 이 세상에 홀로 이 곳에 살아 어디에 쓰리요? 차라리 죽어 선인의 뒤를 좇음이 옳도다." 언파에 한소리를 길이 탄식하며 다시 뱃전을 잡고 물에 뛰어들고자 하거늘, 도공이 급히 붙들어 위로하여 왈, "남자 처세함이 여자와 다른지라. 한번 액화 만남은 예부터 사람마다 하였느니, 상공이 어찌 깨치지 못하고 천금 같은 몸을 가뷔야이(가벼이) 버리고자 하시느뇨? 만일 몸 의택할 곳을 어려워 하실진대 소생이 마땅히 힘을 다하여 상공을 모시리니, 아직 괴로운 수심을 참으소서." 소윤이 듣고 다시 무릎을 꿇고 사례하여 왈, "소생이 육십 편모 계시니 비록 묘묘(杳杳)한 단신이나 천만 사양하되 죽음이 나은 고로 자결코자 하더니, 존공이 이가지로 은혜를 드리워 잔명을 구하시니 하늘 같은 은혜 가히 이르지 못하리로소이다." 인하여, 술을 내와 탕음하고 술이 점점 취하매 더욱 슬퍼, 능히 심회를 진정치 못하여 사친(思親)하는 가사를 지어 가는 구름을 바라보며 뱃전을 두드려 두어번 음영하니, 청음이 열열하여 행운(가는 구름)이 빛을 변하는 듯, 사의(謝意) 처절하여 지신이 족히 감동할너라. 배의 모든 사람이 뉘 아니 울리요, 도공이 또한 위로하여 왈, "상공은 슬퍼 말으소서. 상공의 풍채 마침내 하방에 침폐할 바 아니라, 반드시 원수를 갚고 고향에 돌아가 길이 영귀하실 날이 있으리니 어찌 허소이(헛되이) 상회(傷懷 애통함)하느뇨?" 이러굴제, 일기 저물고 배 이미 언덕에 닿으니, 이는 곧 삼가촌 도공의 집이라. 소윤을 데리고 집에 이르러 별당에 머무르고 의식을 관후(寬厚)히 하니, 이로부터 일신이 안온하며 상하촌 젊은 선비와 글하는 아이들을 모아 글도 가르치며 시사도 의논하며 마음을 스스로 위로하는지라. 모든 양찬과 조배 다투어 이르니, 이때 소지현이 이로조차 의식(衣食)이 자못 유려하나 고향에 돌아감이 망연하매 일일(하루하루) 심사를 진정치 못하더라.

각설, 소상서 부인 장씨가 아들을 임소에 보내시고 그리는 심회(深懷) 날로 간절하더니, 흐르는 광음이 이미 삼년에 미쳤으되 음신(音信 안부 편지)이 묘연한지라. 장차 노복을 난계로 보내어 소식을 알고자 하더니, 차자 소위가 고하여 왈, "형의 음신이 삼년을 끊었으니 반드시 심상한 연고 아니라. 한 노복으로서 수천리 장정에 형의 연고를 살피기 어렵사오니, 원컨대 소자가 친히 가 형의 진적(眞的)한 소식을 알아 빨리 돌아와 모친의 사렴(염려하는 마음)을 덜으시게 하리이다." 부인이 허락하여 이르되, "네 형을 생각함이 이렇듯 하매 내 막지 못하거니와, 마땅히 행역을 조심하여 기별을 자세히 알고 일찍 돌아와 나로 하여금 문에 비겨 기다림이 없게 하라." 소위가 수명(受命)한 후 행장을 차릴 새 양 개 창두를 데리고 길을 발할 새, 모부인께 하직을 아뢴대 부인이 손을 잡고 오열 유체하여 능히 말을 아뢰지 못하니 소위가 또한 떠날 마음이 아득하나 다만 모친을 위로하려 슬픈 빛을 감추고 눈물을 거두어 재삼 관위(위안)하고, 외실에 나와 그 아내 육씨더러 왈, "형장이 임소로 가신지 지금 삼년에 소식이 일절하여 모친의 울념(鬱念)하심이 이렇듯 깊으시니 어찌 슬하 온전하리요? 오늘 길을 이미 정하여 발행하나 오직 모친 좌하에 다른 형제 받들 이 없고, 또 내 돌아올지 속을 알지 못하니 어찌 심사 온전하리요? 다만 그대를 믿느니, 모친을 지성으로 봉양하실진대 돌아와 낭자의 효행을 항복할 바요, 불행하여 돌아오지 못할진대 죽어 지하에 가도 낭자의 은혜를 명심하리라." 육씨가 함루 척연 대 왈, "낭군은 어이 만리 행역을 당하여 언어를 불길케 하시느뇨? 원컨대 숙숙(남편의 형)의 평안하심을 듣자와, 빨리 돌아와 존고의 염려를 덜으시게 하옵소서. 정당 섬기옴은 첩이 비록 불민하오나 낭군의 이르심을 기다릴 바 아니오니, 다만 원로 행역에 평안 하심을 바라나이다." 생이 팔을 들어 읍하여 이별하고, 육로에 나귀를 재촉하며 해상에 풍범(돛단배)을 의지하여 행한 칠삭 만에 난계를 득달하여, 현령의 성명을 급히 물은 즉 제 형이 아니거늘, 또 전관을 물어 가로되, "탁주 땅 소윤이 사년 전에 이 땅에 현령하여 왔더니, 예 와 거관을 얼마나 하시며 이제 어느 곳에 머무르시느뇨?" 하인이 답 왈, "소씨란 원은 알지 못하거니와, 지금 현령은 성이 고씨요 북경 사람이라. 그대 어떤 사람이완대 망녕되이 소씨라 일컫느뇨?" 소위가 이 말 듣고 대경 실색하여 가슴을 두드리며 크게 통곡하여 하인께 청하되, "나는 곧 지현 소윤의 친제라. 노모의 명을 받자와 만리 해외에 찾아 왔다가 형의 종적을 알지 못하니, 너희 비록 모르나 현령 필연 형의 기체(氣體 거취)를 알 것이니 지현께 아뢰라." 하니, 하인이 가로되, "그러면, 명함을 써 주소서." 소위가 즉시 지필을 나소아(내서) 성명과 사적을 통한대, 지현이 받아 보고 크게 놀라 즉시 청하여 좌정 후에 연고를 물은대, 소위가 두 번 절하고 꿇어 가로되, "가형이 사년 전에 진사둘재하여 특별히 이 땅 현령을 하였으매 도임하여 온 후에 지금 성식(聲息 소식)이 없아오니, 노모 명을 받자와 왔사오니 대인은 가형의 거처를 알으실 듯하오니 듣고자 하나이다." 지현이 왈, "그대 영형이 난계 현령 도임 이후로 일장 문보가 없기로, 이부에서 하관으로 충채하여 이제 온지 또한 삼년이라. 그대 말씀을 듣자오니 영형이 일정(틀림없이) 중로에 적환을 만남이라. 그대 잠깐 이곳에 머무시면 사람을 흩어 소식을 수탐하리이다." 소생이 이 말을 듣고 형의 죽음을 헤아리매 가슴이 막혀 한소리 통곡하고 인하여 혼절하니, 지현이 참혹함을 이기지 못하여 의원을 불러 백번 구호하되 마침내 효험이 없어 명이 진하니, 지현이 불쌍히 여겨 의금과 관곽을 갖추어 성외 십리 성황사에 빙소하고 명정을 세워 표하니라.

각설, 서릉이 그 아이를 데려다가 조대희를 맡겨 기르더니, 이 아이 점점 자라매 용모는 관옥 같고 기골이 비범하여 상예 아이와 크게 달라, 오세에 이르러는 배우지 아니한 시서백가어를 무불 통지하여 이백(李白)과 두시(杜甫)를 냉소하니 진실로 일대의 문장이라. 이러하므로 서릉이 마냥 사랑함을 비길 데 없더라. 집에 데려다가 금의 옥식으로 기르며 이름을 계조라 하고 항상 말하되, '어미는 제 정실로서 계조 낳은 일삭 만에 산후병으로 죽고 조대희 처 구씨 젖을 먹여 내었다' 하며 속이는지라. 광음이 훌훌하여 계조의 나이 팔세에 이르러는, 기 부(己父) 서릉이 사람을 죽이며 남의 재물도 앗으며 불의지사를 위업(爲業 생계수단)하니, 계조가 심하에 통분히 여겨 일일은 의대를 정제하고 서릉 앞에 나아가 울며 꿇어 가로되, "소자 감히 한 말씀을 아뢰나니 복걸(엎드려 비오니) 부친은 유념하옵소서. 무릇 사람이 세상에 나매 마땅히 예를 닦아 의를 행하여 비례지사를 말고 금수(짐승)와 다를 것이어늘, 이제 부친의 행하신 바는 차마 사람이 못할 바라. 만일 부친이 마침내 깨닫지 아니하시고 불의를 행하시면 소자 또한 천륜을 폐하고 몸이 죽어 보지 아니하올 것이니, 원컨대 부친님은 다시 생각하옵시어 마음을 고치고 행실을 닦아 이곳을 버리고 다른 땅에 가 개과천선 하옵시면, 소자가 비록 재주 없아오나 심(힘)을 다하여 이름을 용문에 붙이고 명적을 세상에 빛내어 부친께 영화 부귀 부족함이 없게 하올 것이니, 부친은 이기 생각하옵소서." 하며 양협에 두 줄 눈물이 비 오듯 하니, 서릉이 평일 계조 사랑함이 비길 데 없어 평일에 온갖 말을 어기지 아니하더니, 이날 계조의 지성으로 간하는 양을 보고 마음이 감동할 뿐 아니라, 또한 그 땅에서 몹쓸 일을 행하연지 이십여년이라. 종적이 현로할까 하여 의심하더니, 계조의 말을 들으매 말마다 유리한지라. 나아가 계조를 붙들고 왈, "내 아들 말이 진실로 기특하니, 오늘부터 너를 데리고 다른 곳에 옮아 악을 버리고 선을 하리라." 하고, 즉시 조대희 부처와 조삼용 등을 불러 계조의 말을 이르고 떠나려 하니 조삼용도 감을 원하거늘, 가장을 수습하여 십여일 만에 조삼용 등 이십여인을 데리고 남으로 삼백여리를 행하여 계릉 땅에 가 집 짓고 농장을 장만하여 살은지 육칠년에 계조의 나이 십오세라. 향당에 뽑히어 향시 장원하니 장차 경사에 가 회시를 보려할 새, 서릉이 어린 아이를 원정에 보냄을 어려워 하나 마지 못하여 보낼 새, 행장을 차려 가동 이 인을 명하여 보내니라.

여러날 만에 탁주 땅에 다다른 즉 홀연 몸이 노곤하여 정히 쉬고자 하더니, 문득 바라보니 주란화각이 뫼를 의지하고 물을 원하여 심히 처창하더니, 나귀를 재촉하여 그 집 앞에 다다르니 한 노구(늙은이)가 두어가지 의복을 가지고 버들을 의지하여 서답(빨래)하거늘, 나귀를 머무르고 물을 구하니, 노귀(노구가) 전도히 그릇을 씻어 흐르는 물을 떠 말머리를 붙들고 올리다가 생을 치밀어 보고 문득 안색이 변하며 물을 버리고 가로되, "물이 차지 못하오니 상공이 잠깐 정자에 올라가 쉬시면 차를 내오리이다." 생이 쉬기를 위하여 말에 내려 정자에 오른대, 노귀 바삐 들어가 옥반에 향차를 가득 부어 쌍수로 높이 들어 올리며 반기는 기색이 얼굴에 현연하니 생이 고히 여겨, 차를 마시고 그릇을 내어 주니 노귀 받아 곁에 놓고 물러 앉으며 허희탄식(歔欷歎息)하며 생을 자로 보고 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숙이고 반기는 뜻이 의의하여 차마 떠나지 못하거늘, 생이 고히 여겨 물어 가로되, "그대 어떠한 사람이온데, 무슨 연고로 과객을 보고 저렇듯 권련하느뇨? 그 연고를 알고자 하노라." 노귀 더욱 눈물을 흘려 능히 말을 못하다가 양구에(한참 있다) 일어나 절하고 가로되, "노신은 주인 잃은 사람이라. 귀객을 만나오매 자연 주인을 생각하고 비감하여 하나이다. 다만 산일이 이미 늦었고 이 앞에 여염이 없사오니, 상공은 이 밤을 여기서 지내고 가심이 어떠하시니이까?" 생이 답 왈, "과객이 주인의 관대(寬待)를 받아 아까 먹은 차 값도 치르지 못하였거늘, 어찌 또 자기를 바라리요? 하물며 이 댁을 보니 반드시 공경(公卿) 재상댁인가 싶으니, 천한 자취를 감히 머물지 못할지라. 연이나(그런데), 이 집은 어떠한 사람의 집이며 그대는 어떠한 사람인가?" 노귀 눈물을 머금고 답 왈, "이 댁은 전조 적 이부상서 소 노야 댁이옵고, 첩은 이 댁 비복이옵거니와, 삼십년 전에 상서 기세하시고 부인만 계시니다." 생이 또 문 왈, "상서 비록 기세하시나 자제도 없관대, 누각이 이렇듯 퇴락하뇨?" 노귀 이 말을 듣고 난간에 엎드려 일지 못하거늘, 생이 세우되 '일정 남자 없고 부인만 계셔 고단히 지내시는 연고로다' 하고 장차 일어나고자 하더니, 또 문 안으로서 비복들이 연하여 다니며 생을 보고 눈물을 뿌리며 서로 귀에 대고 숫두어리며(속닥거리며) 거동이 수상하거늘, 생이 극히 고히 여겨 그 진정을 알고자 하더니, 또 한 시녀가 옥호에 술을 담고 금반에 수삼 기과를 들고 나와 전하되, "부인께옵서 귀객이 정자에 머무신다 하니, 비록 집이 누추하오나 별당에 들어와 쉬어가심을 청하나이다." 생이 황공하여 일어나 절하고 시비를 대하여 이르되, "천생이 감히 우러러 부인께 말씀 대답치 못하오니, 그대는 천생의 뜻을 전하라. 부인 하교하심을 감히 거역할 바 아니로되, 귀댁에 남자가 아니 계시고 부인만 계신데 과객이 임의로 내당에 들지 못하올소이다." 시비 들어가더니 또다시 나와 전하되, "박명한 과부 장씨는 나이 칠십이 되었고 집에 거느린 자식이 없사오니, 귀객이 하루 밤 지냄이 무슨 험이 있으리요? 또한 비복의 말을 들으매, 노인이 친히 보아 알고자 하는 일이 있어 다시 청하오니, 번거로이 여기지 말으시고 잠깐 별당으로 들어오심을 바라나이다." 이러구러 석양이 창창어(倡倡於) 서산하고 명월이 배회어(徘徊於) 등곡이라. 마지 못하여 시비를 따라 별당에 다다르니 노귀 여러 비복을 데리고 따라오며 가로되, "사람의 얼굴이 혹 같은 이도 있거니와 걸음 걸어가시는 양이 더욱 같으니 이는 벅벅이(틀림없이) 우리 주인이요, 남은 아니로다." 생이 듣고 헤어되, '일정 저의 죽은 주인과 방불하매 그러하는도다' 하며 들은 체 아니하고 당상에 오르니, 집이 비록 화려하나 곳곳이 퇴락하여 진애(塵埃 먼지) 가득하고 초목이 황량하더라. 이윽고 석반(저녁 밥)을 드리니 야소산채(산나물)가 풍걸가식(빈약)일너라. 상을 내매 시비 들어와 고하되, "부인이 나오시나이다." 하거늘, 생이 십분 황공하나 피할 곳이 없어 계하(층계 아래)에 내려 섰더니, 낮에 보던 노구와 사오 차환이 부인을 옹위하여 섬(돌 계단)에 다다르매, 부인이 친히 팔을 밀어 당에 올리거늘 생이 부복 사양 왈, "소자 감히 격례(格例)를 당치 못하겠나이다." 한대, 부인이 먼저 올라 서벽에 정좌하고 생을 동벽으로 청하거늘, 생이 재삼 공경하여 영외에 두 번 절하고 꿇어 엎드리니 부인이 답례하고 좌우를 명하여 등촉을 밝히고 가로되, "존객은 예법을 과도히 말으시고 평안히 정좌하시면 노신이 일단 고할 말씀이 있사이다." 생이 부득이 다시 몸을 굽혀 절하고 염슬(斂膝 무릎을 붙여 단정한 자세) 공수(拱手 공손히 양손을 모아 잡음)하여 부인 말씀을 기다리더니, 부인이 한번 보고 눈물이 종횡하여 정신을 차리지 못하거늘, 생이 가장 고히 여겨 고쳐 일어 절하고 묻자오되, "낮에 노구와 모든 비복 등이 소자를 보고 마음을 슬퍼하거늘 자못 고히 여겼삽더니, 부인께옵서 또 이렇듯 하시니 알지 못 게라. 무슨 연고가 있나이까?" 부인이 나삼을 들어 눈물을 씻으며 가로되, "노첩이 이 말씀 묻잡기 기이하오나, 귀객은 성명은 무엇이며, 연세는 얼마나 하며, 고향은 어디시며, 이제 어디로 향하시나이까?" 생이 부복 대 왈, "소자의 성명은 서계조요, 하람부 계릉 땅에서 사옵더니, 마침 행시에 참여하와 회시 보러 경사로 가오며, 나이는 십오세로소이다." 부인이 굴지하여(손가락을 꼽아) 세다가 더욱 슬퍼 눈물을 무수히 흘리거늘, 생이 또한 감창하여 눈물을 뿌리고 가로되, "부인이 이렇듯 하심을 보오니 소자 마음을 진정치 못하올지라. 원컨대 부인은 밝게 이르사 실상을 그이지 마옵소서." 부인이 천의를 바라고 길이 탄식 왈, "노신의 가장은 전 상서 소한경이니, 본래 번성 사람으로 선제 붕하시고 세상이 뜻과 달라 벼슬을 사양하고 이 땅에 와 천거하옵더니 삼십년 전에 세상을 버리시고, 두 낱 자식을 의지하와 이 몸이 구구히 세상에 머물더니, 십오년 전에 장자 소윤이 진사둘재하여 이부로서 난계 현령을 제수하시매 그 처 정씨로 더불어 임소로 가고, 노신은 차자 위로 더불어 이 곳이 있삽더니, 윤이 한번 가매 어안(魚雁, 簡札 편지)이 돈절(頓絕)하와 과만(瓜滿 공무원 임기)이 지나오되 소식이 없기로, 소위가 제 형의 소식을 알려 하옵고 노신께 하직하옵고 간지 또한 열두해라. 분명 두 자식이 중로에 적화에 죽었을지라. 노인이 이런 망극한 경상을 보고 차마 어찌 일시나 세상에 머무리이까마는, 다만 두 자식의 해골을 찾지 못하옵고 또한 선영 신위를 맡길 곳이 없어, 지금 구차히 목숨을 부지하였나이다." 언필에 실성 통곡하시니, 그 참혹함을 목석이라도 감동할너라. 생이 자연 마음이 비감하여 또한 눈물을 흘리며 묻자오되, "부인의 궁천지통은 이미 들었삽거니와, 소자는 범상한 과객이거늘 불러 보시고 이렇듯 감창하심은 어찌니까?" 부인이 읍 탄 왈, "귀객을 대하여 사정을 베푸나니 듣고 괴이타 말으소서. 귀객의 용모와 거지(擧止)를 보오니 이곳 장자 소윤과 호발도 다름이 없삽고, 연치가 바야흐로 십오세라 하시니 이는 윤이 떠나던 해라. 이러므로 죽은 자식을 만난 듯하여 자연 슬픈 마음이 간절하여이다." 생이 다만 듣고 위로 왈, "양위 영랑의 정령한 기별을 못 들어 계실진대 길이 수천리 밖이요, 또 듣자오니 사방에 도적이 일어나 길이 막혔다 하오니, 부인은 관심(안심)하오셔 나중을 바라소서." 하며 위로하니, 부인이 주찬을 내와 서로 권하며 정회를 베푸니 의의한 정이 모자간 같더라. 밤이 장차 삼경이 되매, 부인이 일어나 들어가시며 왈, 평안히 유숙하시고 늦게 가심을 당부하시고 가거늘, 생이 부인 경상을 생각하여 월색을 뜨여 배회하다가 심회를 풀 곳이 없어 가동을 명하여 행중의 단금을 내어 낙춘방이라는 가사를 지어 곡조에 올려 단금을 의지하고 두어 조를 노더니, 노귀 나와 거문고를 두드리며 왈, "귀객이 이 가사를 배운 곳이 있을지라, 그이지 말으소서." 생이 답 왈, "이 말은 그대 나를 구박함이로다. 내 아까 부인 경사 참혹하심을 보고 과연 내 심사 감동하여 졸연히 가사를 지어 곡조에 올렸거든, 어이 배운 곳이 있으리오?" 노귀 대 왈, "상공은 노첩을 하 천인이라 하여 업수이 여기지 말으소서. 첩이 잠간(조금) 음율을 아는지라. 이 곡조는 낙춘방이라. 우리 소상공이 난계로 가실 제 대부인을 위하여 이 가사를 지어 놀으시던 바라. 아지 못 게라. 존객은 어디로 인연하여 이 곡조를 희롱하시니까?" 하며 그 가사 일편을 외우니, 자(字)가 소작에 한 자도 다름이 없거늘 생이 거문고를 밀치고 악연히 물러 앉아 이르되, "세상에 괴이한 일도 있도다. 이 가사를 아까 지어 거문고에 올려 시험하더니 어찌 남이 먼저 나의 의사를 알아 지은 줄을 알리요?" 하니, 노귀 그 거문고를 이기 보더니 문득 놀라 왈, "귀객은 이 거문고 난 곳을 자세히 이르소서. 세상에 괴이한 일도 있도소이다. 귀객이 아니 우리 소상공이시니까? 이 거문고는 우리 소주인이 놀으시던 것이라. 이는 진실로 하늘이 지시하심이신가? 진실로 의혹을 깨닫지 못하리로소이다." 생이 이 말을 듣고 왈, "이는 내 집 세전지(世傳之) 귀물이라. 어찌 그대 집 소상공이 알 바리오. 혹 같은 기물이 아니 있으랴?" 하며 심중에 헤아림이 있는 고로, 가장 의혹하여 즉시 거문고를 가동을 맡기고 방에 들어가 전전불매하더니 동방이 장차 밝았는지라. 소세(梳洗)를 마치고 종인으로 하여금 노고를 청하여 하직을 고한대, 부인이 일변 조반을 재촉하며 바삐 나와 생을 이별할 새 전전한 정과 연연한 회포 모자간 이별에서 더하더라. 생이 재배 하직한대 부인이 견권(繾綣)하여 차마 떠나지 못하여 크게 우니 생이 재배 하직한대, 부인이 시비를 불러 "의롱(衣籠)을 내어오라." 하여 쇄금을 열고 깁 나삼 한 벌을 내어주어 왈, "이것은 노신의 손으로 근로하여 남녀복을 만들어 여삼은 며느리 정씨를 줘 입히고, 이 옷은 자식 윤을 입히려 하다가 등화(燈花 불똥) 떨어져 조그마한 궁기(구멍) 있기로 입히지 못하여 그저 두었더니, 윤아의 돌아옴이 막연하오니 이것은 첩의 자식 생각하는 뜻을 옮겨 귀객에게 전하느니, 비록 누추하오나 입으시고 노첩의 견권하는 정을 잊지 말으소서. 이번 과거는 필연히 참상(높은 벼슬)하실 것이니, 가실 때에 사람을 난계로 보내어 양아의 존망을 탐문하여 노첩에게 전하시면 지하에 돌아가 결초보은하리이다." 설파에 대성통곡하시니, 일가 노복도 다 통곡하니 상사난 집 같더라. 그 중에 노고는 생의 소매를 붙들고 더욱 통곡하며 가슴을 두드리니, 원래 이 노고는 소윤의 유모 주씨러라.

생이 또한 민울(悶鬱 안타까움)하여 권권이 이별하고 나귀를 몰아 길을 떠나니, 마음이 자연 번뇌하여 공명에 뜻이 없고 의혹이 조발하여 천만가지로 헤아리되 능히 깨닫지 못하고 사오일을 행하더니, 한 곳에 다다라는 석양은 재를 넘고 인가는 격원하여 정히 민망하더니, 홀연 풍편에 들으니 옥적성(玉笛聲 옥피리 소리)이 은은히 들리거늘 마음에 신기하고 반가와 적소리를 따라가니, 낙락장송은 벽계를 둘러 있고 절벽 층암은 반공에 닿았는데, 동자 수삼인이 한 노인을 모시고 단암 위에 앉아 청학을 춤추이며 옥적을 불거늘 생이 우러러 보니 표표정정(表表亭亭)함이 인간 사람이 아니거늘, 전도히 말에 내려 가동을 물리치고 단신으로 풀잎을 붙들고 전전히 올라가니, 바위는 깎은 듯하여 발을 붙이지 못하고 손에 더우잡을(움켜잡을) 것이 없어 길이 우러러 노인을 향하여 두 번 절하니, 동자가 학을 타고 내려와 이르되, "낭군은 이 학의 자취를 따라오소서." 하거늘, 생이 그제야 그 학의 자취를 따라 올라가니 평지 같더라. 생이 나아가 다시 절하고 눈을 들어 노인을 바라보니, 창안학발이 표연하고 갈건야복이 인세(인간세상) 사람 같지 아니한지라. 생의 절함을 보고 조곰(조금)도 몸을 요동치 아니하며 문득 이르되, "나는 그대 조부의 벗이라, 무례함을 괴이 여기지 말라. 그대 대인은 무양하시며, 자친은 어디 머무시느뇨? 연이나(어쨌거나), 약년(젊은이)이 원정 누천리를 발섭(跋涉)하매 기력이 곤비(困憊)할지라. 한 잔 차로 위로코자 하여 청하노라." 생이 대경(크게 놀라) 왈, "소자는 지나가는 아이라. 묻지 아니하시매 감히 성명을 고치 못하였삽거늘, 선생이 어찌 알았으며 조부의 붕우라 하시고 부모의 안부를 물으시니까? 소생의 한(할)아비는 세상에 버린지 육십여년이요, 아비는 살았으나 하방 미천한 인생이라 절단코 선생 안전에 뵈옴이 없을 것이요, 어미는 십오년 전에 소자를 낳삽고 즉시 죽었는지라, 선생의 물으심을 알지 못하리로소이다. 이는 선생이 지나가는 아이를 조롱하시는도다." 노인이 잠소(潛笑) 왈, "그대는 늙은이 말을 족가치 말라. 이후에 알 일이 있으리라." 하고, 동자를 명하여 옥호에 향차를 부어 연하여 삼 배를 권하니, 생이 받아 마시니 차도 아니요 술도 아니로되 정신이 쇄락(灑落 개운)하여 몸이 청천을 향하는 듯하더라. 스스로 생각하매 이전 마음과 다른지라, 일어나 두 번 절하고 머리를 조아 사례 왈, "아까 주시는 차호는 세상 사람이 감히 먹을 바 아니옵거니와, 감히 묻잡나니 선생께옵서 뉘시며 소자를 어찌 인도하와 선약을 주옵시나이까?" 노옹(老翁)이 왈, "내 고구를 잊지 못하여, 그대를 인도하여 두어잔 차를 권하니 이로조차 정신이 훤츨하며 백병이 소제하고 문장이 자출하느니 다른 말을 다시 묻지 말려니와, 그대 대인은 못 보완지 이십년이요, 그대 모친은 즉금 산중에 수양하거늘, 어찌 나를 속이느뇨?" 하고, 또한 일 봉서를 주시거늘 생이 받아보니 하였으되, '외손자 소생에게 부치노라' 하였거늘 생이 받아들고 보니 그 글 뜻은 인간 글과 달라 알지 못하나, 다만 비봉에 '외손자 소생에게 부치노라' 하였거늘 크게 의혹하여 왈, "소자 아옵지 못하거니와, 외손이라 하시며 성이 서가여늘 소씨라 하심은 어인 말씀이오니까?" 노인이 채 못들어 부채를 치며 우어 왈, "늙은이 망령되어 한 자 그릇(잘못) 썼은들 무슨 허물이 있으리요? 수이 돌아가 공명을 이뤄 태평으로 지내라. 다시 볼 날이 있으리라." 하고, 동자를 명하여 "모셔 평지에 내리어라." 하며 소매를 떨치고 일어나니, 경객간에 거처를 모를너라. 그 동자가 길을 인도하거늘, 생이 말을 물으되 대답치 아니하고 손을 이끌어 평지에 내리우고 나는 듯이 가니 생이 의혹하여 왈, 소상서 집에서 괴이한 일이 심중에 맺히어 생각할 즈음에 또한 도사가 소생이라 일컬으니 더욱 의심하여 과거를 보지 말고 도로 집으로 내려가 부친더러 근본을 묻고자 하다가 고쳐 생각하되, '내 어렸을 제부터 보니 부친의 행사가 사람을 살해하고 재물을 노략하기를 위업하니 혹 소지현의 일가가 우리 부친에게 죽은가? 나도 또한 서가의 혈육이 아닌가?' 이처럼 생각하되 깨달을 길이 없어 또 헤아리되, '그 노인이 나를 속이지 않으리니 그 말을 좇아 경사에 가 과거를 할진대, 몸이 귀히 된 후에 천하 사람으로 의논하여 근본을 찾으리라' 하고 강잉(強仍)하여 경성에 이르니라.

과거날을 기다려 장중에 들어가 장원에 뽑히니 천자 칭찬 왈, "이십 전 장원이 전고(典故)에 희한한 일이로다." 하시고, 즉시 한림 학사를 제수하시니 명망이 일국에 으뜸이라. 나라에서 별궁과 노비, 금은을 무수히 상사하시니 명귀함이 극하되, 오직 생은 중정에 의혹한 일이 날로 더하여 부귀에 뜻이 없고 벼슬을 갈고 고향에 돌아가 의심하는 일을 풀고자 하는지라. 이에 상소하여 벼슬을 사양할 새 그 글에 하였으되, '소신 계조는 하방 미천한 몸으로 천은이 망극하와 외람이(되게) 옥당 한원에 처하였사오되 연기(나이) 미성하와 직임을 감당치 못하올 뿐 아니라, 신의 아비가 나이 육십이 넘삽고 슬하에 다른 형제 없사오며 산천이 하 원하여 신사 그쳤아오니, 복원(伏願 바라오니) 황상은 신의 벼슬을 갈아 고향에 돌아가 늙은 아비를 위로하옵고 돌아와 황은을 갚사오리다' 하였거늘, 천자 비답(가 또는 불가의 대답)하시되, '경의 나이 비록 적으나 재덕이 겸전하였으니 진짓 국가 주석이요, 짐의 고공이라. 어이 일시나 떠나리오. 마땅히 경의 아비를 벼슬을 주어 부르리니 다시 사양치 말라.' 생이 십분 황감하여 다시 상소하여 왈, '신의 아비 하방 불과 조그마한 백성으로 불학 무술하와 식견이 없사오니 어찌 조반(朝班)에 참여 하오리까? 성교(聖敎)를 거두시고 신의 어미가 신을 낳삽고 일삭이 못하와 죽었사오니, 돌아가 아비 얼굴이나 보고 어미 무덤에 귀성하옵게 하시면 수이 돌아와 성은을 갚사오리이다.' 천자 불윤(不允)하시니, 생이 마지 못하여 직임을 살피니 단엄 정직함이 조정에 제일이러라.

이 적에, 왕후 귀척(貴戚)에 옥례(우례) 두니 구혼할 이 구름 모이듯 하되, 생이 의혹함을 풀지 못하였고 또 부명이 없은 고로 혼인에 마음이 없어 사면으로 허치 아니하였더니, 병부상서 왕경은 당금의 어진 재상이요, 부인 서씨는 천자 정궁 낭랑의 친제라. 일찍 삼자 일녀를 두었으되 위로 삼자는 다 성취하고, 여아의 명은 경아요, 나이 십오세라. 화용월태(花容月態)는 세상에 쌍이 없고 겸하여 임사의 덕이 있어 일동 일정이 다 법도가 있어 비례 불행하니 진실로 여중 군자라. 이러하므로, 부모가 과애하여 택서(擇婿)하기를 각별히 하더니, 일일은 조회하고 돌아오며 희색이 만안하여 바삐 소저를 불러 앉히고 왈, "여아의 배필을 정하고라!" 부인이 문 왈, "어떤 사람을 보시고 저다지 즐기시나이까?" 상서 답 왈, "신방 장원 한림 서계조는 하늘이 내심이라. 용모 풍골은 이르지 말고 문장 재덕이 만조에 독보라. 나의 평생 초견(단 한번의 부탁)이오니 청하여 혼인을 정하사이다." 부인이 또한 깃거 왈, "진실로 상서의 말씀 같자올진대 우리 집 복인가 하오되, 부디 살피사 대사를 허루이(허술히) 말으소서." 상서 답 왈, "내 어찌 택서하기를 범홀히 하리이까? 이 아이 나이 겨우 십육세로되 행동거지 우리의 거지(어른 품행) 내는지라. 이러므로 황상이 일컬으사 '대한림 서계조의 청덕 의용은 세상에 하나이요, 문장 호걸이라' 하시매 만조 백관이 그 말씀을 다 항복하는지라. 두리건대(두려워하건대) 다른 사람이 알까 하나이다." 하고 즉시 매파를 불러 서가에 구혼하는 뜻을 이르고 왈, "여아의 용모 재덕은 그대 이미 아는 바라. 좋은 말로써 달래어 정혼하면 중상하리라." 한대 매파가 대 왈, "인간에는 소저의 짝이 없을까 하였더니, 서한림이 방불하오면 천첩이 어찌 중매 도움을 사양하리이까?" 하고, 즉시 서학사 부중에 가 명첩(名帖)을 드리고 안으로 들어가니, 생이 명첩을 받아보고 매파를 청하여 친히 문 왈, "그대가 이리 옴은 필연 혼인을 이룸인가 싶으거니와, 내 혼자 있어 친명을 받잡지 못하였는지라. 이러므로, 아무 데라도 혼인은 일절 의사 없으니 존명을 쫓지 못하노라." 매파가 악연 왈, "노신이 노야께 말씀하옵기 당돌하오나 감히 한 말씀을 아뢰나니, 당금 병부상서 왕상서댁 소저는 비단 절대 화용이라. 태임의 덕과 이비(二妃 정절)의 행실이 있고 겸하여 문장이 이백, 두자미(두보)에 지내니 진즛 요조숙녀요, 군자호구라. 택서 유년(여러 해)에 상공 풍채를 보시고 노신으로 하여금 진진의 조혼 언약을 잇고자 하심으로, 명을 받자와 멈하에 아뢰는 말씀은 위초요비위조(초를 위함이지 조를 위함이 아님)로소이다. 이제 상공께옵서 거절하오니 다시 기록할 말씀이 없나이다." 생이 답 왈, "만일 그대 말 같을진대 왕상공 청덕을 바란지 오랜지라 어찌 명을 봉승치 않으리오마는, 혼인은 인간 대사라. 친명 없이 자단하기 예 밖이라. 이러므로 봉승치 못하나니, 그대는 이 뜻으로 회고하라." 매파가 다시 개설치 못하고 낙막(落寞)히 돌아와 한림의 말씀을 고하고 왈, "천첩이 서한림을 보오니 이는 하늘이 명하신 소저의 배필이라. 타일에 혼례를 이루시려니와, 즉금은 소장(蘇秦과 張儀)의 구변(口辯)이라도 다시 달래지 못할러이다." 상서가 왈, "차인이 선성군자라. 혼인 중사를 혼자 처치 아니하리니 내 친히 가보고 청하리라."

명일(다음날)에, 상서가 친히 한림 부중에 가시니, 학사가 의관을 정제하고 계하에 내려 공경하여 서로 마주 읍하고 당에 올라 빈주예(賓主禮)를 파하매, 생이 고쳐 앉아 공수 사 왈, "생은 초야 천한 인생이라. 요행으로 금방에 올라 벼슬이 옥당에 있사오니 대인의 청덕을 앙모하오며 한번 나아가 문후치 못하였삽더니, 금일 존가(尊駕 귀한 행차)가 도리어 천가에 욕임하오시니 불승 황감하여이다." 상서가 답 왈, "노부가 국은을 입사와 벼슬이 대신에 모첨하였사오나 재덕이 전혀 없어 성상의 총은을 갚삽지 못함을 한탄하나니, 학사의 청덕이 일국에 들리오니 이는 노부의 우러러 흠모하는 바라. 이러므로 문하에 나아와 밝게 가르침을 듣고자 하며 겸하여 관주의 지음하는 정을 본받고자 함이러니, 겸손함을 어이 이렇듯 과히 하시느뇨?" 생이 일어나 사례 왈, "대인의 명을 감당치 못하리로소이다. 연이나, 소생이 경망한 죄(술 대접)를 당코자 하나이다." 상서가 흔연(欣然) 왈, "주인이 이르지 않아도 객이 먼저 청코자 하더니, 어찌 사양하리오?" 생이 시비를 명하여 옥호에 향다(香茶)와 금반에 진찬(珍饌)을 들여 좌석에 벌이고 친히 잔을 들어 수삼배에 이르니, 상서가 생의 손을 잡고 왈, "어제 매파의 말이 있더냐?" 생이 공경 대 왈, "작일(어제) 매파의 전하는 말씀이 있사오되 소자 분에 넘사옵고, 또한 친명이 없삽기로 봉승치 못하였나이다." 상서가 왈, "노부가 학사를 흠앙(欽仰)하는 바 있기로 청한 말이러니, 학사가 행여 '모래를 주고 진주를 받으려는가' 하여 거절하였거니와 내 어찌 모르리오? 연이나 불초한 여식이 비록 임사 - 태임(太任)과 태사(太姒)는 다 여중 성인이시니 태임은 주 문왕 어머님이요, 태사는 주 무왕 어머님이시라 - 의 덕(德)이 없으나, 족히 학사의 건즐(巾櫛 아내나 첩이 됨)을 받들만 하니 의혹치 말고 좋은 언약을 허락함이 어떠하시뇨?" 생이 피석(避席 경의를 표하려 자리에서 일어남) 대 왈, "대인이 소자의 용렬함을 잊으시고 거두어 슬하에 두고자 하시니 은혜 망극한지라 감히 사양하오리이까마는, 소자는 본이 남방 미천한 몸이라 가세 심히 천박하고 재질이 노둔(駑鈍)하와 향당에 추임 받는 바 되었삽더니, 천은이 망극하와 일시 영귀하온들 감히 공후 귀택에 결혼하오리까? 하물며 가향이 격원하와 소자의 돌아옴을 손꼽아 기다리옵고 친명이 없사오니, 자식이 되어 어찌 아비께 고치 아니하고 인간 대사를 자처 하오리까? 하물며 소자 심하에 의혹하는 일이 있기로, 아직 가취 의(혼인 의사)는 막연하여이다." 상서가 답 왈, "노인이 비록 아는 일이 없으나 잠간(약간) 사람의 동정을 아느니, 그대가 어찌 촌야 천가에 나리오? 선세(先世) 비록 산야에 뭍혔으나 반드시 근본이 있을지라. 왕후 장상이 어찌 씨 있으리요? 일찍 계지(월계수 가지)를 꺾어(月宮折桂 장원급제) 몸이 금마 옥당에 처하였으니, 어찌 그다지 겸손하여 노부의 은근한 뜻을 저버리느뇨? 비록 부명이 없사오나 대순(순임금) 같은 천하 성인도 불고 자처하였사오니, 그대 이제 아름답고 정정한 숙녀를 얻어 부친을 기다릴진대 어찌 요망한 세사를 헤아리느뇨? 바라건대, 그대는 다시 생각하라." 서생이 다시 생각하여 왈, "감히 존명을 거역하는 바 아니라, 다만 마음에 의혹하는 일을 아비더러 일러 너래히 안 후에 만일 버리지 아니하시면 아비 명을 좇자와 돌아와 슬하에 있사와 대인의 권권하온 뜻을 갚사오리이다." 설파에 기색이 참담하고 말씀이 정직하니 상서 듣고 강박히 권치 못하여 다만 이르되, "장부 일언이 중천금이라 하니 타일에 언약을 저버리지 말라." 서생이 존수 왈, "소자가 심사가 평안하고 친명을 얻으면 대인께 이택하옴을 깊이 바라나니, 어찌 변함이 있사오리이까?" 상서가 날이 저물매 돌아가니, 이로조차 왕래하여 공경함이 비길 데 없더라.

각설이라. 영락 황제 즉위하연지 오랜지라. 노불청정하사 정령이 능히 해내에 미치지 못하여 황해 백성에게 펴이지 못하기로 남방 각도 각읍의 출척(黜陟)이 분명치 못하매, 백성이 모두 도적이 되어 처처에 강상지변이 연속하는 고로, 천자 크게 근심하사 충신 중 명망 있는 자로 가리어 남방을 진무(鎭撫)코자 하실 새, 특별히 서계조로 병부시중 겸 태우를 제수하시고 남방도순 안찰어사를 하시고 인검(引劍)과 부월(斧鉞)을 주시며 왈, "과인의 몸을 경(卿)에게 맡겨 보내나니, 각도 각읍의 자사, 군수, 현령의 선악을 살펴 출척을 임의로 하며, 민간질고(民間疾苦)와 원억(冤抑) 등사를 자상히 적발하여 어진 이름을 빛내고 삼년 내에 돌아와 짐의 근심을 덜게 하라." 하시니, 서한림이 백배 사은하고, 즉시 행장을 차려 상도(갈 곳)에 선문(미리 통지)하고 길을 떠나려 할 제, 왕상서가 한림을 청하여 전송하더니 술이 반(웬만큼)취하매 어사의 손을 잡고 왈, "노부가 그대로 더불어 정을 맺으매 하루 만 못 만나도 삼추(三秋)같이 여기더니, 이제 삼년 이별을 당하니 정회 장차 어떠하리요? 옛사람이 자식을 숨기지 아니하였나니 하물며 그대는 나의 애서(愛壻)라, 무슨 험이 있으리오?" 즉시 장자 일민을 불러 왈, "너는 내당에 들어가 부인께 전하라. 내 이제 서학사로 더불어 들어가리니, 너희 삼형제 각각 처자를 거느리고, (즁의모호) 부인은 여아를 데리고 나오라." 하시니, 왕생이 수명하여 들어가니, 서생이 비록 상서의 대덕(大德)을 심복하여 혼인을 정하였으나 처자의 선악을 알지 못하여 울민하더니, 이 말을 듣고 심하에 가장 기쁘나 거짓 사양 왈, "대인 성의 비록 이러하시나 소자가 부인께 뵈옴이 외람하옵고, 하물며 내당에 들어가옴이 더욱 예(禮) 아닌가 하나이다." 상서 대소 왈, "노부는 천자를 모시고 평안히 있고 학사는 황명을 받자와 만리 원정을 가니, 어찌 작은 혐의를 꺼리리요?" 하고, 삼자로써 생을 붙들어 손을 잡고 내당에 들어가니, 중당에 주렴을 지우고 난간에 날이 고요하더라. 그 가운데 산호 교의(交椅 의자) 셰흘(셋을) 놓아 빈주(賓主)를 분하였으니, 서벽 두 좌는 상서 양위 앉을데요, 동벽은 서생 앉을 곳일러라. 부인이 장자 병부시랑 일민의 처 주씨와 차자 이부낭중 천민의 처 방씨와 삼자 한림 명민의 처 조씨를 다 각각 거느리고 뜰에 나 맞을 새, 이때에 생이 어사하신 통천관과 백오대를 띠고 대신의 장복을 갖추어 들어오다가 부인이 나와 맞음을 보고 진퇴 읍양(揖讓)하는 양은, 수양 일지춘풍세 우중에 휘두는 듯 추상 같은 기질이 사람으로 하여금 정신이 어질하게 하는지라. 상서가 손을 이끌어 당상에 오르매 시비를 명하여 교위를 없이 하고 자리에 앉으매, 이때 부인이 삼부를 거느리고 서벽하고, 상서는 학사를 거느리고 동벽하고, 삼자는 남벽하여 좌를 정한 후에, 상서가 좌우를 살피다가 왈, "이 중에 여아 홀로 참여 아님은 어찌뇨? 이는 나의 가법이 부정하여 기탄함이 없도다." 하고, 즉시 시비를 불러 소저를 책하여 왈, "아비가 지기를 대하여 늙은 어미와 모든 동생이 한가지로 볼진대, 너희 홀로 피하며 명을 거역하니 도리 아니라. 빨리 나와 사죄하라." 하시고, 돌아 부인더러 왈, "전일 서학사의 말 곧이 하면 과도타 하시더니, 오늘은 친견하매 진실로 어떠하니까?" 부인이 눈을 들어 생을 보니, 옥면 화안이 진세간 기남자라 희연함을 이기지 못하더니, 상서의 물으심을 듣고 옥치(玉齒)를 열어 함소(含笑) 답 왈, "상공이 오늘 존객을 대하여 말씀을 과히 하시니, 배작(拜爵)의 곤하심인가 하나이다." 말을 마치며 몸을 일어 생을 향하여 가로되, "가군의 이르심을 좇아 상공의 도덕 풍물을 이기듯(이렇듯) 잡고 평일 앙모하옴이 깊삽더니, 오늘 더러운 집에 욕되이 임하시니 흔행함을 이기지 못하리로소이다." 한대, 학사가 일어나 두 번 절하고 공경 대 왈, "대인이 소생 같은 인사를 권애하심을 입사와 오늘날 부인 안전에 뵈옵고, 또한 과도히 은애하심을 입사오니 경희 과망(慶喜驚喜)이로소이다." 하며 눈을 잠깐 들어 부인을 바라보니, 비록 연광이 높으나 용모 탁월하여 유한 정정함이 소년 빛이 감추지 아니하였고, 가장 법도가 있어 덕화가 있는 줄을 가히 알여라. 또한 세 부인이 다 온공 정정하여 풍채 수려하니, '이 여자의 현숙함을 가히 알리로다' 하며 후히 기꺼워하더라. 상서가 낭자의 나옴을 재촉하시니, 유모 초운이 민망하여 계하에 꿇어 고하되, "소저가 요사이 기운이 불평하여 감히 존전에 나오지 못하옵고, 또한 정신을 수습치 못하와 부르시는 존명을 봉승치 못하오니, 천비의 태만하온 죄를 청하나이다." 상서가 미처 답하지 못하여 부인이 가로되, "이 아이 평일 어버이 명을 거스린 바 없더니, 이제 이렇듯 하니 일정 병색이 적실하옵고, 또한 양례로써 빛난 학사에 상대함이 예 밖이라, 상공은 이기 살피소서." 한대 상서 왈, "이 어인 말씀이까? 내 서랑으로 더불어 혼사를 언약하매 천지지신이 다 아느니, 비록 예(혼례)를 행치 아니 하였으나 서군은 곧 우리 집 서랑이요, 경아는 서씨의 며느리라. 연고 철애하여 미처 예를 이루지 못하였으나, 의외에 왕명으로 남방으로 향하매 서랑의 환조(還朝)할 기약이 삼년이라. 이제 여아가 부모 안전에 한 잔 술로 원정하는 가장을 위로함이 어찌 마땅치 아니하리요?" 한대, 학사가 상서께 여짜오되 "대인 말씀이 소자로 하여금 감은하옴이 무궁하오나 부인 말씀이 당연하옵고, 소저 아니 나옴도 예모에 당(정당)한 일이오니, 소자 하직을 고하나이다." 한대, 상서가 생의 손을 잡아 앉히고 가로되, "내 하는 일이 비래지사를 알거니와 구태여 조금도 해로움이 없나니, 현서는 노부의 취중 인사를 웃지 말고 여아를 한번 보라." 하시며, 초운을 꾸짖어 왈, "자식이 아비 말을 순수치 아니하니 삼강(三綱)이 무너지고 오륜(五倫)이 상하는지라. 빨리 나와 죄책을 감당할지어다." 초운이 가장 민박(憫迫)하여 이대로 전하니, 소저가 경황 실색하여 유모더러 물으되, "친명이 이렇듯 엄중하시나 무관한 과객을 보기는 여행(여자 행실)이 아니라, 차사를 어찌하리요?" 초운이 왈, "상공이 취하실 뿐 아니라 중정의 헤아림이 계신 고로, 서어사를 내당에 청하여 부인과 삼 소저를 거느려 한가지로 보게 하시고 소저를 부르시니, 아니 가시든 못하리이다. 부모의 명을 좇아도 또한 예문(도리)이라, 소저는 길이 생각하소서." 강권하더니, 그 사이 연하여 재촉하시니 소저가 마지 못하여 부끄럼을 머금고 장복을 잠깐하고 나오니, 유모가 우어 왈, "우리 소저가 이제는 서한림의 보배되리로다!" 소저가 더욱 부끄러움을 참고 연보를 나직히 하여 좌석에 이르니, 학사가 낭자 나옴을 보고 앉았지 못하여 일어서니 완연히 낭자로 마주 섰는지라. 소저가 나아가 예함도 어렵고 그 세(勢)에 앉기도 불가하여 부인 곁에 고개를 숙이고 섰으니, 생이 또한 공수하고 섰을 새 추파를 올려 소저의 용모를 잠깐 바라보니, 윤택한 얼굴이 금분에 목단화가 아침 이슬을 머금은 듯, 자약(自若,綽約)한 태피(蛻皮)는 옥분함(玉粉函)에 화사우(華奢尤)를 띄였는 듯, 표표 정정함이 세상에 빼어나는지라. 생이 한번 보매 정신이 비월하여 선궁에 섰는 듯하더니 상서가 소저를 책하여 왈, "네 비록 아이나 귀객을 대하여 예배 더딤은 어찌뇨? 연이나 어버이 가르침이 없으매 과히 책하지 아닐러니 모로미(須只 모름지기) 별석에 물러 예배하라." 소저가 승명(承命)하여 좌에 나와 재배한대, 학사가 또한 공경하여 답례하니 상서가 보다가 대소 왈, "비록 화촉을 베풀지 아니하나 완연한 교배로다. 신랑의 눈에 신부 어떠하뇨?" 생은 잠소하고, 소저는 더욱 부끄러 삼형제 곁에 몸을 의지하고 섰더라. 상서가 부인더러 왈, "서군은 나의 사위요, 여아에는 가장이라. 이제 원별을 임하였으니 어찌 한 잔 술로 위로치 아니하나이까?" 부인이 잠소 왈, "상공의 명을 기다림이 아니라 첩의 박함이로소이다." 인하여 옥반에 가효를 내와 나누는 잔이 여러 순 지나매, 학사가 취흥을 띄어 말씀이 활발하고 자주 눈을 들어 소저를 살펴보니 상서가 소 왈, "백년 공락할 처자를 성례 전에 저리하니, 나의 애서는 방탕타 하리로다. 연이나 술을 부어 주인의 은근한 정회를 회사함이 어떠하뇨?" 생이 즉시 옥배에 자하주를 가득 부어 상서 양위께 두 번 절하고 쌍수로 받들어 드리니, 상서는 두곳김(두긋김)을 머금어 자리에서 읍하여 받고, 부인은 방석에 내려 답배하여 잔을 받더라. 헌작하기를 마치매 상서 앞에 나아 가로되, "소자가 삼위 숙숙께는 감히 잔을 드리지 못하오나, 소저는 곧 생이 주인이라. 대인과 부인 명령으로 일석(한 자리)에 모였을진대 한 잔 정배를 보내어 진정을 의택함이 어떠하니이까?" 상서 대소 왈, "신랑이 너무 방자하거니와 또한 금할 바 아니니 임의로 하라." 하시니, 학사가 물러나 잔을 거우르고 친히 잔을 잡아 소저께 전하니 상서 왈, "예에 감히 앉아서 잔을 못 받으리니 일어 재배 후에 받으리라." 하시니, 소저 연연한 약질이 부끄러움과 두려움을 이기지 못하여 옥면에 홍광이 취한 듯 몸을 움직이지 못하거늘, 부인이 웃고 왈, "어린 아이 존절을 당하여 몸을 주변치 못하니, 시비로써 도우라." 하신대, 유모 초운과 시비 설매로 소저를 붙들고 예 필 후에 서생의 잔을 받아 단술에 접하더라. 이러구러 홍일이 서산에 떨어지고 옥태 동영이 오르니 월광이 조요(照耀)하여 옥란에 비치거늘, 학사 술이 취하여 각각 하직할 새 피차 떠나는 정이 의의하여 차마 떠나지 못하더라. 이튿날 학사가 숙배하고 옥륜금거의 사마(駟馬 네 필 말이 끄는 수레)를 몰아 남으로 향할 새, 전송하는 장막이 십리에 벌였더라. 왕상서가 삼자를 데리고 막차에 나와 각별히 전송하더라.

길을 떠나 수십일을 행하여 황학산 하에 다다르니, 산천이 수려하고 경개 절승하매 정히 주저하더니, 한 도사가 갈건도복으로 암상에 걸 앉아 옥적을 희롱하다가 생의 행거 다다름을 보고 적 불기를 그치며 팔을 밀어 길이 읍하거늘, 학사가 눈을 들어 바라보니 얼굴이 관옥 같고 거지 비범하여 인간 사람 같지 아니하더라. 점점 나아와 종자를 불러 왈, "행가를 적은 듯 머무르라. 상공께 전할 말씀이 있노라." 하거늘, 학사가 고히 여겨 자세히 보니 전일 만났던 노옹의 앞에서 무학하던 동자거늘, 전도히 수레에 내려 읍하고 가로되, "선동이 어디로서 오며 노선은 무양하시냐?" 동자 답 왈, "풍진환로에 영귀함이 어떠하니이까? 노사가, 태우에 도처 지공진미가 유려하나 만리 원정에 피곤하심을 염려하사 일호 선다를 보내시더이다." 하고, 옥호를 내어 생에게 전하니, 학사가 받아들고 문 왈, "노선은 이제 어디 계시며, 나의 이리옴을 어찌 알을사 선다를 주시더뇨? 향자에(저번에) 친히 가르치심을 입었사오나 높은 자취를 따를 길 없으니 일야(밤낮)에 앙모하는 정회 폐장에 미쳤더니, 이제 그대를 만나니 반가움을 어찌 다 이르리오? 그대는 나를 인도하여 선생 좌하에 뵈옴이 어떠하뇨?" 동자가 대소 왈, "선생 계신 곳이 여기서 삼만여리라. 상공이 가실 곳이 아니라." 하며 또한 약낭(藥囊)을 주며 왈, "이 속에 약이 들었사오니, '정부인께 갖다가 전하라' 하더이다." 학사가 더욱 괴이하여 생각하되, '이 노인은 벅벅이 선객이거늘 나를 이렇듯 권연하심은 어찌며, 또한 정씨 부인은 어떠한 사람인고?' 인하여 옥호와 약낭을 받아 상에 놓고 두 번 절하고 동자더러 왈, "성옹이 깊이 권애함을 입으니 은혜 망극하거니와, 다만 정씨 부인이라 하시는 이 뉘시며 어디 계신고? 진실로 알지 못하여 약을 전치 못하리로소이다." 동자 답 왈, "임시하면(때가 되면) 자연 아올 것이니, 번거히 묻지 말으소서." 하고 읍하여 이별하거늘, 학사가 악연하여 따라 가 다시 말을 묻고자 하더니, 문득 옥적 소리 공중에 나며 순식간에 간 곳이 없거늘, 생이 운거에 올라 옥호를 열고 향다를 맛보니 정신이 쾌활하여 능히 구천을 깨칠듯하더라.

각설, 이 적에 어사가 연로 각읍에 순행하여 탁주 지경에 이르러는, 문득 소상서댁 일을 생각하고 본관에 분부하여 "사처를 소상서댁 별당으로 대후하라." 하니라. 이때 장부인이 이자(두 아들)를 생각하고 주야 경경(耿耿 염려)하여 하염 없는 눈물로 무정한 세월을 보내더니, 일일은 본부 하인 등이 급히 와 별당을 수리하며 운무 장막과 금수 포진을 배설하고 "안찰사또 행차하신다." 하거늘, 장부인이 아무라한 줄 모르고 다만 비복더러 이르되, "우리 집에 각별히 오실 사람이 없으나, 분명 상서 생시의 친한 벗이 오도다." 하시고, 발엿던(버렸던) 집을 각별히 수쇄(收刷)하여 기다리더니, 날이 늦은 후에 안찰사 행차 들으시며, 본관 태수가 관복을 갖추고 국궁 영접하여 호위하니 그 거동이 비길 데 없더라. 장부인이 소루에 올라 구경하시며, 노자를 불러 "안찰사 뉘시며 무슨 연고로 이 집에 사처 하신고? 자상히 알아오라." 하시니, 창두가 급히 돌아와 아뢰되, "옥륜 금거에 앉아 오시는 노야(老爺)는 벅벅이 수년 전에 과거보러 가실 제 댁에 와 계시던 서수재 분명하시되, 풍용이 수려하와 전에서 더하더이다." 장부인이 반기고 늣겨 시비로 하여금 연접할 찬물을 차리더니, 이윽고 어사가 들어와 외당에 앉으며 전에 보던 노고를 찾거늘, 주파가 급히 나아가 계하에 재배한대, 어사 문 왈, "그 사이 무양하신가?" 주씨가 창황간에 자상히 보니 과연 서수재어늘, 반가움을 이기지 못하여 눈물을 무수히 흘리거늘, 어사가 불러 가까이 앉히고 길이 한숨지으며 왈, "부인 기체 안녕하시며, 그대도 내내 일양하신가? 나는 마침 천은을 입어, 외람이 벼슬이 안찰사에 이르러 이 땅을 지날 새, 전일 권애하시던 은혜를 잊지 못하여 다시 뵈옴을 바라고 돌아왔나니, 그대는 나의 미정을 들어가 아룀이 어떠하뇨?" 노고가 급히 몸을 굽혀 다시 절하고 왈, "상공이 무단히 지내시는 관직으로 누실에 욕임하옵시어 설만이 심하와 죄를 당하올까 하였삽더니, 도리어 관접하시니 은혜 난망이로소이다." 어사가 명첩을 써 주거늘 받아들고 급히 들어가 부인께 드리니 하였으되, '한림학사 겸 간의 태우 남방 도순 안찰사 서계조'라 하였더라. 부인이 시비 한 쌍을 내보내어 옥로에 사향을 피워 들이고 말씀을 전하여 왈, "외정에 위의(威儀) 삼열하여 노첩이 감히 나가 뵈옵지 못하오니, 정의에 섭섭하옴을 어찌 다 아뢰오리이까? 외람하옵거니와, 중당에 들어 오시면 반가이 뵈올까 하나이다." 학사가 즉시 관복을 갖출 새 주씨로 옷을 잡혀 장복을 차리더니, 주씨가 곁에서 보니 관복한 얼굴이 더욱 소윤과 같아 호발도 다름이 없더라. 학사가 향로 든 시녀를 따라 내당에 다다르니 장부인이 백발 창안에 소관 소복을 정히 하고 중계에 내려서 맞거늘, 어사가 빨리 걸어 청상에 올라 두 번 절하고 복지 고 왈, "석년에 천신이 중하온 은혜를 입사와 숙야경모 깊사오되 길이 천리 밖이요, 몸이 벼슬에 분주하와 존문기거(尊門起居)를 묻잡지 못하여 앙모(仰慕) 부리옵지 못하옵더니, 마침 황명을 받자와 남방을 순무하올 새 부인 안전에 배알하옴을 바라와 이에 이르렀삽더니, 이렇듯 신근이 부르심을 입사와 존안을 뵈오니, 백발 화안이 삼년 전과 다르지 아니하오니 소자의 미성을 위로함이로소이다. 연이나, 두 자제의 성식을 이제나 들어 계시니이까?" 부인이 답 왈, "그더재(그동안) 태우는 청운에 올라 몸이 금마 옥당에 처하여 명광이 사해에 진동하시니, 노신이 치하하나이다. 첩의 장자 소윤도 비록 용렬하나 이십에 조의를 바라고 이름이 현달하더니 어디가 뉘 손에 죽어 백골이 진퇴되어 유유한고, 혼이 어디를 의지하였는고? 집 떠난 십구년에 소식이 돈절하니 망망한 천지 간에 누굴 의지하여 찾으리까?" 말을 마치며 흐르는 눈물이 비 오듯 옷깃을 적셔 좌석에 고이거늘, 어사 또한 함루 척연 왈, "부인이 이렇듯 상회하심을 보오니 소자도 자연 심사 감창하온 정회를 진정치 못하리로소이다. 묻잡노니, 두 자제 중에 깃친 골육이나 있나이까?" 부인이 왈, "둘 중에 한낱 혈육이나 있으면 소씨 절사를 아닐지라. 비록 저희를 잃었사오나 혈마 어찌하리이까마는, 윤아는 취처한 오년 만에 기처 정씨가 처음으로 수태한 구삭 만에 난계로 가더니, 벅벅이 어미 복중을 떠나지 못하여 적환을 만나 어미와 함께 죽은가 하오며, 차자 위는 제 형을 찾으러 가던 해에 취처 삼년이로되 자식이 없었니다." 어사가 듣고 문득 깨달아 생각하되 '황학산 노선이 날더러 소생이라 하더니, 이번 또 동자로 하여금 약낭을 주며 정씨께 전하라 하매 호의 만단(많은 의구심)하여 하던 중에, 소지현의 부인이 성이 정씨요, 이제 떠난지 십구년이라. 내 나이 또 십구세니, 혹자 내가 그 부인 혈육인가? 나의 얼굴이 소지현과 같다 하여 일가 상하 노복이 다 나를 본즉 저의 주인 만남같이 슬퍼하니 그 어인 연고며, 그 적 노선이 나를 그대 자친(慈親 어머니)이 산중에 무양하니라 하더니 분명 이번 길에 자친을 만나 근본을 알 일이 있을까?' 부인께 다시 절하고 묻자오되, "전일 부인께옵서 소자의 얼굴이 영랑지현과 방불하다 하시더니, 이제 고쳐 보시매 진실로 같은 곳이 있나이까?" 부인이 늣겨 눈물을 짓고 답 왈, "노첩의 천한 자식이 어찌 귀객에 비하리이까마는, 용모 성음과 신장 거지 일호도 다름이 없는 고로, 노신이 상공을 만나 귀인인 줄 있(알았)삽고 죽은 자식을 만난 듯 반갑고 슬픔을 참지 못하올소이다." 하고 시비를 명하여 주찬을 내어 어사를 권하더니, 밖으로서 본관 연상을 아뢰고 홍상 시녀 사오인이 성찬을 받들어 올리거늘, 어사가 명하여 부인 주시는 바 음식 사오 개를 자기 앞에 놓고, 본부 연상을 부인께 드린대 부인이 사양 왈, "상공이 노신을 이렇듯 관대하시니 은혜 감격하오나 외람이 풍상(豐床)을 받잡지 못하오며, 또한 천가의 박찬이 하저(下箸)하실 것 없사오니 더욱 황감하여이다." 어사 대 왈, "아무 박찬이라도 부인 주신 바는 소자의 원이오니 어찌 약소함을 혐의 하리이까?" 인하여 잔을 내와 부인이 친히 잔을 잡아 어사를 권하더니, 사오순배여 지나매 장부인이 새로이 슬퍼 가로되, "노신의 몸을 이렇듯 권염하심을 입사오니 은혜 망극한지라. 미성을 표할 것이 없으니, 전일 가군이 음율을 좋아하여 촉 땅 빈상(濱湘) 강가에 석 상자 고동을 구하여 얻어다가 공교(工巧)한 장인으로 안전에 서매(書梅 서화,매화)들여 주옥으로 장식하여 꾸며 두고 항상 일컬어 천하의 보금이라 하시더니, 가군이 기세하신 후에 장자 윤이 저희 부친 수법을 배워 입때(이때)까지 놀더니 이제는 전할 곳이 없고, 상공의 성의를 갚을 것이 없사와 이로써 드리나니 구구한 정회를 알으소서." 시비를 명하여 "거문고를 내어오라." 하니, 이는 주씨가 어사의 거문고를 보고 저희 감춘 보금과 같음을 부인께 아뢴 연고라. 이날 부인이 다시 생을 만나매 거문고를 보이면 행여 아는 일이 있을까 함이라. 시비가 즉시 침향궤에 금수보으로 싼 거문고를 내어다가 부인 앞에 놓으니, 부인이 친히 갑을 열고 거문고를 내여 어사 앞에 놓으니, 어사가 받아본즉 무늬와 장식한 것이 다 자가의 것과 같으되 잠간(조금) 대소가 있거늘, 가장 고히 여겨 의심이 더욱 깊은지라. 손으로 만져 이시히 보다가 부인께 사뢰되, "이와 같은 품물이 또 있나이까?" 부인이 왈, "한 남기(나무) 두 재목을 내니 하나는 크고 하나는 작으되 한 장인으로 만들었더니, 작은 금은 아자(내 아들)가 난계로 갈 제 가져 가고 이는 집에 두었나이다." 어사가 마음에 크게 깨달아 생각하되, 내 노는 단금이 서가의 세전지물이라 하나 아마도 천가에 있을 것이 아니니, 필연 소지현 일행을 다 죽이고 앗은 기물이 현저하나, 아직 그 말을 창설치 아니하고 절하여 받으니라. 날이 저물매 밖으로서 석반을 올리거늘 부인께 드리고, 부인댁에 차린 밥을 어사 받고, 권연하는 정이 모자간 같더라. 이윽고 식물 단자를 올리거늘 받아보니 백미 삼백석에 금은 오백량이요, 채단이 이십동이라. 시비로 하여금 부인께 드리며 왈, "이것이 비록 박약하오나, 소자가 우러러 부인 권권하시는 정을 표하느니 두어달 양찬(糧饌)이나 보태심을 바라나이다." 부인이 감격함을 이기지 못하여 왈, "상공이 비록 노신의 간고(艱苦)함을 궁극히 여기사 이렇듯 유념하시나, 진실로 과람(過濫)하와 감히 받지 못하나이다." 하고 단자를 도로 보내거늘, 어사가 들고 방석에 내려 서 두 번 절하고 왈, "부인이 소자를 친자같이 사랑하심을 깊이 생각하옵고 경사로서(경성에서) 내려올 제 헌수하려 하옵고 가져온 것이요, 백미는 원로에 수운(배로 운반)하기 어렵사와 본관에 분부하와 삼일 지공을 덜어 계수하온즉 오백석이 되옵기로 소자의 미미한 정성을 표한 일이요, 부정한 기물은 아니오니 어이 과도타 하시나이까? 마침내 받지 않으시면, 소자가 이제 하직을 아뢰옵고 다시 뵈옵지 못하올소이다." 한대, 부인이 듣고 그 은근한 정을 감격하여 사양치 못하고, 인하여 촉을 밝히고 한담하다가 밤이 깊은 후에 나올 새 부인이 청하여 왈, "노신이 감히 우러러 청하기 설만(褻慢)하오나, 기세한 인생을 은근히 찾아 물으심을 입어 떠나기 훌훌하오나 사오일 유하심을 바라나이다." 어사 또한 연연한 정을 억제치 못하여 답 왈, "소자가 비록 무정하오나 어찌 부인 경색을 모르리이까마는 몸이 맡은 바 중임이요, 각 읍에 선문지휘하였삽기로 여러날 머무지 못하여 이일(이틀) 만 유하리이다." 부인이 크게 깃거 사례하고, 좌우에 모신 시비 등이 저의 임자를 만난 듯 반김이 가이 없더라. 평안히 유숙하고 명일에 일찍 소세를 마치매 주파가 나와 문안 말씀을 전하여 왈, "오늘은 종일 하실 것이니 평복으로 들어오심을 청하시더이다." 어사가 본관에 분부하여 '지공을 거두라' 하고 내당에 들어가 부인을 모셔 조용히 말씀하매, 피차 은근한 정이 태산 하해 같더라. 삼일 후에 마지 못하여 하직할 새 부인이 애연함을 이기지 못하여 눈물을 흘려 왈, "노신이 두 자식을 일시에 잃은 후에 혈혈단신이 천지간에 의택할 곳이 없다가 천행으로 어사의 어여삐 여기심을 입사와 은혜를 백골에 새겼삽더니, 이제 홀연이 이별하오니 심사를 장차 어찌하리까? 원컨대 태우는 일로에 무사히 행차하사 임사를 차리실 새, 노첩의 정원을 명념하사 죽은 자식의 자취를 찾아 원수를 갚아 주시고, 해골을 얻어 고향에 돌려보내시면 거두어 선산 묘하에 뭍삽고, 어사의 하늘 같은 은덕을 풀을 맺어 갚사올 것이니 복원 태우는 깊이 생각하옵시며, 또한 청승 궂은 목숨이 그치지 아니하면 진실로 남은 날에 의택할 곳이 없사오니, 태우 환경(還京)하신 소식을 듣자오면 노신이 비복을 거느려 경사로 올라가 태우의 은덕을 입어 문하에 의지하여 이 잔명(남은 생애)을 맡기고자 하옵나니, 이른바 천지 비록 광대하나 노신의 일신이 난택이라. 노첩에 성원을 베푸오매 잔잉한 중에 구차히 보명(목숨 보전)함을 부끄러워하나이다." 말을 마치매 방성통곡하시니, 어사가 감창함을 이기지 못하여 눈물을 흘리며 답 왈, "소자의 맡은 직임이 원억한 일을 신설하고 사오나온(몹쓸) 사람을 다스리는 소임이라. 두 노야의 사생존망을 궁극히 탐문하여 만일 자취를 얻으면 부인 말씀대로 극진히 하올 것이요, 또 경사에 돌아가온 후 소씨 성 족(姓族)을 찾아 원근간에 있사오면 천자께 주달(奏達)하옵고 부인 후사를 전하게 하오리니, 부인은 소자를 남이라 거리끼지 말으시고 경사로 올라오시면 소자가 비록 불민하오나 일가에 모시옵고 종신토록 자모예(子母禮)로 섬기려이다." 한대, 부인이 이 말을 듣고 자리에 내려 백번 고두(叩頭)하고 목이 메어 말씀을 능히 못하며 눈물만 흘리는지라. 어사가 차마 보지 못하여 눈물이 비 오듯 하니 재삼 오열하다가 겨우 하직을 고하고 길을 떠나 수삭을 두루 돌아 계림부에 다다르니, 본가가 멀지 아니하되 짐짓 들지 아니하고 다만 편지하여 서릉에게 기별하되, '소자가 소임이 지중하옵고 만사 호번(浩繁 번거롭고 많음)하와 슬하에 바삐 가 뵈옵지 못하오니, 정의에 결연하오나 중임이 다사하오니 복걸 야야(爺爺 아버지)는 안심하옵소서. 소자가 남방 도회관에 가 도임하옵고 거마를 보내어 모시니이다' 하였더라.

각설, 서릉이 계조 자람으로부터 간(諫)함을 듣고, 인하여 도적의 일을 그친 후에 즉시 거처를 옮아 다른 땅에 가 호부히 살며 스사로(스스로) 거족이라 일컬으니 그곳 사람들이 다 그러려니 여기더라. 그 후 계조가 급제하여 벼슬이 옥당에 오르매, 남이 추존(존경)하여 부르기를 서대야라 하니 교만 방탕함이 날로 심하더니, 계조가 남방 안찰사를 하매 더욱 깃거 수이 거마 보냄을 기다리더라.

이 적에, 정부인이 아기를 낳아 길가에 버리고 몸을 자호암에 감추어 일월을 보내며, 주야 하늘께 축수하여 지아비 원수를 갚고 버린 자식을 행여 사람이 거두어 살아나 다시 금세에 만나봄을 발원하며 눈물 끊을 날이 없으니, 제승이 참담함을 이기지 못하여 부인을 권하여 불경을 가르치니 반년이 못하여 불가 경문을 무불 통지하여 행동거지와 일어일수가 조금도 불경에 어김이 없으니 제승이 추존하여 스승같이 섬기며, 처음 데리고 간 노리는 정이 자모에 지내고 공경함이 비길 데 없으니 부인이 감격함이 또한 뼈에 사무치더라. 이러구러 삼사년이 되었더니 일일은 정씨가 노리더러 왈, "나는 본래 산문에 몸을 허하여 경문을 공하여 일시 후생을 바람이 아니라, 흉중(가슴 속)에 궁천지통이 있어 인간에 나가 가군의 원수를 갚고 애자(愛子)의 존망을 듣보고자 하는 정이 골수에 박혔나니, 바라건대 노사는 나를 인도하여 길을 가르치소서." 노리 답 왈, "부인의 화용월태, 이 산중에 오신 후 비록 소식(小食)하시나 전에서 감함이 없사와, 사람이 바라보매 심장이 비월하오니 한번 산 밖에 나가시면 필연 강포한 한을 만나 몸이 보전치 못하오면 어찌 소원을 이루오며 애자를 다시 찾으리까? 아직 마음을 강잉하여 장래를 기다리시고 천금 같은 몸을 가벼이 말으소서. 소승이 부인 몸을 대(대신)하여 오파구에 가 서릉의 거취를 듣보고, 소공자의 존망을 자상히 듣보아 부인께 아뢰리다." 정부인이 십분 감격하여 부처님께 발원하고 금전을 주어 보내었더니 일삭 만에 돌아와 사뢰되, "서릉 흉도는 오파구에 살더니 종적을 감추어 멀리 떠나고 없기로 사람이 그 거처를 모르옵고, 대류촌에 버린 아기는 어떤 사람이 데려가더라 하거늘 그 근처에 아무리 듣보아도 알지 못하더이다." 정씨 이 말을 듣고 가슴을 두드려 통곡 왈, "유유한 창천이 알으소서. 이제는 가부(家夫 남편)의 원수를 갚지 못하옵고 자식의 사생을 알 길이 없으니, 광대한 천지간에 나 같은 인생이 어디 있을꼬?" 하며 무수 통곡하니, 산천초목이 다 슬퍼하는 듯하더라. 세월이 여류하여 장차 십구년이 되었더니, 일일은 한 승이 산 밖에 나갔다가 돌아와 동료더러 이르되, "나라에서 안찰어사를 보내어 본관에 왔으되, 정사 다스림이 가장 신명하사 어짊이 하늘 같아서 사람마다 원억한 일을 신설(伸雪 원한을 풀음)하고, 덕택(德澤)을 일컬어 인간 명현이요, 상계 신선이라 하는 소리 처처에 가득하더라." 한대, 정씨가 이 말을 듣고 스스로 생각하되, '내 목숨이 산중에 머무른지 이미 십구년이라. 구구한 잔명을 이때까지 살았음은 다만 가군의 원수를 갚고자 함이라. 이런 때를 당하여 신명한 어사를 만나 지아비 원수를 갚지 못하고 자식의 존망을 모르고 속절 없이 산중에 늙으리요?' 하고, 낯에 더러운 것을 바르며, 머리를 허트려 얼굴을 가리우고, 흰 장삼을 입고 검은 띠를 띠고, 여승의 모양으로 부처께 하직하고 길을 나니, 노리와 여승 오육인이 차마 부인만 혼자 보내지 못하여 함께 따라가더라.

이 적에, 어사 정각에 좌기하고 정사하더니, 한 부인이 여승의 관복을 하고 정문을 높이 들고 들어와 계하에 꿇어 올리거늘, 어사가 굽어 보니 형용이 처량하여 홀연 마음이 떨리고 정신이 혼미하여 서안(書案 책상)에 잠깐 지혀(기대어) 기운을 수습하고 정문을 친히 보니 하였으되, '우원정망극정유사(吁原情罔極情由辭) 딴은, 여의 신이 본이 처사 정겸의 여식이요, 전조 적 이부상서 소한경의 자부요, 전 난계현령 소윤의 가처라. 가부가 십구년 전에 고행으로 이름이 안탑졔이(雁塔题名 진사)에 뽑히어 즉시 절강부 난계 현령을 제수하시매 부임차로 가속을 거느리고 길을 났삽더니, 의진에 다다라 육로 끊어지고 수로로 가올 때에 수적(水賊) 서릉의 소위(所爲)를 알지 못하옵고 일행이 다 적선에 올랐더니, 도적이 반야(깊은 밤)에 가만히 배를 옮겨 무인지경에 들어가 가부 소윤을 물에 동여 넣고 일행 상하를 다 죽이고 가져가던 재물을 탈취한 후에, 다만 첩의 목숨뿐 살려 제 집으로 데려가오니, 첩이 스스로 죽고자 하나 오히려 하늘만 믿고 십생구사하여 요행 원수 갚기를 생각하옵고 구구한 잔명을 보존하와 그날 밤에 몸을 도망하여 자취를 산중에 숨기고, 그 후 사람을 놓아 흉적 거처를 물으되 아는 사람이 없삽기로 흐르는 세월이 이제 거의 이십년이라. 망망 천지간에 궁천지원을 신설할 곳이 없어 숙야(夙夜 이른 아침 늦은 밤) 한탄하옵더니, 엎드려 듣자오니 어사또 신명하사 발간적복(發奸摘伏 밝혀냄)이 하늘 같다 하시고 원억한 일 밝히심이 일월 같으시다 하오매, 여의 신 망극지원을 아뢰오니 세세 첨망이신 후에 흉적 서릉의 거처를 비밀 근포하여 궁천지원을 갚아주시면, 두발(頭髮)을 베어 신을 삼아 올리오며 풀을 맺어 은혜를 갚사오리이다' 하였더라. 어사가 잠간 나리미러 보니 자자항항에 슬픔이 간절한지라. 즉시 하인을 치우고 시녀로 명하여 부인을 청하여 연고를 자상히 묻고자 하더니, 하인이 고하되 "그 부인이 소지(所志)를 드리고 문 밖에 가더니 거처를 알지 못하나이다." 어사가 대경하여 두루 찾으되, 종적을 알지 못하는지라. 어사가 뉘우침을 한탄하여 분부하되, "아까 정문드린 부인 찾아 들이는 자면 천금을 상사하리라." 하시니, 일경이 진동하여 사방으로 찾으되 종적을 알지 못하니, 어사가 생각하되 '황학산 노선이 날더러 소생이라 일컫고, 자모는 산중에 무양히 지낸다 하며, 또한 약낭을 주며 정부인께 드리라 하시더니, 오늘 정문을 드린 부인이 성이 정씨요, 몸을 산중에 있노라 하며, 또 탁주 땅 소상서댁 노부인이 이르되 그 아들 소지현 부인 정씨가 잉태한지 구삭 만에 난계 갔다 하시더니, 벅벅이 내 몸이 정부인이 낳으신 배인가 싶으되 어찌 서릉의 집에 자랐으며 또 자식이 되었는고?' 하며 의려(意慮) 중 생각하되, '분명 모친이 그날 밤 서가의 집에서 낳아 미처 거두지 못하고 도적의 환이 급하매 버리고 가시니, 서릉이 거두어 구씨의 젖을 먹고 길렀는가? 소태우는 도적이 동이여 물에 넣었다 하니 백골도 찾을 길이 없고, 정부인은 천행으로 살았다가 나를 찾아와 계신 것을, 나의 효성이 없어 능히 자모 천륜을 깨닫지 못하는 고로 하늘이 나의 불효한 죄를 살피시고 정부인으로 하여금 자취를 감추어 찾을 곳이 없게 하시니, 천지간에 부친의 해골을 찾지 못하고 살아 오신 모친도 능히 만나 자모지정을 펴지 못하니, 나는 세상에 부모 없는 사람이 되니 살아서 인륜 모르는 죄인이 되고 죽어 불효의 귀신이 되리로다.' 이렇듯 번뇌하여 자연히 병이 되어 침석에 눕고 떠나지 못하더니, 문득 깨달아 생각하되 '유모 조대희 부처는 내 근본을 알 것이니, 불러 자세히 물으리라' 하고 즉시 행관하여 조대희 부처를 잡으려다가, 다시 생각하고 '일이 누설하면 진정을 알지 못하리라' 하고 즉시 관문을 걷고 사람을 보내어 은근히 기별하되, '각읍 지공이 비록 유려하나 입에 맛 같지 아니하니(내 입맛에 맞지 않으니), 유모 부처는 바삐 와 내 몸을 살펴 보호하라' 한대, 조대희 부처가 어사의 기별을 듣고 시각을 유연치 못하여 급히 갈 새, 이 적에 마침 구씨는 중한 병을 얻어 사생이 난분하여 능히 가지 못하고 조대희 홀로 나아가 어사께 뵈온대, 어사가 거짓 반기는 체 하니 대희가 깃거 서릉의 평부(平否 안부)를 전하고 가로되, "상공이 이렇듯 영귀하옵셔 금의로 환향하오시니 이는 서문의 적덕(積德)하심을 하늘이 살피시며, 소인이 다행하옴을 능히 언담(言談)으로 다 아뢰지 못하리로소이다." 어사가 조금도 사색(내색)지 아니하고 은근 위곡함이 예에서 더하며 흔연히 대접하여 한 데서 밥을 먹으며 조용히 담화하더니 밤이 장차 깊으니 인적이 고요하거늘, 어사가 조대희를 데리고 내당에 들어가 소리를 나직히 하여 물어 왈, "내 나이 십구세 되도록 내 몸이 아무 곳으로 난 줄을 모르니, 부모 모르는 자식이 어디 있으리오? 그대는 나의 출처를 분명히 알 것이니, 내 몸이 어떤 사람의 골육이며, 서릉은 나와 어떠한 사람인고? 명백히 일러 나의 호의를 풀게 하라." 조대희가 이 말을 듣고 크게 놀라 왈, "상공이 이 어인 말씀이니이까? 노야는 진실로 서대야 자제라. 노야가 인간에 나신지 일삭 만에 선부인이 기세하시니, 서대야가 소인의 계집이 자식 갓 낳삽고 유 쥬히 있다 하여 소인을 맡겨 사오년을 자라계옵시니, 어이 다른 일이 있으리까?" 하니, 어사가 문득 대로하여 서안을 치며 크게 소리하여 왈, "나는 본래 서가의 소생이 아니요, 네 지어미 젖을 먹고 자란 줄을 내 이미 알고 묻거늘 네가 실상을 그이니, 만일 실상을 그이고 나의 근본을 이르지 아니하면 아홉가지 형벌을 갖추어 저줄 것이요, 남은 죄 구족에 미칠 것이니, 종시 직고하면 유모의 은정을 생각하여 사죄를 면하리라. 네 들으라! 십구년 전에 난계 현령 도임하러 가던 일행을 황천땅 무인지경에 들어가 다 죽이고 그 행장을 다 노략함을 일정 모르는다?" 조대희가 무심 중 이 말을 듣고 경황 실색하여 감히 그이지 못할 줄을 알고 땅에 엎드려 머리를 조아 가로되, "과연 신명히 묻자오시니 실상을 다 개개이 아뢰나이다. 십구년 전에 소인 등 이십여 인이 산동 왕상서댁 배를 가지고 강상에 왕래하며 흥리(興利)하옵더니, 과연 소지현 일행이 그 땅에 다다라 세선을 구할 새, 서릉이 과연 그 행자(行資) 많고 미색 부인을 보고 청하여 그 일행을 배에 올리고, 소인 등으로 더불어 가만히 배를 옮겨 황천땅 무인지경에 들어가 그 비복 이십여명을 다 죽이고, 소지현을 칼로 치려하올 때에 마침 서릉의 아우 서룡이 말려 노으로 동여 물에 넣고, 그 부인이 자색이 있는 고로 서릉이 아껴 죽이지 못하게 하고 수족을 동여 오파구 제 집에 돌아와 실가를 삼으려 하더니, 그날 밤에 그 부인이 자취를 숨겨 간 곳이 없는 고로, 홀로 찾으러 갔다가 회로에 노야를 안고 왔으되 복중을 갓 떠났삽거늘, 소인이 연고를 물은즉 서릉이 왈, '그 부인을 찾아 가더니 간 곳을 모르고 오더니, 이 아기를 로중(길)에 버렸으매 내 거두어 자식을 삼으려 하노라' 하고 소인의 계집을 맡겨 길렀사오나, 죽사와도 이 밖은 알지 못하나이다." 하거늘 어사가 갱(更 다시) 문 왈, "그 부인이 그때에 어린 아기 있더냐?" 답 왈, "아기는 없사오되, 선창에서 잠깐 뵈오니 앞이 높아 만삭하였더이다." 어사가 또 문 왈, "그날 내 몸을 거두어 올 제, 무슨 표적이 있더냐?" 하시니, 조대희 답 왈, "각별 표적은 모르오되 다만, 한낱 나삼으로 귀체를 싸옵고, 금차 하나를 가슴 위에 얹었더이다." 어사가 왈, "그러면 그 나삼과 금차가 어디 있느뇨?" 답 왈, "즉금 소인의 집에 있나이다." 하거늘, 어사가 그제야 그 근본을 알고 가로되, "이 일을 나와 네 알 뿐이요, 생심도 누설치 말고 급히 돌아가 나삼과 금차를 가져 오되, 남이 모르게 은밀히 가져오라." 하시니, 조대희가 하직하고 가니라.

차설, 정부인이 그날 정문을 올리며 우러러 청상을 살펴보니, 어사 금포 옥대로 서안을 의지하였으니 표연한 기질이 인간 사람 같지 아니하고, 창황간 자세히 보니 형용이 자가(自家)의 소천과 방불하여 자연 반가움을 이기지 못하되 감히 머물지 못하고 문 밖에 나오니, 노리와 제승들이 손을 잡아 이끌고 사람 없는 곳에 나와 가만히 이르되, "이제 들으니 이 어사는 곧 다른 사람이 아니라 오파구 서릉의 아들이라 하니, 반드시 부인을 죽여 그 아비의 사오나온 자취를 감추고 후환을 없이 하리니, 미처 원정을 못 보아서 급급히 가사이다." 정씨 왈, "그렇지 아니타. 서릉은 천지간에 궁흉 극악한 놈이라. 어찌 자식을 낳아 귀인이 되며, 또한 내 정문을 올릴 제 어사를 잠깐 치밀어 보니 처연한 성덕이 의표에 나타났으니 분명히 서적의 고육이 아닐 것이요, 또 사람이 식록 대신으로 분호도 사사로써 공도를 폐치 아니할 것이니, 나는 죽어도 이곳에서 나중을 보고 죽을 것이니, 그대 등은 빨리 돌아가소서." 노리가 차마 정씨를 죽을 곳에 버리지 못하여, 제승으로 더불어 약속을 정하고 계교를 내어 마을 집에 가 좋은 술을 받아 정부인을 권하여 매우 취한 후에, 저희 오육인이 옷을 벗어 나귀를 세내어 부인을 싣고 즉시 월봉산으로 들어가 자취를 숨기니, 정부인이 뉘우치고 한탄하여 도로 나가고자 하나 제승이 붙잡고 보내지 아니하니 이러구러 수 일이 지나매, 들은즉 어사가 천금으로써 정문 드린 여인을 찾으라 하니 제승이 듣고 더욱 두려워 정씨를 굳이 감추어 종적을 그쳤더라.

각설, 이때 소윤이 도공의 집에 있어 여러 서동을 데리고 무정한 세월을 해옴(헤임,하염) 없이 보내더니, 이미 십구년이라. 도공의 관대함이 지극하여 적이 완명을 보전하나, 이때 감서산에 날이 지고 바람이 소슬할 제 처량한 외짝 구름이 고향으로 돌아갈 제, 천애울향하여 대부인을 생각하고 슬픔을 이기지 못하여 거의 병이 나게 돼되 길이 수만리라. 도적이 처처에 일어나고 척신(隻身 외톨이)이 고고하여 고토에 돌아갈 길이 없어 주야 눈물을 뿌리더니, 마침 들으니 '나라에서 안찰어사를 보내어 민간질고와 원억한 일을 신설하라 하시되, 어사 신명하여 백성의 원억한 일을 살피고 수령의 선악을 출척함이 귀신 같고 덕택이 남방에 아니 미칠 곳이 없어, 심산궁곡에 우부용녀라도 다 머리를 조아 은혜를 칭송하여 기리는 소리가 골골에 난다' 하는지라. 소윤이 생각하되 '여(여기) 이리 구차히 살아남은 다만, 흉적 서릉의 원수를 갚고 노모를 다시 뵈올까 하여 이리 구차히 십생구사하며 혈혈한 잔명이 세상에 유한지 여러 춘추 되였는지라. 이제 이런 때를 버리고 어느 때에 궁천척지지통을 신설하리요?' 하고, 이때 즉시 만단정원을 지어 품에 품고 즉시 도공과 여러 서생들을 이별하고, 어사 있는 정각으로 향하니라.

이 적에, 조대희가 급히 가 나삼과 금차를 가지고 돌아와 드리거늘, 어사가 받아보니 탁주 소상서댁 장부인이 주시던 나삼과 조금도 다름이 없는지라. 어사가 그제야 자기의 몸이 정부인의 소생이요, 소가의 혈육인 줄 알고 도로혀 슬픔을 이기지 못하여 탄식 왈, "천지 비록 크고 넓으나 나 같은 인생이 또 어디 있으리요? 이제 저 흉적을 다 잡아 아무리 궁핵(窮覈)한들 부친은 이미 수중의 고혼이 되어 어복 중(물고기 뱃속)에 들어 계시니, 이제 장차 어디 가 배긴들 어디 가 찾으리오? 죽은 부친도 찾지 못하고 살아 오신 모친도 못 뵈오니, 이는 인륜을 모르고 삼강이 무너지는지라. 나의 효성이 없기로 하늘이 무이(미워) 여기사 자모의 종적을 끊어 모자 서로 모르게 하심이라. 내 이제 벼슬을 갈고 산중에 들어 모친 소식을 듣보고, 버금 숙부는 남방에 와 계셔 분명히 길이 막혀 고토에 못 가신 연고니, 내 이제 지극히 추심하여 모시고 올라가 조모님께 뵈옴이 옳다." 하고, 이리저리 생각하니 슬픔이 간절하여 침식을 전폐하니, 자연히 병이 되어 사오일이 지나도록 공사를 폐하고 자리에 누었다가 다시 생각하되, '우리 자친이 분명 근처 정결한 산당에 계신가 싶으니, 내 몸소 다니며 잠행하여 계신 곳을 알리라' 하고, 가만히 서동 일 인만 데리고 여염에 다니며 그 자취를 탐지하더니, 하루는 날이 석양에 당하여 목이 말라 주점에 들어가 술을 사 마시더니, 이 적에 소윤이 정문을 가지고 관가에 나아와 정코자 하다가 들으니 '즉금 안찰사는 오파구 서릉의 아들이라' 하거늘 크게 놀라 급히 나와 하늘을 우러러 탄식 왈, "슬프다. 이 일을 어찌하리요. 살아서 원수를 갚지 못하고, 다시 고향에 돌아가 학발 자안을 뵈옵지 못할 것이니, 천지간에 이런 망극한 인생 또 있느냐? 오호라! 박명한 가처는 무슨 죄로 죽었으며, 복중 유아 세상을 모르고 속절 없이 고혼이 되도다. 연이나, 만일 정문을 드리던들 나의 실상을 알아 죽여 후환을 덜고자 하리니, 이는 또한 하늘이 가르쳐 아니 드리도다." 하고, 기갈이 자심하여 주점에 들어가니, 한 소년 서생이 서동을 데리고 앉아 술을 먹는지라. 윤이 훌훌이 들어 앉으니, 어사가 잠깐 그 우인(위인)을 본즉 훤훤한 장부라. 의관이 비록 추레하나 기상이 비범하여 하방 미천한 사람이 아니어늘, 어사가 바삐 내려 읍하고 맞을 새, 그 장부가 어사를 보매 안광이 가을 물결 같고 양미는 강산정기를 들인 듯, 흉중에 천지조화를 품었는 듯, 현달한 화기 사람의 정신을 놀래오니 아마도 범상한 행인이 아니여늘, 서로 공경하여 방석에 이르니 소윤과 어사가 서로 읍하고 앉은 후에 소윤이 먼저 물어 왈, "존공은 분명히 하방 범상한 사람이 아니라, 무슨 연고로 이리 다니시니이까? 살으시는 고향과 존하온 성명을 알고자 하나이다." 어사가 다시 일어 앉으며 왈, "소생은 북방 미천한 인사로 우연히 사람을 따라 이곳에 왔삽거니와, 천한 성명은 서랑이라 하나이다. 감히 묻잡기 외람하옵거니와, 대인은 벅벅이 하방 범상한 인물이 아니라. 구향은 어디오며, 무슨 연고로 이 땅에 와 계셔 저리 행색이 초췌하시이까? 소생이 비록 무심한 과객이라도 정경을 잠깐 보아도 처량함을 이기지 못하올소이다." 소윤이 답 왈, "소생은 탁주 땅의 조그마한 선비라. 천한 성명은 소지관이라 하나이다. 우연히 일을 인하여 이곳에 왔삽다가 행보를 이루지 못하옵고, 또한 낭탁(囊橐 주머니)이 경갈(罄竭 떨어짐)하여 저양이 촉번(羝羊觸藩)이요, 진퇴유곡이로소이다." 어사가 그 말을 듣고 탁주 사람이요, 성이 소씨라 하매 문득 생각하되, '나의 부친은 이미 도적의 손에 죽었으니 살았음이 만무하나, 숙부님이 남방에 와 계셔 생사를 모른다 하더니 "아니 계신가?" 그러다 이리 와 만나니 세상에 공교한 일도 있다' 하며, 말로써 시험하되 "대인이 탁주 땅에 계실진대, 전조 적 이부상서 소상공을 알으시나이까?" 윤이 그 말을 듣고 소매로 낯을 가리오며 눈물을 흘리며 허희탄식하다가 겨우 말을 내어 왈, "내 과연 소상서댁 곁에서 살으거니와 상서 죽은지 오래옵고 그 부인만 계셔 가세 극히 처량한지라, 귀객은 어찌 그 댁 일을 알으시고 나더러 힐문하시나이까?" 어사 답 왈, "천생이 내려올 때에 그 댁에 우연히 들어, 비복의 말씀을 듣고 아나이다." 윤이 또 문 왈, "소상서댁 부인이 연만하시더니, 이제도 기체 안녕하시더니까?" 어사 답 왈, "비록 자상치 못하오나 아직 일양하시되, 두 자제를 잃고 세월을 지낸다 하더이다." 윤이 그 말을 듣고 아무 말도 못하고 반향(半晌 반나절)이나 앉아 눈물만 흘리거늘, 어사가 주찬을 내어 위로하며 왈, "대인이 소상서댁 소식을 들으시매 비감하심이 만연히 나타나고 술잔을 즐기지 아니하시니, 반드시 연고가 있는지라. 이 땅에 무슨 일로 와 계셔 저대도록(저토록) 고초하시며 이향하신지 몇 해나 하시이까?" 소윤이 생각하되, '이 사람이 기상이 비범하니 혹 어사의 추종인가?' 종적이 현노하면 큰 환이 있을까 하여 마침내 실상을 그이고 다만 대답하되, "천하온 몸이 고토에 있을 때에 소상서댁 은혜를 입사왔더니, 다시 고향에 돌아가 그 댁 은혜 갚을 길이 없고 타향의 고혼이 되올까 설워 하나이다. 이 땅에 오옵기는 약간 거들 것이 있사와 가장을 진탕하여 행리(行李)를 차려 왔삽더니, 위하여 온 사람이 없사오매 의지하올 곳이 없사와, 이제는 구렁에 엎드려 죽사와도 백골을 거둘 사람이 없사오니 어찌 비감치 아니하오리까?" 눈물과 한숨이 연락(連落)하거늘, 어사가 자연 슬픔을 이기지 못하여 또한 탄식하고, 백가지로 위로하며 말로 개유(開諭 타이름)하여 그 실정을 알고자 하되, 마침내 이르지 아니하고 석양이 재를 넘어 장차 사매(소매)를 나눌(分袖相別 이별할) 새, 악연한 정을 이기지 못하여 어사가 다시 앉으며 청하여 왈, "대인을 우연히 만나와 말씀을 잠깐 듣자오니 자못 결연하온지라, 다시 찾아 뵈옴을 원하나이다." 윤이 답 왈, "천생은 가련한 인생이라. 양식이 없사오니 어찌 정하온 주인이 있으리까? 이리 다니옵다가 사람의 어여삐 여김을 입사와 얻으면 먹삽고, 못 얻으면 굶어 다니오매 유정한 곳이 없나이다." 어사 답 왈, "대인의 군박(窘迫)하심이 극하오니, 소자의 주인을 찾아 오시면 두어 달 양자를 보태리이다." 윤이 문 왈, "귀객의 주인이 어디이니까?" 어사 왈, "소생은 본읍에 들렀는 어사의 손(客)이라, 즉금 외당에서 머무나이다." 윤이 이 말을 듣고 내념(內念 마음 속)에 생각하되 '어사가 서릉의 아들이라 하기로 원정을 아니 정하였거니와, 이놈은 천지궁흉 극악한 도적놈이라, 어찌 자식을 낳아 후록을 받으리요?' 하고 '분명 성명이 같은 사람인가?' 하더니, "어사의 손이라" 함을 듣고 다시 몸을 굽혀 왈, "귀객이 어사의 문족(門族)일진대, 어사는 뉘라 하시며 거향은 어디이니까?" 어사 답 왈, "소자는 어사의 성친 뿐이언정 일족이 아닌 고로, 그 근본을 자세히 알지 못하나이다." 소윤이 그 말이 수상함을 보고 더욱 고히 여겨 또 문 왈, "귀객이 어사를 따라 수천리를 동행하시며 어이 모르나이까?" 어사 답 왈, "소자의 연광이 차지 못하옵기에 인사 미거(未擧)하와 자세히 알지 못하나이다." 소윤이 또 문 왈, "천인이 들으니, 어사는 계릉 땅의 서릉의 아들이라 하옵더니, 이는 거짓말이니까?" 어사 답 왈, "그는 과연 허언이로소이다, 금행 어사는 북경 사람이라. 서릉은 어떠한 사람이온지 듣는 바 처음이라, 대인은 알으시나이까?" 윤이 답 왈, "나는 들을 따름이요, 그 근본은 알지 못하나이다." 하거늘, 어사가 다시 간절히 청하여 왈, "명일로 소자의 사처에 오심을 바라나니, 부디 실기치 말으소서." 윤이 왈, "관문이 지엄하니, 어찌 인연하여 들어가리이까?" 어사 왈, "내일 어사 좌기 전에 오시면, 이 서동으로 대우하리이다." 한대, 소윤이 듣고 무수 사례하고 들어감을 허락하고 각각 돌아가니라.

이튿날, 어사가 우연 병 들었다 일컫고 서동을 명하여 문 밖에 기다리더니 들어와 고하거늘, 어사 듣고 "내당으로 모시라." 하니, 동자가 그 손을 인도하여 내당에 이르렀는지라. 어사가 중계에 내려 읍하고 오른 후에 주찬을 내어 연접하며 조용히 말씀하더니, 술이 서너순 지난 후에 어사 왈, "대인이 고향을 떠난지 사오년이라 하시니 그 땅 일을 알으실지라. 소상서 장자 소태우가 십구년 전에 금하부 난계 현령하와 그 부인 정씨로 더불어 부임하여 가온지 해포 되도록 소식이 없는 고로, 장부인이 주야 사모하시매 그 아우 소위가 모친을 위하여 소식을 듣보러 간지 여러 해로되, 또한 종적이 없어 생사를 알지 못하연지 장차 십구년이 되었는 고로, 장부인이 세상에 계시나 의지할 곳이 없사와 주야에 하늘을 부르짖어 세월을 눈물로 지내시매, 가산이 영락(零落)하여 기한을 면치 못하신다 하오니 소자는 지나가는 과객이라도 비감함을 금치 못하였삽더니, 귀인은 그댁 곁에서 살으시고 또한 성이 소씨시니 상친간에 비창함을 어찌 측량하리이까?" 윤이 이 말을 듣고 소리남을 깨닫지 못하여 크게 통곡하고 땅에 엎어져 기절하거늘, 어사 또한 눈물을 머금고 위로 왈, "대인이 소상서댁 소식을 듣삽고 저다지 슬퍼하시니 반드시 연고가 있는지라, 그이지 말으소서." 한대, 윤이 생각하되 '이 사람이 어사의 아객(衙客)이라. 내 실정을 알면, 이 어사가 만일 서릉의 자식일진대 반드시 큰 환이 있을지라' 하고 답 왈, "천인이 만리 타향에 신세를 생각하면 남의 말을 들어도 자연 비감하여 눈물 남을 깨닫지 못하나이다." 어사가 다시 알 길이 없어 또 주안을 내서 위로하며 가로되, "대인이 회포하시는 정회를 풀지 않으시니, 소자가 약간 음률을 좋이 여기옵더니 대인을 위하여 두어곡조로 잠간 비회를 덜게 하리이다." 하고, 인하여 장부인 주시던 단금을 내어 두어곡조를 놀며 낙춘방을 읊어 가로되, "대인이 이 가사를 알으시니이까?" 소윤이 문득 놀라 생각하되 '내 처음 난계로 갈 제 노모를 위하여 이별 시에 이 가사를 지어 거문고에 올렸더니, 어찌 이 사람이 이 가사를 아는고?' 슬프고 반가우나 짐짓 대답하되, "하방 미천한 인생이 어찌 풍류음절을 아오리이까?" 어사 또 물어 왈, "대인이 이 거문고를 알으시나이까?" 하거늘, 윤이 자세히 보니 자기의 집 기물이라. 크게 놀라 거문고를 나소와 손으로 만지며 이르되, "이는 소상서댁 세전지 금(琴)이라. 아지 못 게라. 어디로 인연하여 귀객의 손에 왔나이까?" 어사 답 왈, "소자가 그 댁을 지나올 때에 그 댁 앞에 와 머무옵더니, 장부인께옵서 소자의 음율을 좋아함을 들으시고 이 거문고를 주시거늘 받아보오니 기이한 보금이라. 무단히 가져오지 못하와 백금을 드리고 가져왔나이다." 윤이 거문고를 보고 홀연 눈물이 비 오듯 하여 거문고 시위를 적시거늘, 어사 헤아리되 '이는 반드시 다른 사람이 아니요, 나의 숙부시기 분명하도다. 그러나, 이렇듯 진정을 그이니 무슨 연고가 있는가?' 하여 또 물으되, "들으니 그댁에 이런 거문고 또 있다 하오니, 대인이 보아계시니이까?" 윤이 답 왈, "옳으니이다. 과연 한 나무 두 재목을 내어 한 장인의 손에 만들었더니, 하나는 소태우가 난계로 갈 제 가져갔다 하더이다." 어사가 묵묵하고 앉았다가 친히 옷장을 열고 비단보에 싼 나삼을 내어 놓고 가로되, "대인이 이 옷도 알으시나이까?" 윤이 또한 자세히 보니, 자가의 모부인 손으로 짠 깁이라. 친히 나삼을 지어 난계로 갈 제 입혀 보내려 하다가 등화 떨어졌는지라. 이 연고로 두었던 나삼이 분명하거늘, 윤이 모친 수적을 보매 더욱 슬픈지라, 가슴이 막혀 아린 듯 아무 말도 못하고 다만, 어사를 우러러 눈물만 흘리는지라. 어사가 또 이르되, "이 나삼도 그때에 부인이 급한 일로 파시기로 사왔거니와, 들으니 한가지 깁으로 지은 여삼이 또 있다 하더이다." 윤이 크게 의심하여 생각하되 '이 사람이 우리 집 일을 이렇듯 자세히 알며 어이 나를 이다지 맥받는고?' 하여 대 왈, "천인이 황란하여 아무런 줄 모를소이다." 어사가 자기가 놀던 거문고와 여삼과 금봉차를 내어 놓고 실정을 알고자 하더니, 문득 동자가 들어와 아뢰되, "밖에 한 여승을 잡아 왔으되, 증전(曾前 저번 때) 정문 드리던 부인과 함께 왔던 승이라 하더이다." 어사가 정부인의 소식을 몰라 하는지라 급히 나오며 왈, "소자가 밖에 볼 사람이 있사오니, 대인은 잠깐 머무소서." 동자를 명하여 '모시라' 하고 나가니, 이 적에 월봉산 노리가 정씨 지극 설워하심을 불쌍히 여겨, 정씨를 위하여 어사의 찾음을 알고자 하여 내려 왔다가 하인에게 잡힌 바 되었는지라. 어사가 노승을 불러 앉히고 은근히 문 왈, "정문한 부인을 모셔 왔느냐?" 노승이 황겁하여 "모르노라." 하거늘, 어사가 분부하여 계상에 올려 자리를 주어 앉히고, 안색을 온화히 하며 소리를 나직히 하여 문 왈, "그대는 부인 계신 곳을 그이지 말고 자상히 이르면 그대 몸이 영화 있고 좋으려니와, 종시 그이면 오형을 갖추어 저주어 실상을 물으리니 종실직고(從實直告)하라." 노승이 창황간에 그 기상을 보니, 반드시 부인께 해롭지 아니할 듯하매 꿇어 사뢰되, "하인을 물리오면 아뢰오리이다." 어사가 즉시 하인을 다 물리치고 노리를 앞에 가까이 앉히고 은애하여 왈, "내 진정으로 묻나니, 바삐 일러 나의 아득한 심정을 깨닫게 하라." 노리가 아무런 줄 알지 못하나, 어사의 안색을 보니 간측(懇惻 간절하고 지성이 담김)한 형상이 낯에 났는지라. 심중에 나오는 줄 없이 정씨 전후 수말을 일일이 고하여 왈, "정부인은 본래 난계 현령 소태우 부인으로, 난계 부임하러 가시다가 길에서 수적을 만나 일행을 다 죽이고, 부인만 남아 이제 월봉산 자호암에 계시니이다." 또 문 왈, "그 부인이 자식이 있더냐?" 노리 대 왈, "처음 오실 제 잉태하여 아기를 탄생하시니, 불당에서 기르기 난처하여 버리니다." 또 문 왈, "그 아기 버릴 제 너 보았으면 남자더냐? 또 무엇을 입혔으며, 무엇을 표하였드뇨? 자세히 이르라." 노리, 이렇듯 물으매 어찌 죽으나 일호를 은휘(隱諱)하리요. "여짜오되, 노승이 부인을 위하여, 그 아기를 입힐 것 없사와 부인 나삼을 벗어 싸옵고, 금차로 표하여 가슴에 얹어, 소승이 안아다가 대류촌 버드나무 밑에 두고 오오니, 아기는 남자로이다. 두고온 후 부인이 슬퍼하심을 과도히 하셔 마침내 보존치 못하게 되었사오매, 소승이 민망하여 아기 둔 곳에 다시 와 보오니 간 곳 없삽거늘, 두루 사람더러 광문하온즉 '그날 아침에 어떤 남자가 데려가더라' 하오니", 이렇듯 문답할 새, 이어 하인이 아뢰되, "경성 왕상서댁 부중에서 밀서 왔나이다." 하거늘, "들이라." 하여 보시니 하였으되, '태우가 남방으로 향하매 칭찬하는 소리 일국에 자자하니, 노인이 기쁘고 즐거움을 이기지 못하노라. 석일(昔日 옛날)에 노인이 국사(나랏일)로 남방에 왕래할 제 대선 일척을 준비하였더니, 요사이에 들으니 적당 서릉이 내 집 이름을 빙자하고 그 배를 타고 부도를 행하여, 십여년 전에 남방 현령 소윤의 일행을 다 죽이고 재물을 노략한다 하니, 그 배는 노인의 집 공문이 있거늘, 이 예로 살피지 못하고 다만 왕상서댁 배라 하여 부정한 이름을 들으니, 태우는 이 일을 자세히 살펴 수적을 잡아 다스리고, 노인이 허물을 면케 하고 수이 돌아오라' 하였더라. 하인이 또 급히 아뢰되, "서 노야 행차가 의진으로 쫓아오시나이다." 하거늘, 어사가 즉시 금고를 울리며 객사에 좌기하고 사자를 명하여 서릉을 맞을 새 전차로 고하여 왈, "어사의 맡은 바 중임이라. 시방(금방) 좌기를 배설하였사오니 사를 위하여 공사를 폐치 못하는 고로, 친히 맞지 못하와 하관으로 하여금 맞나이다." 서릉이 전혀 알지 못하고 의기 양양하여, 조삼용 십여인을 거느려 부중에 들어와 오직 어사를 보고자 하더니, 어사가 분부하여 서릉을 부중 유벽한 곳에 들이고 군병을 정제하여 내외로 지키고 주찬을 대접할 뿐일러라. 이날, 마침 남방에서 면경(거울) 일면이 왔으되 장광이 큰벽에 가득한지라. 받아 걸고 어사 보시니, 자기의 안면과 외형이 내당에 온 손과 방불하여 장차 분별치 못하되, 성음이 조금 다르더라. 어사가 크게 놀래어 헤오되 '탁주 소상서 집 상하가 다 나를 보고 소지현과 같다 하더니, 이 아니 소태우시며 나의 부친이신가?' 천사만탁(여러 생각) 하매 정신이 황란하여 공사를 폐하고 바로 내당에 들어가 재배하고 묻자오되, "소자가 심중에 의혹하는 일이 있어 대인께 여러가지로 아뢰었삽거니와, 난계 현령이 중로에서 수적을 만나 일행을 다 죽이고, 소태우만 부지하여 남방에 머무신단 말이 자자하오나, 대인이 들어계시니이까?" 윤이 처참하여 왈, "소지현 종적은 진실로 알지 못하거니와, 사람의 명은 하늘에 달렸나니 어찌 알리이까?" 하며, 눈물이 이음차 끊치지 아니하거늘, 어사가 다시 절하고 이르되, "소자가 두어가지 의심된 것을 두었나니, 원컨대 대인은 보소서." 하고, 자기가 타던 거문고와 여삼과 금차를 내놓고 왈, "이중에 대인지전 보시던 것이 있나이까? 이 보금은 소지현 난계로 갈 제 목숨과 한가지로 잃은 바요, 이 금차는 정부인 신부 예할 제 부친 소상서 백금을 들여 기특한 보배와 옥으로 꾸며 예물 주신 것이요, 나삼은 또 난계로 갈 제 모부인이 친히 짠 깁으로 손수 지어 정부인을 입혀 보내신 것이라. 대인이 그댁과 친후하시면 필연 이 일을 알으시리이다." 윤이 이를 보고 대경 의심하여 한 말도 없다가 이윽하여 왈, "일로 천인을 이렇듯이 물으시니, 혹 같은 보배도 있거니와, 아지 못 게라. 존공은 어떠한 사람으로 천인을 이렇듯이 시험하시며, 두세가지 것은 어찌 인연하여 얻어 계시이까? 천인이 이제 죽어도 존공의 이렇듯 맥받으심과, 이 두세가지 것 얻은 일을 자세히 알고자 하나이다." 어사 왈, "이 보금을 대인이 소태우 난계로 갈 제 가져간지라 하더니, 그 보금이 아니이까? 그 아우 소위와 소태우 용모 어떻더이까? 자세히 알고자 하나이다, 그이지 말으소서." 윤이 답 왈, "말씀이 번거하와, 기록치 못하나이다." 하고, 재삼 유체하다가 왈, "보금은 소지현이 가져가던 것이 분명하고, 나삼도 보던 옷과 한가지로소이다. 소상서 집 귀물이 분명하고, 소위는 구태여 형제 용모 같지 아니하더이다." 어사 왈, "대인은 일정 소상서와 남이시며, 소태우 존무(存無)를 알지 못하시나이까? 종시 그이시면, 소자의 바라는 바 끊치올소이다." 또 윤이 탄 왈, "물으시는 바를 진실로 알지 못하오나, 존공의 자취를 알고자 하나니 먼저 실정을 이르시면 뒤를 좇아 심중을 다 베푸오리이다." 어사 왈, "대인이 중정을 그이실 새 소자 또한 실정을 아뢰지 못함이러니, 이렇듯 물으심을 당하오니 소자의 중심에 맺힌 바를 먼저 하리이다." 하고, 인하여 이르되, 상서댁 부인을 친히 뵈어 서로 문답하던 일과, 보금과 나삼 주신 말씀과, 정부인이 자기를 낳아 대류촌에 버리매 몸에 싸던 여삼이며 금차 넣은 말과, 서릉의 집에 자라여 보금 주던 말이며, 정부인이 정문한 말이며, 노리가 와 정부인 말 전하던 일과, 전후 의혹하던 말을 일일이 펴 푸니, 소윤이 그 기별을 들으매 미친듯 다시 의심 없는지라. 또 자기의 실상을 펴 풀 새, 난계 부임 가다가 수적 서릉의 배 탔다가 일행 삼십여 인을 다 죽이고 자기를 동여 물에 들이치매 떠 가다가 도공을 만나 살아난 일과, 이리 와 정문하려 하다가 '어사가 서릉의 아들이라' 하매 의혹하여 못한 말과, 소상서 댁 말을 만단으로 물으되 종시 의혹하여 실상을 발설치 못한 연유를 펴 푸니, 어사가 그제야 부친인 줄 알고 관을 벗고 계하에 내리달아 방성통곡 왈, "부친 자취 세상에 머무신 줄 천만 뜻밖이요, 요행으로 숙부를 만날까 하였삽더니, 어찌 이리 만날 줄 알리요?" 윤이 또한 정부인이 이별할 제 복중에 깃친 아자(내 아들)인 줄 알고 어사를 내리달아 붙들고 실성 통곡하니, 보는 자 뉘 아니 슬퍼하며 신기 기특히 아니 여기리요. 부자가 서로 붙들고 못내 슬퍼 하다가 겨우 정신을 수습하여 어사 손을 잡고 하늘을 우러러 크게 통곡 축수 왈, "복중에 깃친 자식이 살아서 부자 서로 만나고 서로 보게 하니 황천이 어찌 무심타 하리이까?" 서로 근고(勤苦)하던 수말을 다시 이르며 부자지정이 새롭더라.

어사 왈, "궁흉극악한 흉적을 어찌 잠시나 천지간에 머무리이까? 급히 처치하리이다." 하고, 좌기를 배설하고 북을 울리며 좌우에 나졸을 정제하고, 어사가 호령하여 "흉 서릉 적을 바삐 결박하여 올리라." 하니, 나졸이 일시에 청명하고 소리 지르고 서릉을 결박하여 정하에 꿇리니, 서릉은 아무런 줄 모르고 잡혀 들어가 당상을 치밀어 보니, 어사가 금관 옥대로 서안을 대하여 앉아 기운이 씩씩한지라. 서릉이 매이여 앉아 보며 왈, "계조야, 이 어인 일고? 부자지정도 이러하냐?" 다시 살펴보니, 소윤이 천만 의외에 방중에 엄연히 앉았는지라. 대경실색하여, 기운이 준축(蹲縮 땅이 꺼짐)하고 전율하여 한 말도 못하다가 다만 이르되, "양호유환(養虎遺患)이라. 오늘 이 지경에 당함은 서룡의 탓이로다." 원망함을 마지 아니하더라. 소윤이 도적을 살펴볼 새, 서룡이 또한 매이어 왔는지라. 본관을 돌아보고 이르되, "저 사람으로 하여 이 몸이 수중고혼을 면하였느니, 저 사람은 살리소서." 하거늘, 본관이 어사께 그대로 품하니, 어사가 분기 창천하나 그 사람의 은혜를 생각하고 분부 왈, "저 서룡은 풀러 놓으라." 하고, 서릉을 잡아들여 엄형 난문하니 개개 직고하는지라. 어사가 들으시고 새로 분기 충천하여 바로 죽이려 하다가, '분이 풀리지 못하니 괴롭게 곤하여 죽이리라' 하고 거의 죽게 된 것을 큰칼 씌워 하옥하고, 그 남은 동당 이십여인을 엄형하여 가두고 들어와 부친께 뵈온대, 윤이 어사의 손을 잡고 느껴 왈, "하늘이 살피사 우리 부자를 만나게 하시니 유유창천이 알으심이로다. 슬프다! 모친 떠난지 십구년이니 어찌 뵈옵기 바쁘지 아니하리요?" 하시더라.


월봉기 하권이라.

각설, 소윤이 어사의 손을 잡고 크게 통곡하며 왈, "명천이 살피시어 우리 부자를 만나게 하시고 원수를 쾌히 갚게 하시니, 천은이 망극하되 노친 안전에 떠난지 이미 십구년이라. 뵈옵기 어찌 바쁘지 아니하며, 또 네 말 들으니 가세 대패하여 기한(饑寒)에 골물(고생)히 지내신다 하니, 이도 또한 나의 불효라. 인자 정의에 어찌 비감치 않으리요? 잔잉하다. 노리의 말을 들으니 네 모친이 월봉산에 유(留)한다 하니 내 친히 가 데려올 것이니, 너는 예 있어 국사를 폐치 말고 내 오기를 기다리라." 어사가 여짜오되 "부친은 기력이 진하실 것이니, 소자가 가와 모친을 모셔오리이다." 소윤이 왈, "그러하면, 나도 한가지로 가리라." 하시니, 어사가 즉시 떠남을 재촉하여, 이튿날 길을 떠나 철기군병과 기치 검극이며 진주로 꾸민 교자와 채색으로 도식(塗飾)하여 말에 싣고 가며, "이는 정부인 모실 교자라." 어사가 백마 금안(金鞍 금 안장)에 양산을 띄우고 부월을 앞에 세우고 노리 따라 가는지라. 그 길이 험하여 인마 임의로 용납지 못하는지라. 어사가 노리더러 문 왈, "예서 월봉산이 얼마나 하뇨?" 노리 답 왈, "이 앞에 큰 절이 있으니, 그 절에 가 쉬어 가사이다. 이제 그 절이 전도가 이백리라." 하거늘, 그 절에 들어가니 세상 절과 다르고 중이 많이 있으되, 그 중 젊은 중이 다 팔십세나 하더라. 어사가 들어가 잠깐 쉬어 떠날 새, 중더러 문 왈, "예서 월봉산이 얼마나 하뇨?" 여짜오되, "예서 동구 팔십리요, 또 골이 깊고 물이 많삽고 심히 험하오니, 인마는 이곳에 두옵고 소승 등이 모셔 가리이다." "그러면 나는 걸어 가려니와, 부친을 어찌 모시리요?" 중이 여짜오되, "태우와 어사또는 소승 등이 모셔가리이다." 하고, 남여(籃輿 의자 가마)를 내어 팔십된 중이 나거늘, 어사 왈, "이 절에 젊은 중이 없느냐?" 중이 여짜오되, "소승 등이 나이 젊었삽고, 그 외의 중은 다 나이 백세 되오니 행차를 모시지 못하나이다. 날이 이미 저물었사오니 행차를 바삐 하옵소서." 하거늘, 소윤이 남여를 타고 어사는 도보하여 왈, "나는 나이 젊었으니 족히 도보하리라." 중이 왈, "이 산중 길이 험하옵고 골이 깊사오니 행보를 득달치 못하리이다." 어사가 중의 늙음을 앗처하여, 촉석 험로(矗石險路)에 초혜를 들매고 노리를 따라 한가지로 부친을 모셔 가니라.

각설, 정씨가 고요한 밤에 한 꿈을 이루고, 아침부터 마음이 울울하여 정처 없이 경개를 따라 월봉산 동구에 다니다가 멀리 바라보니, 노승이 먼저 와 부인을 붙들고 즐겨 왈, "부인은 보소서. 대류촌에 버렸던 아기를 데리고, 부인을 모시려 오나이다." 하거늘, 부인이 믿지 아니하여 왈, "어찌 희롱하느뇨? 슬프다. 가군과 부모 모르는 자식은 어느 곳에 가 죽었는고?" 하며 통곡하거늘, 노리가 실정을 고하며 즐겨 목 위에 춤(침)이 없어 하거늘, 부인 왈, "노리를 보내고 날로 돌아오기를 기다리더니, 어찌 다녀오며 무슨 즐거운 일이 있관대 이대도록(이토록) 희롱하는고?" 하고, 눈을 들어 동구를 바라보니, 전후에 없던 행차가 위의(威儀)를 갖추어 들어오거늘, 부인이 모든 승에게 싸이어 보니, 예 보던 안면이 의희(依稀 희미)하더니 점점 가까이 와 남여에 내려 계상에 오르거늘, 자세히 보니 가군이 분명하거늘, 부인이 놀라 정신을 가다듬어 살펴보니 소태우 얼굴이 정녕한지라. 인사를 차리지 못하여 일변 눈물이 샘솟듯 하며 태우와 손을 서로 붙들고 방성통곡하니, 모든 중들도 차마 보지 못하여 한가지로 우는지라, 산천초목이 다 느끼(흐느끼)는 듯하더라. 어사가 계하에 서서 고개를 숙이고 무수히 통곡하니 그 경상을 측량치 모를러라. 태우와 부인이 겨우 정신을 차려 앉으며 부인이 어사를 가르쳐 왈, "저는 어떤 사람이니이까?" 태우가 답 왈, "대류촌에 버렸던 자식을 만나, 타향에 천행으로 만나 데리고 왔나이다." 하시니, 부인이 이 말을 듣고 정신이 아득하여 굴러 내리달아 어사를 붙들고 통곡하여 왈, "어화, 내 아들이야! 너를 버리고 천지일월을 대하여 눈물로 지낸지 얼푸(대략) 십구년이라. 이제 너를 만나매 망극한 정을 어찌 다 측량하리오?" 어사가 모친을 붙들고 애통하니, 황천후토와 초목 금수 다 느끼더라. 부인이 왈, "이는 다 하늘이 도우신 바요. 또 귀신과 부처님이 다 인도하신가? 이 어인 일고?" 하며, 정신을 각각 수습하여 진정 후에 각각 신고(辛苦 고생)한 일을 펴 풀 새, 태우는 동인 몸이 대해 중에 떠가다가 도공을 만나 겨우 살아 십구년 통곡으로 지내던 말을 다하고, 부인은 서릉의 집에서 도망하여 주씨 데리고 의정 우물에 와 주씨 빠져 죽고 망극하여 울다가 새도록 월봉산 암자에 이르러 그날 해복하여 대류촌에 버리고 십구년을 지낸 일과 원수 갚으려 하고 원정하던 말을 이르고, 어사는 소상서 댁에가 의혹하던 말과 정부인 정문하매 찾지 못하던 정사를 다 이르고 서릉 적류를 다 잡아다 가둔 말씀을 아뢰며 슬퍼하더니, 문득 부인이 기절하니 놀래어 수족을 주무르며 통곡하다가 회소지망(回蘇之望)이 없어 망극 중에, 어사가 생각하되 '황학산 노선이 약낭을 주며 정부인께 전하라 하더니, 이리 급할 때 쓰게 하심이로다' 하고 내어보니 우 뒷낱만한 약이 셋이 있거늘, 온수에 갈아 드리오니 이윽고 기운이 차차 나거늘, 연하여 드리오니 이윽하여 인사를 차려 왈, "내 자던가?" 하며, "봉래산에 들어가 부모를 잠깐 만나, 말씀도 조용히 못하고 왔노라." 하시더라. 어사가 그 절의 여승을 불러 왈, "그대 등이 나의 모친을 극히 관대하니 은혜 백골 난망이라." 각각 채단 한 동씩, 백미 오십석 상급하시고 노리더러 왈, "그대는 이생에서는 은혜를 다 갚지 못할 것이니, 나와 한가지로 부인을 모셔가리라." 하니 노리 왈, "소승은 바라건대, 부인을 모셔 정성을 다하여 한가지로 죽기를 청하나이다." 아뢰니, 그 정이 지극함을 가히 알러라. 이튿날, 부인을 모시고 길을 떠날 새 정부인이 모든 여승더러 왈, "나와 십구년을 한가지로 산곡간에 있어 형제같이 정이 중하더니, 이제 나는 귀한 자식과 가군을 천행으로 만나 영화로 산문 밖에 나가니, 십구년 동거하던 정이 춘몽같이 떠나니 회포를 금치 못할지라." 계시던 방에 들어가 이별시를 써 붙이고 불상을 대하여 왈, "도운 힘을 입사와 가군과 아자를 만나보오니, 이는 불도의 명감(冥感 뜻이 하늘에 닿음)이로소이다. 망극한 은혜를 어찌 다 갚사오리이까?" 무수히 표배 하직하고 나와 모든 여승을 각각 이별하니, 제승이 왈, "부인의 정성이 지극하시매 천덕을 입사와, 태우와 군자를 만나 한가지로 모셔 가오니 만복하심을 바라나이다. 소승 등은 부인을 다시 뵈올 기약이 속절 없이 끝이오니, 어찌 슬프지 아니하오리까? 죽어 구천 가 다시 뵈오리이다." 하고, 젊은 승은 연(輦 가마)을 메고 십리를 행하고, 늙은 승은 오리를 행하여 전송하더라. 부인이 왈, "다시 볼 기약이 아득하니, 제승은 내내 평안하여 나를 버리지 말고 생각하라. 나는 하늘이 거칠고 땅이 늙어도 잊지 아니하리이다." 하고 이별 하시더라. 부인이 자연 타일을 생각하시고 비감함을 이기지 못하여 눈물이 이음차 금치 못하는지라, 어사 연 아래서 위로하여 여짜오되 "세상 고락을 하늘이 정하신 바오니, 슬퍼 말으소서." 하며, 어사 위의를 갖추어 행할 새 홍우(紅雨) 시에 수백여 인과 각색 기구를 갖추어 벌이였고 기치검극(旗幟劍戟)은 햇빛을 가리워 백리에 연속하였으니, 시위 풍류 소리와 청홍 시녀는 남여를 타고 서로 연악(燕樂)한 위에 산천이 영롱하여 찬란한 거동은 세상에 짝이 없더라.

이튿날, 어사가 부인께 문안하고, 즉시 객사에 좌기하고 높이 앉아 기치검극을 각별히 벌여 세우고 부월을 뚜렷이 세우고 서릉 적류(도적 무리)를 올릴 새, 너른 뜰에 날랜 군사 갈아 세우고 그 가운데 서릉을 꿇리고 저주어 문 왈, "난계 관 행차 일행을 다 죽이고 행중 재물 탈취한 일을 모르난다?" 좌우 저자(詆訾)는 소리 천지 진동하니, 서릉 등이 황겁하여 대답할 말이 없어 다만 아뢰되, "내 집에 범의 새끼를 길러 이런 환을 당하니 무슨 말씀 아뢰오리까?" 개개 지만(遲晩 자백)하고 조삼용 등은 일시에 죽어지라 승복하거늘, 어사 왈, "다만 사람이 세상에 남에 불측한 일을 행하면 천지간에 극한 허물이 되어 도망치 못하나니, 이제 너희 궁흉극악을 명천이 살피사 나로 하여금 부모 원수를 갚게 함이라." 하고, 즉시 '조삼용 이십여 인을 잡아내어 사지를 각각 찢어 거리에 버리라' 회시한 후에 서릉을 잡아 놓고 생각하되, '이제 내 부모 다 살아 있으나, 저놈이 당초에 탐리만 하여 주중 사람을 다 죽이고자 하여 부친을 동여 대해에 넣을 제면 죽이나 다르지 아니하니, 요행 천우신조하여 잔명을 보존하였으나 남의 자식이 되어 부모의 원수 밖에 또 없나니, 아마도 저놈을 살려두지 못하리라' 하고, 일체로 내어 형벌하되 안(속) 마음에는 십오년 길러낸 정이 없지 아니터라. 조대희를 잡아내어 앉히고 왈, "너도 서릉과 한가지라. 죽일 것이로되, 네 계집의 젖을 사오년 먹고 연명하였으니 유모 은정을 생각하노라." 하고 결곤 오십도를 쳐 내치며 왈, "네 곳에 가 죽으라." 유모 구씨께 채단 십 동과 은자 일천냥을 상급하고, 서룡을 불러 왈, "너도 죽일 것이로되, 부친 말씀을 듣자오니 네 마음이 어진 줄 알거니와, 그러나 흉적 서릉의 동생이라. 따라 다니며 불측한 일을 지성으로 말려도 듣지 아니커든, 형을 버리고 다른 땅에 옮아 살았으면 이런 땅에 들지 아니하였을 것을, 후환을 모르고 그 중에 드니 네 심사가 아무리 착한들 어찌 착하다 하리요마는, 부모 명령을 좇아 죄를 사하노라." 하고, "채단 수십 동과 은자 오천냥을 주나니, 모부인 인도하고 백금 드린 은혜를 갚노라." 하고 탄식 왈, '저 손 곧 아니려면 나의 부모 어찌 살았으며, 이 몸이 세상에 났으리요? 저 손의 은혜는 백골난망이나, 도무지 대적 따른 일과 서릉의 동생인 고로 내심에 쾌치 못하노라.' "또 은자 오십냥을 주노니, 네 형의 시체를 거두어 고향에 갖다가 뭍으라. 십오년 길러낸 은혜를 갚노라." 하고 왈, '세상 사람이 혹 박하다 하리로다.' 또, 서룡더러 왈, "적류의 가장 기물을 다 너를 주는 것이니, 돌아가 수습하여 살라." 하시니, 서룡이 분부 듣고 나오니라.

어사가 좌기를 파하고 내당에 들어가, 부친 앞에 나아가 상소를 지어 성명을 고쳐 '소태'라 하며 전후 수말(首末)을 갖추어 죄를 청하고 벼슬을 사양하였으니, 자자항항이 정사 간절하더라. 또 소윤 부처가 아들 태를 데려 지필을 잡아 본택 모부인께 글월을 올리니, 자 윤의 글에 하였으되, '불효자 윤은 한 장 글월을 모부인 좌하에 올리나이다. 자식이 심사 발시 못하고 재주 없사와 길에 올라 몸을 삼가지 못하여 도적을 만나 생명을 보전치 못하니, 항혀 십구년간에 모친 심회 얼마나 슬피 지내시며 안수는 몇 번이나 적셔 계시니이까? 칼 아래 남은 명이 물속에 부지하여 처처에 걸식하여 부모의 생아구로(生兒劬勞)하신 은혜를 저버려 십구년에 미쳤사오니, 여러 성상(星霜 해)에 자식의 불효와 죄악이 세월로 더불어 한가지로 갔도소이다. 몸에 긴병이 얼마였고 손은 정히 비었으니 수천리 장정에 돌아갈 생각은 끊어지고 다만 하늘만 바라며 통곡하매, 이 생에서 자안을 뵈옴을 바라였으리까? 죽어 남은 넋이나 고향에 돌아가 모친 슬하에 의지하옴을 바라오매 날로 한숨과 눈물로 세월을 보내옵더니, 어찌 그때 복중에 끼친 자식이 모친께 두 번 뵈옵고, 이 땅에 와 아비를 찾을 줄 뜻하였으리이까? 소자가 저로 하여 듣자오니, 백발 화안이 일양하시다 하오니 천지 명우(冥佑)에 이 말씀이 정녕하시이까? 아자 소태가 불효 아비를 위하여 거짓 속임이니이까? 사제 위는, 몹쓸 형을 위하여 사생을 알려하고 만리 타향에 갔다가, 도적의 손에 죽지 아녔(않았)으면 기한에 빠져 몸을 마쳐 백골이 구학에 썪었을지라. 이것이 다 소자의 죄로소이다. 낯을 들고 고향에 돌아감이 진실로 참 괴하온(괴로운)지라. 이제는 원수를 갚았사오니 급히 돌아가 슬하에 뵈옴이 어찌 시각이 바쁘지 아니하리이까마는, 자식이 중임을 맡아 있고 혼자 가옵기도 중로에 적환이 두려울 뿐 아니라 동생의 소문을 알지 못하오니, 사방에 물어 자취를 찾은 후에 상소비답을 보아 함께 돌아가 모시리이다' 하였더라. 자부 정씨 서에 하였으되, 사생 이별과 가부와 자식 만난 전후 수말을 일일이 베풀어 이 생에 돌아가 뵈올 사리를 다 아뢰었더라.

어사가 공사를 마치고 장차 부모를 모시고 남경으로 가려할 새, 정씨가 어사더러 왈, "서적의 집에서 도망할 제, 주패라 하는 계집이 나를 위하여 한가지로 도망하다가 스스로 우물에 빠져 나로 하여금 자취를 피하게 하였으니, 이 은혜는 천지간에 하나이라. 그 해골이 뭍힌 곳이 있으리니, 너는 본관에 분부하여 관곽을 갖추어 시신을 찾아 뭍게 하라. 내 비록 친히 못 가나, 시비를 보내어 글로써 정을 표하리라." 즉시 본관에 분부하여, 본촌 중 의정이라 하는 우물을 찾아 근처 거민더러 물으니, 과연 이르되 '십구년 전에 모양이 이러한 옥낭자 우물에 떴거늘, 삼일 만에 건져내어 그 근처에 뭍었다' 하거늘, 사람으로 하여금 시체를 파내어 보니 용모 변치 아니하여 갓 죽은 것 같더라. 새로 금수로 슴염하여 관곽을 갖추어 재양한(햇볕 드는) 땅에 영장할 새, 정부인이 제물을 유정히 차려 시녀로 하여금 묘전에 제전을 벌이고 제문을 읽으니, 그 글에 하였으되, '십구년전 모월 모일에 그대의 은혜를 입어 재생한 정씨는, 제전을 갖추어 시비로 하여금 우물에 죽은 영혼에 고하나니, 그대와 나는 본래 타방 사람으로 성식이 없었으니 어찌 은정이 있으리오? 한갖 불행하여 일체로 적류에 빠지매, 성기 서로 통하여 두어 말씀을 들어도 첩이 그대의 정덕을 짐작하였더니, 그대 스스로 호화함을 버리고 첩을 인도하여 흉적의 집을 떠나 사생을 헤지 아니하고 도망하여, 침침 심야 기구 험로에 첨첨한 양개 여인이 칡 너츌(넝쿨)을 더우잡으며 바위 뿌리를 어르더듬어 간관전도(間關顚倒)하는 정상이 어찌 망극치 않으리오마는, 아무쪼록 구사십생하여 요행으로 세상을 다시 보아 고락을 한가지로 함을 바랬더니, 아깝다. 그대, 박명한 첩을 위하여 도적의 뒤를 끊어 급박한 환란을 면하게 할 새 스스로 정한 뜻이 있는 것을 첩이 실로 알지 못하고, 그대 속이는 말을 듣고 먼저 십여보를 행하되 따라오지 않기에 도로 더 의혹하여 나아가 찾은즉, 그대 앉았던 자리 비고 우물가에 신만 놓였으며 희미한 물 속에 의상이 띄었으니, 자못 그대 뜻을 깨달을지라. 이 어찐 일인고? 창천을 부르짖어 통곡한들, 어디 가 다시 볼꼬? 열열한 혼백이 지하에 갔을지라도 첩에게 명명히 도움이 있을지라. 첩이 그대 은혜를 입어 목숨이 살아나, 이때까지 부귀하였다가 오늘을 당하여 가군을 다시 만나보고, 그때 복중에서 낳아 버렸던 자식의 영귀함을 인하여 십구년 전 칼날 앞에 남은 인생이 부귀를 누릴지라. 그대 고고한 의혼 열백은 속절 없이 정중에 스러져 다시 위로할 사람이 없도다. 슬프다, 주씨의 정령이여. 아니, 첩의 심간을 비추어 알음이 있느냐? 아주 모르느냐? 이제 일 배 청주에 눈물을 뿌려 두어 줄 글월로 첩의 정회를 고하려 하니 흉격이 막혀 이만 그치나니, 슬프다. 그대 족속이 누가 있는지 알 길 없고 무주 고혼이 의탁할 데 없음이 지극 불쌍하여, 이제 수경전(私耕田 논밭)을 장만하여 본촌에 부탁하여 하여금, 분묘를 수호하고 향화를 끊치지 않게 하나니 밝은(가여운) 넋이 거에 흠향(歆饗)할지어다' 하였더라.

소태우가 어사더러 왈, "너는 복중에서 미처 얼굴도 모르는 부모를 찾으되, 나는 동생의 넋이 어느 곳에 의지하였는고? 어찌 부끄럽지 않으냐. 너는 모친과 함께 남경에 가 기다리라. 나는 사방으로 찾아 주유하여 네 삼촌의 종적을 안 후에 돌아가 모친 슬하에 뵈어, 불효한 죄를 면하리라." 어사가 꿇어 대 왈, "불연하여이다. 숙부가 부친 종적을 찾으려 하고 두어 가동과 천금을 거느려 집을 떠나 계시니, 필연 난계로 향하여 가 계실지라. 난계현에 공사를 내리와 숙부님 거취를 알지 못할진댄 친히 신고하여 방방곡곡에 두루 다니며 소식을 방문하올지니, 아직 난계 현령의 보장을 기다려보사이다." 정씨 왈, "어사의 말이 옳사오니, 아직 기다리소서." 태우가 그러히 여겨 어사의 공문을 난계현에 빨리 보내고 일행을 재촉하여 남경에 들어가니라.

행하여, 강주지경에 당하여 어사가 하인에 분부하되 "삼가촌 도공 선비 집에 숙소하라." 정하고 "큰 잔치를 차리라." 한대, 본읍이 영을 듣고 행차를 대후할 새 도공의 집이 심히 협착하고 누추하매 그 곁에 내외 별당을 이루어 수일간에 꾸며, 극히 휘황하고 장막과 차일이 일동을 덮어 운간에 베풀어 행차를 기다리더라. 이 적에, 도공이 소공의 거처를 알지 못하여, 연고를 알지 못하여 심중에 염려하더니, 전배 오며 "어사또 행차 십리에 당하여 주점에 들으셨다." 하며, 문득 소태우가 작은 수레를 타고 시비 복종을 거느려 도공의 집으로 들어와 전일 머물던 초당에 오르시니, 도공이 일어 맞을 새 놀라 왈, "상공이 한번 나가신 후 소식이 끊어지니 천인이 날로 바라옵더니, 이제 어디 가 계시다가 거마 복종이 이다지 장하니이까?" 윤이 답 왈, "그대의 후은(厚恩)을 입은지 십구년이로되 실상을 펴지 못하였더니, 이제 잃었던 자식이 자라서 어사 중임을 맡아 아비를 찾을 새 부자가 한가지로 와 술잔을 잡아 그대 은혜를 사례하고자 하는 고로, 이제 먼저 오기는 그대가 어사 위엄을 두려워 할까 하여 자식을 낙후하고 먼저 왔노라." 도공이 계하에 내려 복지하여 왈, "천인이 항상 상공이 의외 범인과 다름을 의혹하였삽더니 이제 알았삽고, 어사또는 조정의 영귀하신 자취를 굽혀 천가에 오실진대 이 몸이 죽을지언정 감히 감당치 못하올지니, 바라건대 어사 행차를 돌리어 본부로 들으시게 하오면 천인이 상하촌 제생을 데리고 들어가 불민하온 죄를 청하리이다." 태우 왈, "이 어인 말인고? 수상에 흘러오는 목숨이 거의 진한 것을 그대가 건져내어 마른 의복과 귀한 약으로 몸에 입히며 입에 들이어 잔명이 회생하여, 이제 나로 하여금 노모의 소식을 알며 자식을 세상에 용납하게 함은 이른바 두 번 살린 은혜라. 이러므로, 이리 와 중심을 베풀고 자식의 영화도 자랑코자 하여, 이 땅을 지날 새 십구년 동기같이 극대하던 은정을 갚을 길 어렵고, 수만리 장정에 다시 만날 기약이 망연하니 어찌 느껍지(감정이 북받쳐 참기 힘듦) 아니하리오? 이런 고로, 자식이 나를 따라 와 아비 살리신 은혜를 사례코자 함이니 어찌 가치 아니하리오?" 이시하여 어사 행차 당하니, 천병만마 좌우에 나열하고 기치부월은 햇빛을 가리웠더라. 어사가 홍포 옥대에 백옥홀 잡고 들어와 부친께 배알(拜謁)하고 여짜오되 "주인 도공이 어디 계시니이까?" 태우 답 왈, "아까 나와 더불어 회포를 의논하여 옛일을 이르더니, 네 들어옴을 보고 장외로 피하니라." 어사가 계하에 내려서며 물어 왈, "주인 도공 선생께 내 명첩을 드리라." 하니, 도공이 제생으로 더불어 장 밖에 섰다가 어사의 분부함을 듣고 창황히 정하에 내려가 머리를 숙이고 재배하되, 어사가 도공의 공경함을 보고 친히 붙들어 왈, "장노의 은혜는 갚사올 길 없사온 고로 부친을 따라 와 자질예(子姪禮)로 뵈옵고, 하루 연석에 이십년 신고하신 은덕을 치사코자 함이러니, 이렇듯 겸손하시니 이는 소자의 바라는 뜻이 아니로소이다." 도공이 존수 사 왈, "천인은 하방 미천한 사람이라, 어찌 감히 귀인의 예를 바라리까?" 이때 본관 지현이며 근읍 수령이 다 모이니, 관대(冠帶)한 관원이 오십여 원이러라. 어사가 계하에 섰으니 상하 송황(悚惶)하여 다 국궁부복하였으니, 위엄이 더욱 엄숙하더라. 태우가 내려와 도공을 붙들어 왈, "그대가 이렇듯 겸손함은 도리어 위의를 잃을 바라, 한가지로 올라가 좌를 정함이 옳으니라." 한대, 도공이 마지 못하여 태우의 뒤를 좇아 좌정하매, 어사가 말하여 왈, "오늘 연석은 조정 항열이 아니라 내 부친 재생하신 은혜를 위하여 하는 바니, 작직은 의논치 말고 각각 연치로 좌를 정함이 가하도소이다." 모든 수령이 대 왈, "불가하여이다. 어사또 작직이 한갖 존귀할 뿐 아니라 천자의 조명을 받자와 계시니, 우리께는 군부와 일체라. 태우는 작직이 계시니 오늘 좌상에 주벽하실 것이요, 주인 도공은 어사또께서 위할 사람이오 또 백면 서생이니 태우 아래 앉음이 무방할 듯하오니, 사또 좌탑을 동벽으로 정하시고, 우리 제관은 영외에 시좌(侍坐)하옴이 가할까 하나이다." 태우가 듣지 아니하고 도공과 제생을 거느려 서벽으로 앉으니, 인하여 상을 들이며 풍류를 시작하니 각양 음식이 풍미하여 그 사치함이 세상에 드물더라. 술이 서너순배에 지나매 어사가 일어 탄식 왈, "좌중은 내 죄를 들으소서. 소자가 죄악이 심중하와 십구년 되도록 부모를 알지 못하고 원수의 집에서 자라났으니 천지간 불효자라. 머리를 들어 세상에 출입하기 실로 참 괴하여이다. 부친이 만일 주인 어른의 구함 곧 아니런들, 어찌 이제 서로 보리요? 남의 자식이 되어 부친 살린 은혜를 생각할진대 이 몸이 진토록 부모같이 섬길 것이어늘, 이제 나는 벼슬을 탐하여 고향을 생각하매 하늘 같은 은혜를 갚지 못하고 돌아갈지라, 어찌 부끄럽지 아니하리요?" 언필에 낙루하고 가사를 읊어 풍류를 화답하니, 만좌가 경항 탄식하더라. 인하여 친히 잔을 들어 도공의 앞에 나아가 꿇어 권하니, 도공이 감히 사양치 못하여 오직 피석할 따름일러라. 어사가 잔을 드린 후에 각읍 제관이 주 왈, "노야가 주인을 위하여 잔치를 배설하고 친히 잔을 드리시니 우리가 다 어사의 하관이라, 태우께 술을 드려 하례하고 또 주인을 위하여 한 잔 예를 행하리라." 각각 풍류를 나오며 잔을 들어 도공 앞에 나아가니, 이날 도공의 영귀함은 이루 기록치 못할러라. 날이 저물매 파연곡(罷宴曲)을 아뢰니 각각 단자를 드릴 새, 어사가 황금 일천 저울과 백금 삼만냥과 각색 채단 오백 동을 써 도공 앞에 올리니 도공이 평생에도 못본 바라. 극히 외람하여 입에 말이 없고 다만 엎드려 볼 뿐일러라. 열읍 수령이 각각 단자를 드리니, 그 수를 다 기록치 못할러라. 이날 황혼에 좌를 파하매, 태우가 도공을 데리고 어사와 한 방에 들어와 서로 정회를 의논하니, 어사의 치사(致謝)함과 도공의 황공하여 하는 뜻이 일야에 다 펴지 못할러라. 인하여 삼일을 유하니, 어사 부자 도공께 두터운 은정은 이르지 말고 허다한 재물이 일방에 제일이러라. 삼일 만에 어사 발행하여 남경으로 행차할 새, 태우가 도공으로 더불어 떠나는 정이 형제간같이 연연하여 차마 손을 나누지 못하여하더라.

여러날 만에 남경에 득달하니, 이에 난계현 보장이 왔는지라. 소위 죽어 성황사에 빙소한 연유를 자세히 아뢰고, 또 소위가 데려갔던 창두 의산이 가는 줄 보장에 붙였더라. 소윤 부자가 보장을 보고 서로 붙들고 통곡함을 초상같이 하더라. 문득 의산이 들어오며 정하에 엎어져 통곡 왈, "지하는 어디며 인간은 어디이까? 우리 태우 인간에 계시도소이다. 나와 같이 오신 임자는 속절 없이 관속에 해골이 되단 말가. 소인은 알지 못하옵나니, 노야는 뉘시며 탁주댁 부인 평부를 들어 계시이까? 소인이 소주인을 모시고 태우 종적을 알려 하여 만리 타향에 왔다가, 난계에 이르러 소식이 망연하오매 소주인이 청춘 소년에 한소리 통곡하사 인하여 깨지 못하시니, 노자의 마암(마음)으로 그때를 당하매 하늘을 위하여 원통하온 정을 아뢰며 일월이 무심함을 애닲아 하여, 급히 난계 원님과 상해 의약을 극진히 하여 구하되 종시 회생을 얻지 못하오매, 의금을 좋게 하고 관곽을 후히 하와 그 땅 성황사에 빙소하옵고, 없으신 주인의 뜻을 받아 태우 자취를 아무쪼록 듣보려 하더니, 미구(未久)에 현령이 과만이 차 환직하시고 다른 지현이 오매, 뉘(누가) 소인의 정지를 알아 고호(顧護)하리이까? 다만 소인이 충선으로 더불어 상전에 지키옵고, 밤이면 관을 안고 자며 낮이면 여염에 가 밥을 빌어다가 상식하온 후에 둘이 나눠 먹삽고 목숨을 부지하옵더니, 창천이 살피지 않으사 팔 년 만에 충선이 마저 죽사오니, 소인이 혼자 남아 스스로 생각컨대 충선의 해골 소염할 길 없고 소랑 군관을 모셔 고향에 돌아갈 형세 없는지라. 천애 만리에 갈 길이 아득하니 천사만한에 칼을 빼어 자결코자 하다가 홀연 생각하온즉, 소랑 군관도 지킬 이 없고 천행으로 혹 타일에 찾을 이 있어도 알 이 없으리니 이 또 어이할꼬? 슬픔과 죽기를 참고 두루 다니며 빌어 충선의 시신을 수렴하여 낭군 발치에 뭍고, 날마다 통곡하여 넋을 불러 애위하니, 헤아리건대 이제 몇 해이니까? 오늘날 태우 안전에 다시 뵈옵기는 진실로 천만 몽매 밖이로소이다." 윤이 이 말을 들으매, 천지 아득하여 가슴을 두드리며 한소리 통곡에 심혼이 끊어지더라. 어사도 한가지로 울며 부친을 붙들어 구하매, 의산을 불러 은정으로 대접하니 노주(奴主)간 정이 세상에 짝이 없을러라. 즉시, 대선 삼척을 꾸미고 양식 차려 난계로 공사하되, '본현 성황사에 빙소한 관은 곧 어사의 숙부라. 이제 관을 모셔 고산에 돌아갈 새 친히 가지 못하여 비장 이 인, 하인 십여 배를 보내나니, 본관은 돌보아 관을 배에 모셔 무사히 당하게 하라.' 또 해변 열읍에 공문 놓아 '상구를 호송하라' 하니라. 의산이 상구 모시러 함께 갈 새 백금을 주어 난계 사람의 은혜를 갚게 하고, 충선의 관은 곁 배에 싣고 오게 하니라.

이에, 어사가 남방 순행을 다하고 모든 공사를 남경으로 모아 결단하니, 칭송하는 소리가 수천리에 가득하고 아름다운 소문이 천하에 사무쳤더라. 난계에 배 간지 삼삭에 이르매 하인이 아뢰되, "소랑공 상구 강변에 이르렀다 하나이다." 태우 부처가 통곡하고 복제를 차리며 제물을 갖추어 한가지로 강상에 이르니, 오색 금장은 배 위에 덮혀 바람에 부치이고 금자단정은 석양에 어리었으니 어찌 처량치 않으리오. 태우 부처가 배에 올라 관을 붙들고 통곡하니, 슬픈 바람은 곡성을 인도하여 벽파에 사무치고, 흐르는 눈물은 세우(가랑비)를 화하여 강수를 보태더라. 관하에 제전을 벌이고 윤이 소의관으로 곡임하고, 소태는 황명이 몸에 있기에 흑관대로 제물을 받들어 고혼을 위로하여 왈, "모년 모월 모일에, 사형 소윤은 아들 병부상서 소태를 데려 강변에 와 사제 소위의 관을 두드리며 넋을 불러 고하나니, 슬프다! 그대 만리 타향에 사오나온(못된) 형을 찾으러 왔다가 속절없이 몸을 버려 장사에 빙소하니, 그대의 정령이 진실로 진하였느냐? 어찌 반드시 그러하리요? 슬프다, 그대 인간에서 나를 찾으러 수만리 난계현에 이르러 종시 소식을 못 들으며 보지 못하는 고로, 지하에 찾기를 기약하여 그리하도다. 그대 비록 지하에 찾으려 하나 일정 찾지 못하리니, 그대 넋이 지하에 있느냐? 인간에 다시 돌아와, 나의 자취를 따라 다니며 가만히 도움이 있어 나로 하여금 부부 모자 다시 만나 보게 하는 것을 내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네 혼백이 열열히 표홀(飄忽)하여 삼천구지(三天九地)에 의지할 데 없었도다. 슬프다, 너는 불측한 형을 사랑함이 이렇듯 하는 것을 나는 어진 아우를 살리지 못하니, 백발 자안은 조석으로 문을 비겨 바라시는 은애를 무슨 말씀으로 고하오며, 청년 약제는 나로 인하여 타향에 죽음이 된 것을 망연히 알지 못하고 십구년을 지내매, 객식을 평안히 하여 외양에 무사한 사람같이 견디었으니 불효 불우한 죄악이 인간에 다시 있으랴? 슬프다! 세상에 이런 슬픈 일이 어디 또 있으리요? 선인이 소년에 세상을 버리시니, 끼친 골육이 그대와 나뿐이라. 형제가 조상 가묘(家廟)를 모셔 세월을 지내매, 우리 형제가 자안을 위하여 슬하를 떠나지 아니하고 인간 락사(樂事) 이에 더음(더함)이 없으매 우리 모자 형제 자애지정을 하늘이 살피실까 하였더니, 슬프다. 내 불행히 청년에 등과하여 장차 난계로 행할 새 어찌 이별이 참담치 않으리오. 그대는 오직 나를 위하여 '청렴하라' 당부하고, 나는 오직 그대를 권하여 '자안을 평안히 모시라' 하고 경계하였더니, 어찌 내 말을 듣지 아니하고 훤당(萱堂 모친)을 떠나 수만리 장정에 정처없이 다니다가 외로운 몸을 타향에 버려, 모친의 바라시는 정을 끊치며 나로 하여금 할반지통(割半之痛)을 보게 하니 이제 그대 정녕한 소식이 탁주에 못 이르렀으니, 학발 편친은 그대를 날로 기다리시고 청년 소처는 돌아옴을 고대하거늘, 너는 널속에 뼈뿐이라. 내 어느 면목으로 자안을 뵈오며, 과수를 어찌 뵈오리오? 이것이 다 형의 죄악이 그대께 미침이라. 슬프다, 나는 몸을 삼가지 못하여 재물을 가지고 원지에 행하며 스스로 살피지 못하여 죽어도 아깝지 아니하거니와, 그대는 형제 은정으로 모친 뜻을 받자와 만리를 행하매 청년 약질이 근력이 진하여 무정 무도한 형을 만나지 못하고, 오히려 살았음을 생각지 못하매 정녕이 죽은 줄 알고 이 몸이 되었느냐? 애홉다(슬프다)! 슬픈 울음이 그대 혼백으로 더불어 한가지로 슬퍼져 마침내 깨지 못하고 죽으냐? 이 몹쓸 형은 인간에 있어 그대 넋을 위로하고 어진 아우는 죽어 세상에 자취를 없게 하니, 옛 사람의 복선화음(福善禍淫)이란 말이 진실로 그르도다. 하늘을 어찌 원망치 아니하리요? 경사로 이곳에 다다라 나는 하늘이 높고 땅이 오래나 나의 설움은 진할 때 없을지라. 날이 저물고 길이 멀었으니 인간에 바랄 바 없도다. 슬프다! 어찌 밝지(가엽지) 아니하며, 어찌 애닯지 아니하리요? 그대 정령이 능히 알음이 있느냐? 만일 알음이 있을진대 일촌간장(一寸肝腸)을 살필 것이요, 알음이 없을진대 나의 슬픈 말이 속절 없도다. 슬프다, 혈마 어찌하리요. 나는 자식의 직사에 관계하여 관을 좇아 한가지로 가지 못하나니, 그대 혼백이 먼저 고향에 가 모친 슬하에 뵈옵고 나의 돌아감을 기다리라. 천자의 조서(詔書)가 조석(朝夕)에 이르오니, 금년내로 돌아가 그대 해골을 부친 묘하에 뭍고 자손 중에 하나를 정하여 그대 후사를 잇게 하려니, 오호 통재라. 그대를 속이지 아니하리니 흠향하라." 하였더라. 읽기를 다하매 통곡하니, 산천초목과 일월이 빛이 없더라. 제를 파하고, 또 제물을 차려 의산으로 하여금 충선의 관 앞에 벌이고 태우가 친히 잔을 잡아 제할 새 극히 애통하더라. 인하여 십여일을 유하여 모든 기구를 다시 차려 탁주로 보내니, 열읍 수령이 어사의 공문을 보고 친히 포구에 나가 각각 그 지경에 호송하더라.

각설, 장부인이 어사를 이별하고 친자식 여읜 듯이 연하여 소식을 기다리더니, 그 해가 지나고 성년 봄이라. 증전 삼십년 전에 소상서가 강남 절도사로 갔을 제 한 계수나무를 얻어다가 사당 앞에 심었더니, 그 나무 성하고 빛남이 범 초목과 다른지라. 해마다 꽃과 (열매) 열음이 성하여 지내더니, 상서가 기세하시던 해에 절로 어우러 죽은지 여러 해러니, 윤이 진사하여 경사보던 해에 잎이 나고 난계로 갈 제 꽃이 피고, 그 후 십오년이 되도록 꽃 핌이 없더니 홀연 꽃이 만발하니 이는 소태가 급제하던 해일러라. 장부인과 동네 사람이 일러 왈, "이 집에 무슨 영화 있으려고 이 나무 새로이 성하는 것이 이상하다." 하더라. 그 후에 다시 잎이 피지 아니하고 열음이 없더니, 이해 봄이 당하매 또 꽃이 피었으되 한 가지는 죽었는지라. 장부인이 두루 걸어 나무 밑에 가 손에 계화를 잡고 하늘께 빌어 왈, "이 집에 무슨 경사 있으려고 이 계화 이렇듯 성하느뇨?" 나무를 어루만져 왈, "무슨 연고로 한 가지 죽은고?" 하며 통곡하더니, 본관 하인이 아뢰되, "어사또 서간(書簡)이 남경으로 좇아 왔삽기 아뢰나이다." 장부인이 반겨 "들이라." 하여 떼어본즉, 소윤 부처의 편지와 어사의 서찰(書札)이라. 부인이 시면(始面 첫머리)을 잠깐 보매, 심신이 산란하고 안정이 아득하여 능히 살피지 못하는지라. 식부(息婦 며느리) 육씨를 주어 왈, "이 어찐 서간이뇨? 나는 실로 글자를 분별치 못하리로다." 육씨가 먼저 소지현의 서간을 볼 새, 목이 메어 능히 소리를 못하고 인하여 기절하거늘, 겨우 구하여 다시 보니 그 글에 하였으되, "불초 자 윤은 근백배(謹百拜)하고 한 자 글월을 자모 안하에 올리나이다. 십구년 전에 자모 슬하에 있삽더니, 조명(朝命)을 받자와 난계현에 가옵다가 중로에서 수적 서릉이라 하는 흉한을 만나 재물과 노마를 다 죽이고, 윤을 마저 동여 물에 넣으니 강파에 뜨여 가옵다가 도공이라 하는 사람이 불쌍히 여겨 건져내옴을 얻어 겨우 목숨을 부지하였삽더니, 천만 의외에 명천이 하찰하사 대류촌에 버린 자식이 살아나 모친 슬하에 두 번 뵈옵고, 이 땅에 와 아비를 찾을 줄 어찌 뜻하였으리이까? 사제 위는, 불측한 형을 위하여 만리 타향에 정처없이 다니다가 적환에 죽지 않았으면, 몸이 기한에 미쳐 구학에 썪었을지라. 어찌 원통치 않으리이까? 이제 원수를 갚았사오니 돌아가 슬하에 뵈옴이 시각이 바쁘오되, 자식 소태가 중임을 맡아 거취를 임의로 못하옵고 소자가 혼자 가려하온즉 중로 도적에 남은 겁이 없도 아니하옵고, 제일 사제의 사생 소식을 알지 못하오니 사방에 탐문하여 거처를 알은 후에, 자식의 상소비답을 기다려 한가지로 가리이다." 하였더라. 또 정씨의 글에 하였으되, "소부는, 존고 슬하를 떠나 난계로 가옵다가, 수적을 만나 가군과 노복을 이별하옵고 도적의 집에 가오니 죽을 목숨이 경각에 있삽더니, 천지와 귀신의 도우심을 입사와 탈신 도주하와 월봉산 자호암에 들어가 제승의 덕으로 잔명을 부지하와 무정한 세월을 보내옵더니, 천만 의외에 낳아 버린 자식이 귀히 되어 가군과 자식을 만나 한가지로 돌아가려 하오나, 숙숙의 행색은 어찌 되온지 모르오니 어찌 초민(焦悶)치 아니하리이까? 아뢰올 말씀이 태산 같사오되 대강만 아뢰오니, 올라가와 옛말 삼아 아뢰오리이다." 육씨가 읽기를 다하매 통곡 왈, "이 서찰이 남경에서 왔사오니, 모친은 보옵소서." 부인이 정신을 진정치 못하여, 슬픔에 반가운 줄을 알지 못하고 다만 눈을 떠 하늘만 보더니, 주파가 나와 서찰을 보다가 고하여 왈, "이는 우리 소태우 수적(手迹)이 분명하오니, 부인은 안정하소서." 하고 인하여 통곡하니, 부인이 오히려 믿지 아니하여 왈, "이 편지가 하늘로 좃처 오며 귀신이 희롱함이냐? 어찌 내 애자의 글월이라 하느뇨? 주파, 너는 우리 윤의 글씨와 정부의 필적을 익히 아느니 일정 같으냐? 나는 어찌 한 자도 알지 못하느냐?" 주패 서찰을 거두어 감추고 청심환을 갈아 부인께 드리니, 이윽고 정신이 잠깐 들어 서찰을 다시 자세히 보니 장자 윤부처의 글씨 분명한지라. 하늘께 사배하고, 인하여 사당에 들어가 서찰을 상 위에 놓고, 고 왈, "장자 윤이 죽지 않아 귀기 불원하오니 이제는 조상 봉사하옵기 근심 없삽고, 소씨 영화 문에 당하였나이다." 하고, 인하여 기절하니 여러 시비 어루만져 구하니라. 주패 왈, "우리 그때에 어사의 용모와 행지거동을 보고 아니 일컬었더이까? 그러나, 어찌 우리 댁 낭군이신 줄 알았으리이까?" 부인 왈, "이는 다 밝으신 하늘 뜻이며, 소문(소씨 가문)의 적덕이라. 어찌 일시 불행함을 한하리오?" 인하여 삼인의 서찰을 한번 보랴매, 소리할 기운이 없는지라. 육씨는 새로이 통곡하여 가슴을 두드려 왈, "숙숙은 이십년 유리 중에 버렸던 귀자를 만나 금년에 돌아와 자모께 효양을 일위려니와, 슬프다! 첩의 가군은 남방에 한번 가매 소식이 묘연하니, 이제 그 죽음이 정녕하고 다시 바램이 끊쳤도다." 부인이 한가지로 통곡하며 옥수를 잡아 위로 왈, "사람의 사생이 하늘께 있고 화복이 시절에 있나니, 현마(차마) 어찌하리요? 이제 오직 유유한 천의를 알지 못하리니 식부는 나를 보아 위로하라." 인하여 서간 가져온 하인을 찾으니, 이는 어사가 내려갈 적에 딸려 보낸 창두라. 부인이 정하에 불러 들여 전후 곡절을 친히 물으시며 눈물과 탄식이 절절이 솟아나니, 이때 경상은 가히 신명이 살필러라. 노귀 또 아뢰되, "노야 작직이 없으신지라 만리 장정에 두 번 환난을 두려워 하시고, 또 어사또 행귀를 임의로 못하는 고로 천자께 상소하와 비답을 기다려 한가지로 오시려 하더이다." 인하여, "경사에 간 사람을 기다리더라." (하더라).

차설, 이때, 황제가 공주를 두었으되 길례(吉禮)를 정치 못하였더니, 소태의 상소를 보시고 경희하사 파조(罷朝) 후에 내전에 들어가사 황후를 대하여 왈, "짐이 만조를 살펴 공주의 배필을 유의하온즉 오직 서계조의 짝이 없기로 헤아린지 오래되, 다만 계조의 문호가 잔미(孱微)하여 사족이 아니매 일로 자저(주저)하며 남경 안찰 어사를 보내었더니, 이제 제상소를 보오니 전조 적 상서 소한경의 손자요, 진사 소윤의 아들이라, '제 부모를 찾고 원수를 갚았노라' 하였사오니, 어찌 기특치 아니하오리이까? 이제는 바삐 불러 장녀의 배필을 삼으려 하오며, 또 태자의 빈궁은 차례로 정한 후에 의논하자 하였사오매, 들은즉 상서 왕경의 여아가 용모 절세하고 성질이 화순하다 하니, 그 부인은 후의 친제라. 후(后) 친히 이르시면 일정 들으려니, 진실로 그러할진대 취하여 태자빈궁을 삼음이 어떠하니이까?" 후 대 왈, "성교(聖敎) 비록 마땅하오나 일즉 듣자오니, 왕상서가 금방 장원 서계조로 더불어 혼인을 정하여 계조가 돌아오기를 고대한다 하오니, 폐하의 소교가 일정 왕상서의 정한 바라, 공주와 태자의 대례를 이 양인에게 정함이 불가할까 하나이다." 상 왈, "혼인은 귀천이 다르지 아니하니 여염에서 청혼하여 수일이 격하였다가도 혹 못되는 이도 있나니, 이제 왕경이 계조의 빙폐(聘幣)를 받았는지 알지 못하거니와, 비록 받았을지라도 종래 예를 행치 않았으니 이제 빈궁 삼음이 어찌 허물이 있으리요? 다만 왕 여의 건부를 알지 못하니 혹 보아 계시면 어떠하더니이까?" 후 왈, "그 아이 십세에 궐모가 데리고 궐내에 들어 왔거늘 보오니, 용모 기질이 고금에 일인이라. 첩과 궁중지인이 다 사랑하여 지금까지 칭모하는 바요, 그 후는 보지 못하였도소이다." 상 왈, "십세에 그러하면 장성하매 어찌 다르리요? 그러나, 아직 누설치 말으시고 왕경의 부인께 전지(傳旨)를 내리오셔, 그 여아를 데리고 들어 오게 하소서. 진실로 탁월할진대, 태자빈궁은 천하와 종사에 중한 바라. 어찌 적은 혐의를 꺼려 그런 숙녀를 취치 아니하리요? 들어오면 친히 보아 정하리라." 차시에 궁인 왕씨 모셔다가 고 왈, "왕경은 신첩의 덕숙이라. 그 혼인 수미(首尾)를 자세히 아옵나니, 피차 말로 정하였삽고 일정 현훈(玄纁 폐백) 받음 없나이다." 상 왈, "연즉 무방하니, 내일로 그 여자를 데리고 들어오게 하소서." 익일에 황후가 봉서를 써 궁녀로 전하니, 그 봉서에 하였으되, '서로 이별한지 오랜지라. 현제는 곧 위형하는 생각이 없느냐? 나는 현제 생각함이 날로 깊도다. 질녀(조카딸) 영아는 보지 못한지 여러 해라. 비록 규수의 몸이나 증전 여러 순 보려하되 한번 들어오지 아니하니, 군신분의(君臣分義)는 고사하고 숙질간 정이 어찌 그러하리요? 이제 현제를 위하여 소연을 배설하고 특별히 청하나니, 질아를 데리고 즉시 들어오라. 황상께서 나의 적요함을 위하사 현제 모녀를 청하여 수일을 즐겨 놀라 하시는 상명이 계시니, 칭탈(稱頉 핑계) 말고 들어오라' 하였더라. 석부인이 전지를 받아 사배하고, 상서와 경아를 청하여 교서를 보인 후에 경아더러 왈, "내 마냥 칭탁(稱託)하고 들어가지 못하였더니, 이번은 성상이 명하신 바라. 거역지 못하리니, 내일 나와 한가지로 들어가리라." 한대, 소저 왈, "낭랑께서 여러 번 부르시되 연고 있사와 사은치 못하였삽더니, 이는 황상 엄명이라. 어찌 감히 칭탁하리이까마는, 소녀의 신상이 불평하오니 차의를 주달하오시면 병차 후에 들어가 사죄하리이다." 상서가 정색 왈, "여아의 이렇듯 불민함은 일찍 헤아리지 못한 바라. 네 비록 규수 몸이나 군신분의는 일체라. 한번 들어가 황후께 뵈옵고 숙질간 정의를 폄이 어찌 해로우리요? 거짓 칭병(稱病)하고 군상을 속여 간사한 사람이 되려 하느뇨? 극히 불민하도다." 소저가 염용(斂容) 대 왈, "소녀의 몸에 병도 있삽고, 심중에 생각하옴이 있삽기로 두려움이 심하오매 군명과 부명을 봉승치 못하옵고, 이곳에서 죽어도 가지 못하리로소이다." 상서와 부인이 대경하여 왈, "무슨 생각이 있느뇨? 은휘치 말고 자세히 일러 부모의 의심을 덜게하라." 소저가 피석 대 왈, "황후가 비록 모친 동기시고 소녀의 숙모시나, 무단히 궐내에 출입하옴이 규수의 도리 같지 아니하옵기로 여러 번 부르시는 명을 거역하였삽거니와, 오늘 명은 또한 전일과 다르오니 일정 연고가 있는지라. 태자 바야흐로 장성하여 계시매 빈궁을 간택하올 때라. 소녀 들어가온즉 황후가 친견하시고 만일 더럽다 아니하실진대 혹 간택 중에 들기 쉬울지니, 부모께서 무슨 말씀으로 칭탁하시리까? 이러므로, 칭병하여 '신양(身恙 지병)의로 규문 밖에 나지 못한다' 하오면, 비록 국가 속이는 죄 있으나 오히려 어찌리까?" 상서가 묵묵 양구(默然良久)에 왈, "여아의 소견이 비록 유리하나 너 본래 병이 없거늘, 황후께 병든 자식이라 아뢰기 신자(신하)의 도리 아니오. 만일 성상이 나더러 물으시면 나는 종시 그이지 못할지라, 어찌 하리요? 안즉 부인은 들어가 황후 말씀을 잘 대답하소서." 이튿날, 석부인이 궐내에 들어가니 황후가 맞아 반기시며 문 왈, "질아도 들어오느냐?" 대 왈, "여러 순 조명을 거역하온 죄 만사무석(萬死無惜)이오나, 진실로 연고가 있사오니 타일에 데리고 다시 들어오리이다." 인하여, 침전에 들어가 형제 정회를 베풀 새 후가 문 왈, "경아가 십세 후는 한 번도 들어오지 아니하매 보고 싶은 마음에 일시 잊지 못하여 하기로, 황상이 명하사 우리 형제 정회를 풀며 또 경아를 친히 보셔 '정할 일이 있노라' 하시더니, 무슨 연고로 못 데려왔나뇨?" 석씨 대 왈, "황상이 신첩 모녀를 무슨 일로 불러 친히 보시려 하나이까?" 후 답 왈, "황상이 항상 우리 선조를 칭찬하시고 또 현제의 화용을 기리시던 중에, 질아의 자모덕성을 들으시고 태자빈궁에 뜻을 두사 나더러 묻자오실 새 아이 때 본대로 고하오니, 금일에 청하옴은 장성한 후 위인을 친히 보시고 장차 천하 받들 군모를 삼고자 하시나니, 현제 뜻이 어떠하뇨?" 석부인이 내심에 여아의 아룀을 항복하고 또, 소생의 언약을 배반치 못할지라. 비록 외람하나 존수 재배 왈, "이는 분의에 황송하온 하교시라. 어찌 흔행치 않으리까마는, 아이가 십세 후에 우연히 신병을 얻어 지금 오륙년이 당하되 백약이 무효하여 거의 병폐지인이 되었사오니, 어찌 병 있는 자식을 간택에 의논하리이까?" 후가 침음양구(沈吟良久)에 왈, "들으니, 금방 장원 소태로 더불어 경아의 혼인을 정하여 환조함을 기다린다 하니 소태는 국가의 중신이요, 천자의 고공이라. 왕상서가 어찌 병폐한 자식으로 이 사람과 정혼함이 있으리오? 우리 형제간은 질병우환을 모르고 지낼 바 없으되 질아의 병든 소식은 알지 못하니, 현제가 무슨 뜻으로 나를 속이느뇨?" 석씨가 십분 황공하여 이에 소생의 언약을 배반치 못할 줄로 일일이 주달한대, 후 왈, "내 아직 황상께 실상을 고치 말고 현제의 말대로 병인으로 고하려니와, 현제는 나의 지휘하는 대로 나가 개유(타이름)하라. 이제 황상이 소태로써 부마를 삼으려 하시니 경아의 혼사 완전치 못하리니, 잘 개유하여 뜻을 두루히라(돌이키라)." 석씨가 악연하여 생각할 바를 알지 못하더라. (하략)

(필사 도중에 오자, 탈자된 페이지들이 앞뒤 표지에 붙어 있음. 내용은 조금씩 다름.)
생이 일어나 사례 왈, 대인의 명을 감히 당치 못하올소이다. 소생의 경망한 죄를 당코자 하나이다. 상서 흔연히 가로되, 주인이 이르지 않아도 객이 먼저 청코자 하더니 어찌 사양하리오. 생이 시비를 명하여 옥반에 향차와 진찬을 들여 좌석에 벌이고 친히 잔을 들어 순배 수삼배에 미치니 상서 서생의 손을 잡고 왈, 어제 과연 매씨 전하는 말을 들었느냐. 생이 몸을 굽혀 공경 대 왈, 과연 매씨 전하는 말이 있사오되 소자의 분에 넘고 또한 친명이 없삽기로 봉승치 못하였나이다. 상서 왈, 노부 학사를 흠앙하여 사모하는 정이 간절하기로 청하는 바 있더니 학사 행여 모래를 주고 진주를 받고는가 하여 거절하였으나 어찌 모르리요. 연이나 불초한 여식이 비록 임사의 덕이 없으

(책 필사와 동일 서체의 편지 한 통이 책에 껴 있음 - 글로 미루어 책 필사하신 분은 여성임. 성함이나 연도는 없음.)
손형전답봉장. 성(형)예 언하노이다. 연이오나 세사 부운 같사와 ... 연적을 찾아 놓고 우리 영감께서 평시에 사서 간직하신 붓을 뒤져 손에 드오니 녹발을 흔들며 주인을 찾는 슬픔을 ... 서로 상봉 소원이오니 회답 주시고 과념 마시고 ... 시월 십사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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