Татарстан (타타르스탄)은 러시아 연방의 자치 공화국들 중의 하나이며, Казань (까잔)은 타타르스탄 공화국의 수도입니다. Урал (우랄)산맥을 경계로 서유럽쪽 러시아의 경제와 문화의 중심지이며, 러시아에서 5위에 드는 큰 도시입니다. 카잔에 사는 사람들은, 모스크바와 뻬쩨르부르크 다음으로, 러시아의 3번째 수도라는 자부심도 갖고 있습니다.
도시의 위치도 서방과 동방을 연결하는 교차로에 위치해 있고, Волга (볼가강)과 Казанка (까잔강)의 합류 지점에 위치해 중세 시대로부터 발전해 온 도시로, 2005년 6월에는 도시 탄생 1천년을 축하하는 축전도 열렸습니다. 이 지역에는 고대로부터 발전해 온 작은 마을이 있었는데, 1236년에 몽고의 침입으로 모두 소실되었습니다. 그 후 14세기 말에 Иске (이스케) 정착촌이 생겨났는데, 무역로에서 먼 높은 언덕 위에 위치했었으므로 정착촌의 위치를 옮기는 게 유리하여 강변으로 옮겼고, 그 곳이 현재의 카잔 도시가 위치한 곳입니다. 15세기 초엽에는 카잔이 이 지역의 중심지로 성장했습니다.
러시아의 오래된 고대 도시들이 그렇듯이 카잔도 수 많은 비밀과 미스터리들을 간직한 도시로서, 얽힌 전설들이 많이 있습니다. 전설들은 세대를 거쳐 구전돼 오며 사람들의 기억 속에 전래돼 왔고, 비록 사실은 아니더라도 사람들의 지혜와 창조성과 환상들을 담은 이야기들입니다. 도시의 이름이 카잔이라고 불리게 된 전설도 있는데, 가장 널리 알려진 전설은 3개 입니다. 그 중에 첫째는, 이슬람 왕국 시대에 한 지배자의 아들이 몽골에 인질로 잡혀 있다가 탈출하여 한 강가의 둑에 이르렀는데, 하인에게 명하여 금으로 만든 솥에 강물을 떠오라고 시켰는데 강둑이 워낙 가팔라서 그만 솥을 강에 빠뜨리고 말았고, 그래서 솥을 강물에 빠뜨린 것도 알라의 뜻이라고 여겨 야전용 가마솥을 일컷는 말인 Казан (까잔)이라고 그 강에 이름을 붙였으며, 거기에서 성장된 도시 이름도 까잔이라고 되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다른 전설에서는, 한 임신한 여성이 물지게를 지고 물통을 메고 가다가 이스케 마을에서 강까지가 너무나 먼 거리여서 불평을 했는데, 마침 당시의 지배자가 듣고는 마을을 더 나은 위치로 옮기려 했고, 강에 가까운 언덕에 뱀이 많고 야생 돼지들도 많아 언덕 주위에 불을 질러 태운 후에 그 언덕으로 정착촌을 옮겼는데, 세월이 지나면서 후에 까잔이라는 이름이 생겼다는 이야기입니다. 세번째 전설은, 옛날에 새 도시를 건설할 때에는 인간을 희생 제물로 바쳐 땅에 묻는 관습이 있었는데, 무당이 지배자의 아들을 제물로 지명했지만 충실한 하인이 아들을 숨기고는 죽은 개를 대신 묻었고, 그렇게 해서 정착촌의 건설이 시작되었습니다. 지배자는 귀한 아들의 죽음을 애도하며 슬퍼했는데, 하인이 살아 있는 아들을 데려왔지만 지배자는 한편으로는 행복한 반면, 죽은 개는 정결하지 못한 동물이어서 이슬람의 적에 의해 도시가 침략되어 파괴되고 말 것이라고 걱정했으나, 도시는 이미 건설되었고 후에 까잔이라는 이름이 생겼다는 이야기입니다. 하여튼, 전설들은 전설이고, 카잔은 좋은 지리적 위치에 자리 잡아 번성할 수 있었습니다. 당시에 많은 러시아 왕국들이 있었는데, 1399년에 모스크바의 왕 Юрий Донской (유리 돈스코이)가 카잔 지역에 침입해 도시를 황폐화 시켜, 몽골인이 카잔에 와서 칸국을 건설할 때까지 40년 이상이나 폐허로 남아 있었습니다. 칸국의 건설은 카잔이 도시로 발전하는 재 시작의 계기가 되었습니다.
현재, 도시의 중심에는 Кабан (까반=흰 숫퇘지) 호수가 있는데, 옛날에는 흰 돼지들이 호수 주변에 많이 살았고, 그래서, 그 이름으로 불려지게 되었습니다. 이 호수에도 얽힌 전설이 있는데, 호수 바닥에 보물이 있다고 하는 이야기입니다. хан (칸)의 보물이 있을 것이라는 소문인데, 아직까지 발견되지 않아 보물 사냥꾼들이 비밀을 풀려고 했던 일들도 있었습니다. 모스크바의 발전에 크게 기여한 царь (짜르=왕)인 Иван Грозный (이반 그로즈니)가 카잔을 침략해 온다는 말을 들었을 때, 카잔 칸의 부하들이 칸의 모든 보물들을 호수의 바닥에 숨겼다고 하고, 아무도 그 보물들을 숨긴 위치를 모르도록 운반을 한 하인들을 모두 죽여버렸다고 합니다. 숨긴 보물은 금, 은, 고대의 동전, 보석류로 1톤이 넘는 양으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카잔 кремль (끄례믈=크레믈린) 내에는 지하 통로가 많은데, 화재와 침략에 대비하려고 미로처럼 많이 파 놓았다고 합니다.
카잔에서 가장 유명한 관광 명소는 크레믈린 내에 있는 Сююмбике (슈윰비께) 탑인데, 58미터 높이의 탑이 피사의 사탑처럼 약간 기울어진 모양으로 있고, 도시의 주 상징물들 중의 하나입니다. 역사와 전설 속에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는 여러 가지로 많은데, 카잔 왕국(1438-1552)의 마지막 지배자 칸의 아내였던 슈윰비께의 이름을 딴 탑 입니다. 17세기 초에 전망탑으로 건설되었다는 얘기도 있고, 회교도였던 남편의 명으로 지어졌다는 이야기도 있는 반면에, 모스크바의 왕인 이반 그로즈니가 슈윰비께의 미모를 흠모하여 결혼해 모스크바로 데려가 살길 원했으나 슈윰비께가 거절하였고, 세 번이나 거절한 후에 슈윰비께가 명하여 급히 탑을 건설하라고 했고 가능한 높이 지으라고 한 후에, 탑이 완성되자 탑에 올라 영토와 시민들을 바라보고는, 가장 높은 곳에서 투신하고 말았다는 슬픈 전설이 있습니다. 슈윰비께는, 실제로는 이슬람 귀족 계급인 мурза (무르자)의 딸로 태어나 카잔 칸의 칸과 1533년에 결혼했고 카잔으로 와 살기 시작했으나 행복한 삶을 살지 못했는데, 생의 말년에는 모스크바로 거처를 옮겨 은신을 하며 살았습니다. 탑은 기울어져서 유명한 게 아니라, 아름다운 모양과 전설로 유명해지게 되었습니다.
러시아에서 정교회 신도들로부터 가장 유명하고 존경받는 신성한 икона (이꼬나)는 Икона Казанской Божьей Матерй (까잔스꼬이 보줴이 마떼리)인데, 이에 관한 전설도 있습니다. 이 이꼬나는 너무나 유명해서 수 많은 유사 이꼬나들이 많이 만들어졌는데, 20세기 들어서면서 거짓말 같이 하루 아침에 아무런 흔적도 없이 영영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이 이꼬나가 세상에 모습을 나타낸 경위 자체가 신성하고 기적 같은 일인데, 한 궁수의 딸인 Матрона (마뜨로나)가 꿈을 꾸었는데, 집에 불이 나고 불이 난 후에 부엌에서 이꼬나를 발견할 거라고 부모에게 꿈 얘기를 말했으나, 물론 부모는 믿지 않았습니다. 마뜨로나는 세 번이나 같은 꿈을 꾸었고, 1579년 6월 23일에 실제로 집에 불이 났는데, 불을 끈 후에 가보니 부엌의 화로가 있었던 자리에 한 이꼬나가 있는 걸 발견했습니다. 이렇게 한 소녀의 꿈에서와 같이 발견된 이꼬나는, 엄마가 아기를 빛나는 천으로 감싸고 있는 모습이었는데, 러시아 정교회에서는 엄마를 성모로, 아기는 예수로 간주하고 있습니다. 표정들은 엄숙하며, 아기는 누워 있지 않고 서 있습니다. 사람들은 이꼬나를 성스럽게 모셨고, 모스크바의 이반 왕에게 사본을 만들어 보냈는데, 왕은 기적이 생겼다고 하며 그 집이 있었던 자리에 교회를 짓도록 했고, 그 교회에 그 이꼬나를 모셔 오래도록 보존해 왔습니다. 이반 왕의 아들인 Фёдор Иванович (표도르 이바노비치) 왕이 보석들과 금으로 그 이꼬나를 치장하도록 했고 Екатерина II (캐서린 2세)도 다이어몬드로 더 치장을 하도록 했는데, 그러다 보니 도난의 표적물이 되기도 했습니다. 1904년 6월 29일 아침에, 한 수녀가 교회의 문이 파손되고 이꼬나가 사라진 걸 발견하여 경찰에 신고를 했는데, 현재까지도 아무도 종적을 모르고 있는 현실이며 언젠가는 어디에선가 발견될 거라는 희망을 품고 있을 뿐입니다. 한 수녀원장은 러시아가 위기에 처했을 때마다 그 이꼬나가 구해준 걸 감사하며, 러시아가 곤경에 처하면 도움을 주러 나타날 것이라고 믿는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1612년에 폴란드와의 전쟁 발발 시에 폴란드 군대가 모스크바를 포위하고 약탈과 겁탈을 일삼았는데, 한 수도사가 3일을 금식하면서 이꼬나에 기도했는데, 꿈에 내일 Пожарский (빠좌르스끼)가 러시아를 구할 것이라는 계시를 받았고, 그 소식이 퍼져 나갔으며 결국엔 러시아가 승리할 수 있었고, 나폴레옹과의 전쟁 및 폴타바 전투 등에서 승리하는 등의 기적으로, 이 이꼬나는 새 희망의 상징과 모든 근심과 걱정에 대해 기도하며 소원을 비는 상징으로 지금도 존중되고 있습니다. 매년마다 두 번씩 6월 21일과 11월 4일을 이 이꼬나의 성스런 축일로 정교회에서는 정해 놓고 있습니다. 피터대제가 뻬쪠르부르크에 까잔 성당을 건설할 때에도 이꼬나의 복사본을 만들었고, 사회주의 시절에도 종교가 법적으로 금지되지는 않았지만 성직자 직위에 있던 코뮤니스트들조차도 이꼬나 앞에서 노래를 부르며 조국의 안녕을 기원했고, 어느 러시아 가족의 가정에나 있으며, 그리고, 자녀들이 결혼할 때면 부모들이 건강과 행복을 비는 마음으로 이 이꼬나를 선물하는 풍습이 있습니다. 러시아 사람들은 보수적인 성향이 강하며 조국 또는 모국이라고 표현하는 자신의 나라에 대해, 아름다운 조국에 대한 사랑이 애착을 넘을 정도로 강하며, 지금도 젊은 세대들조차도 '푸틴? 푸틴이 누구지?'라고 표현할 정도로 조용한 혁명 속에 내일을 기다린다고 할 수 있습니다.
카잔은 많은 관광객들이 방문하는 곳으로, 러시아 스포츠의 수도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많은 스포츠 경기가 열리며, 전통적으로 몽골과 연관이 있는 곳으로 타타르의 음식들도 유명합니다.
가볼만한 유명한 거리는 카잔의 중심가인 Бауман (바우만) 거리로, 많은 타타르 음식점들과 카페들이 있습니다. 피터대제 시절에 많은 독일인 의사와 기술자들이 러시아로 이주해 마을을 형성하며 살았고, 소비에트 혁명의 혁명가 바우만도 이 지역 출신입니다. 사회주의 시절에는, 모든 도시의 중심지에 주 도로는 '레닌 거리'로, 다른 주요 도로들은 그 지역의 혁명가들의 이름을 따서 붙여지곤 했었습니다.
바우만 거리에 있는 역사 깊은 타타르 식당 Дом Чая (돔 차야)는 처음에는 홍차를 파는 카페로 시작했는데, 가격도 싸고 부페식으로 다양한 타타르 음식을 맛볼 수 있습니다. 타타르 음식의 주요 재료는 육류로, 말고기를 많이 사용하며, 훈제나 소금으로 간한 음식들이 많고, 이동하는 생활에서 거주하는 생활로 거주 방식은 바뀌었으나 음식은 여전히 그대로 변치 않고 남아 있습니다. 이슬람이어서 돼지 고기는 주로 먹지 않으나, 19세기에는 농업이 아주 발전해 농식물을 사용한 음식도 다양합니다.
가장 유명한 타타르 음식은 Эчпочмак (에치포치막)으로, 러시아와 우즈베키스탄 등의 중앙 아시아에서 보편적인 음식인 самса (쌈사)처럼 생긴 삼각형 모양의 파이 속에 감자와 양파, 고기가 들어 있습니다. Кыстыбый (끄쓰뜨브이)는 속에 으깬 감자와 조로 만든 죽이 들어 있고, Токмач (똑마치)는 수프로서 집에서 만든 아주 가는 국수와 야채가 들어 있습니다. Шурпа (수르파)는 감자, 야채, 양파를 넣은 수프로, 수프에는 항상 육류가 따로 곁들여지는데, 육류가 항상 주 요리입니다. Губадия (구바디야)는 속에 여러 겹의 육류, 코티지 치즈, 요리한 달걀, 쌀, 말린 포도 등이 들어 있는 파이입니다. 아래 사진에 화병과 차 주전자와 함께 있는 파이가 Губадия (구바디야)인데, 카잔에 사는 아내의 친구가 방문한 우리를 위해 직접 구운 것입니다. Белиш (벨리쉬)는 위의 사진에 접시에 담긴 먹음직스럽게 잘 익은 파이로, 사각형으로 자른 감자와 양고기 또는 소고기를 반죽으로 감싼 주먹 크기의 파이인데, 카잔에 사시는 장모님의 친구분이 방문한 우리를 위해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Талкыш калеве (딸킈시 깔레베)는 디저트로, 밀가루와 꿀로 만든 과자로서 기름에 튀겨 만듭니다. 가장 유명한 디저트는 Чак-чак (착착)인데, 꿀과 시럽을 넣은 반죽을 가늘게 해 기름에 튀긴 것으로, 3개월 이상 보관이 가능해 선물용으로도 좋습니다. Кырт (끄르트)는 топлёное молоко (따쁠료나예 멀라꼬)로 만든 연한 갈색의 코티지 치즈로 단 맛과 짠 맛이 있습니다. 아래 사진에 투명한 용기에 담긴 것입니다.
Чак-чак은 서울 동대문의 러시아 상품점들이나 부산 텍사스 거리의 러시아 상품점들, 또는 전국에 있는 임페리아 체인점들에서도 구입해 맛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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