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에서는, 전쟁에서 조국을 위해 희생한 사람들을 기리고 조국을 승리로 지켜주신 신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성당이나 사원들을 건립해 왔습니다. 모스크바의 붉은광장에 있는 아름다운 바실리성당도, 이반 4세가 300여 년에 걸친 몽골의 지배를 벗어 나려는 전투에서 승리하고 러시아의 독립을 이룬 후, 같은 의미로 건축한 것입니다.
러시아의 알렉산드르 1세 때인 1812년 나폴레옹이 당시의 막강한 강대국 러시아를 침공했다가 수도인 뻬쩨르부르크에는 가지도 못하고 모스크바에서 겨울을 맞아 견디지 못하고 퇴각한 후, 전쟁의 승리를 구세주 그리스도에게 영광을 돌리고 러시아 국민들의 희생을 기리고자 알렉산드르 1세가 성당을 건립할 계획을 수립했습니다.
모스크바에서 가장 지형이 높은 참새언덕에 화려한 신고전주의 양식으로 짓도록 계획을 세웠으나, 니꼴라이 1세가 황제가 된 후 못마땅하게 여겨 설계를 변경하도록 지시했고, 러시아의 유명한 건축가가 러시아의 전통적인 디자인을 반영하여 붉은광장에 있는 바실리성당의 지붕 모양과 같은 양파 모양의 지붕을 가진 웅장한 성당건물을 설계했습니다. 그리고, 황제가 성당을 지을 장소를 변경하도록 명하여 크레믈린에서 가까운 모스크바 강변에 건설하도록 위치도 바뀌게 되었습니다.
성당의 이름은 구세주그리스도성당 (храм Христа Спасителя - 흐람 흐리스따 스빠씨찔랴) 으로서, 1838년에 첫 기초석이 놓이고 45년 동안에 걸쳐 건설되었는데, 건설에는 러시아 최고의 화가들인 Иван Н. Крамской (이반 끄람스꼬이), Василий И. Суриков (바실리 수리꼬프), Василий П. Верещагин (바실리 볘례샤긴) 등이 벽화와 천정화를 그리는데 참여 했습니다. 내부의 벽은 대리석, 화강암, 및 진귀한 돌들로 장식되었고 수 많은 전쟁에서의 승리를 묘사한 부조로 장식되었습니다. 성당 내부의 아랫쪽 벽은 모자이크로 장식되고 상부는 그림으로 장식되었으며, 지붕과 십자가, 크고 무거운 14개의 종을 만드는데 422Kg 의 순금과 176톤의 구리가 사용되었습니다.
성당은 1883년 5월 러시아의 새 황제 알렉산드르 3세의 즉위식에 맞추어 첫 미사를 시작했으며, 1917년 까지는 아주 성스런 장소로 러시아 정교회의 종교인들의 핵심적인 장소들 중의 하나였습니다.
1917년 사회주의혁명이 일어나고 '종교는 인민의 마약' 이라는 슬로건으로, 비록 헌법으로는 종교의 자유가 명시되고 있었지만 공산주의자들은 '신은 없다'고 교과서에 조차 나타내고 있었으므로, 성당에 나가고 세례를 받는 일들이 어려워졌고 1918년에는 성당에서 미사가 금지되었습니다. 볼셰비키가 권력을 잡았을 때 볼셰비키는 러시아의 국보와 같은 궁전을 비롯한 전통적인 건물들을 파손하지 않고 박물관 등으로 보존하겠다는 약속을 했지만, 러시아와 모스크바의 중심에 있는 종교의 상징적인 건물인 이 성당을 두고 볼 수 없었고, 새 국가, 새 사회를 건설하는 이념에 적합한 상징으로서 '소비에트연방의 전당'을 짓기로 결정함으로써 1931년 12월 이 성당을 파괴하고 말았습니다.
성당의 내부에는 수 많은 예술품들과 국보급 물품들이 있었는데, 후에 사람들은 파괴의 진실은 내부에 있던 고가의 예술품들을 빼돌리는 수단일 수도 있었다는 얘기들을 합니다. 건물은 두꺼운 벽과 견고한 짜임새로 수 차례에 걸쳐 폭파해야 했습니다.
전당을 짓는 공사는 재정적 문제로 연기되고 또한 모스크바 강의 홍수 때 저류지로 사용되는 등으로 연기되다가 세계대전으로 중지된 후에 세계대전이 종료된 후에는 아무도 전당을 짓는 공사를 계속할 생각조차 없게 되었으며, 후르시쵸프 시절에 시민을 위한 수영장을 그 곳에 건립, 세계에서 가장 큰 수영장을 건설하여 시민들에게 개방했는데, 이는 모스크바 시내에서 겨울에 주변에는 눈이 수북히 쌓여 있는 가운데 수영장에서 수영하는 러시아 사람들을 외국사람들에게 보여주는 전시효과도 있었습니다.
1989년 러시아 정교회가 성당을 예전처럼 똑 같이 복원하기로 결정하고, 1995년 1월 크리스마스에 기초석을 놓고 공사를 재개, 2000년 12월 내, 외부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그러나, 옛날과는 달리 상부가 더 높고 지하가 새로 생기는 등의 변화가 있었으며 내부 장식은 벽에 직접 그림을 그리지 않고 장식을 갖다 붙이는 식으로 시공되었습니다. 성당의 최초시공 때에는 깊은 신앙심으로 오랜 세월에 걸쳐 최고의 직공과 화가들이 작업에 헌신했으나, 현재의 시공은 발달된 기술력과 장비로 보다 짧은 기간에 속성으로 이루어 졌습니다.
성당은 러시아 정교회의 중심으로 등장했지만, 모스크바에 뿌리를 두고 살고 있는 러시아 사람들은 이 성당이 복원된 후에도 그 권위를 인정하기 보다는 하나의 프로젝트이며 비지니스일 뿐이라는 생각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러시아 사람들은 정교회 성당에 들어 갈 때 여성들은 머리카락을 Платок (머리에 쓰는 스카프) 으로 가리게 되어 있는데, 성스런 장소에 수영장을 만들어 머리카락을 가리기는 커녕 온 몸을 다 드러내는 수영복 만 입고 드나들 수 있는 장소로서 이미 타락했던 장소로 여기며, 이런 장소에 성당을 다시 건립한 것에 대한 받아 들일 수 없는 신성함에 대한 모독과 같은 마음들이 있습니다. 풍자가들은, 'Был храм, потом-хлам, а теперь- срам' (블 흐람, 빠똠 흘람, 아 찌뻬르 스람) 이라고 하여 '전에는 성당, 그리곤 폐물, 지금은 치욕' 이라는 얘기도 했습니다. 러시아정교는 다른 종교에 비해 무척 순수함, 진지함 과 엄격함이 사람들의 마음 속에 지켜지고 있는 종교입니다.
사람들이 기도하러 가는, 성스러움을 지키고 있는 Намоленный храм 이라고 불리는 성당들이 새로 건립된 반짝반짝하는 성당보다는 보다 러시아 정교에 진실하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보다 많이 있습니다.
어쨋든, 관광으로라도 이 성당에 가 보면 성당의 외부와 내부를 엄숙하고 경건한 마음으로 둘러 봄은 물론, 성당의 아래 층에 있는 자그마한 음식방에서 소박하고 검소함을 경험해 보는 조촐한 점심식사를 해 보는 것도 모스크바에서의 좋은 추억이 될 것입니다.
(행여나 가 보시려는 분이 계시면, 입맛에 안 맞더라도 한 조각이라도 남기면 안된다는 것 쯤은 상식으로 예절로 아실테지요... 우리나라 사찰에 가서 점심공양을 하게 되더라도 밥풀 한 알 이라도 남기면 예의가 아니라는 것 쯤은 아시죠...)
구세주그리스도성당 (храм Христа Спасител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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