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Россия 소식

러시아의 천재 피아니스트 Денис Мацуев

by Дона 2016. 11. 27.

러시아의 천재 피아니스트 Денис Мацуев (1975.6.11. 뎨스 마예프) 의 피아노 콘서트가 내년 1월 15일, 모스크바의 Крокус 홀 에서 러시아 국립 오케스트라와 협연으로 열립니다. 연주 곡목은 라흐마니노프의 협주곡이며 2시간 공연 입니다.


소비에트 연방 시절에 시베리아 지역의 이르쿠츠크에서 태어난 Денис Мацуев는, 조부모와 부모가 모두 음악가인 집안에서 자랐습니다. 부모는 이르쿠츠크 지역에서 유명한 피아니스트였고 아버지는 드라마 공연 극장의 음악부문 총감독 이었는데, 1970-80년대에는 이르쿠츠크의 극장이 소비에트 연방에서 아주 유명한 극장이었습니다. 부모는 아들에게 음악가가 되라고 종용하지는 않았고 아들이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자라도록 배려해 주었는데, Мацуев 가 3 살이 되었을 때 어느 날 피아노 앞으로 다가가서는 당시의 TV 에서 날씨 뉴스 전에 배경음악으로 항상 나오던 곡을 자연스럽게 틀림이 없이 연주를 했습니다. 그 일이 있고 부터 음악가 였던 할머니가 직장을 그만 두고 손자에게 음악을 가르치는 데 주력하게 되었습니다. 9 살 때에 이르쿠츠크의 오케스트라와 첫 개인 콘서트를 열었는데, 어린이가 빨간 삐오녜르 스카프를 목에 매고 하이든의 곡을 피아노로 연주해 많은 사랑과 칭찬을 받았습니다. 실제 공연 전에 리허설이 끝난 후, 한 바이얼리니스트에게 가서 한 군데에서 실수를 했다고 지적을 해 주기도 해 모두를 놀라게 했습니다.


러시아에서 음악가는 조용하고 안경을 끼고 손에는 악기와 악보를 들고 있는 이미지가 보편적인데 반해, 그는 아주 다르게 활동적이고 운동을 좋아하는 편이었습니다. 축구를 하다가 두번이나 손가락을 다쳤고 아이들과 싸우다 팔을 다치기도 했으며, 학교의 동아리 활동에도 열심이어서 기타, 드럼과 같은 악기에도 열정을 쏟았습니다. 많은 취미 생활 중에도 운동을 특히 좋아해 축구에는 거의 미칠 정도로 축구는 그의 인생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데, 그의 생활 방식은, 어려서 부터 재능과 노력이 합쳐져야 좋은 결과를 얻는다는 것을 믿고 따르긴 하지만, 하루에 8시간 씩 피아노 앞에 앉아 연습을 하는 것은 머리를 좀 먹는 짓이라고 하면서, 음악을 하는 데는 상쾌한 머리가 필요하므로 매일 축구장에서 6시간 씩 축구 연습을 하고 피아노는 2시간 연습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자유롭게 축구를 하면서 사는 것이 인생의 즐거움이라고 할 정도로 축구를 사랑했습니다.



학교를 졸업하고 음악 대학에 입학 하면서 뛰어난 피아노 재능과 핸섬한 외모, 활력이 넘치는 운동선수 스타일 몸매, 지성적인 태도에 모두에게 인기가 높았는데, 이르쿠츠크 청소년 축구팀에서 선수로 활약하면서 축구에 대한 열정을 이어 갔습니다. 이르쿠츠크에서 열렸던 한 연주회에서 모스크바의 음악학교 (Московская консерватория) 교사의 눈에 띄게 되었습니다. 러시아에서는 소비에트 연방 시절 부터 음악 뿐 만 아니라 스포츠 등에서도 교사들이 전국을 다니며 재능있는 어린 아이들을 뽑아 국가에서 무상으로 재능을 키워 주는 시스템이 있었는데, 이에 따라 모스크바 음악학교에 선발되어 가게 되었습니다. 음악을 하는 청소년들의 꿈이 이 학교에 입학을 하는 것이었지만, 그는 축구를 그만 두고 모스크바로 가는 것에 대해 다른 곳으로 도망을 가 숨어버릴까 생각할 정도로 망설였습니다. 모스크바에 가면 지금도 유명한 러시아의 축구팀인 스빠르딱을 직접 볼 수 있게 될 거라는 부모의 설득에 1991년 가족과 함께 모두 모스크바로 이사를 했는데, 당시는 고르바쵸프의 뻬레스뜨로이까로 상점에는 아무런 살 물품이 없을 정도로 힘든 시기였습니다. 소비에트 연방 시절에는 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을 가지면, 또는 재능있는 인재나 나라에 큰 공을 세운 국민에게는 국가에서 집을 무상으로 주었으나, 소비에트 체제가 붕괴하고 자본주의 체제로 변하면서 아파트는 사고 파는 거래의 사유 재산이 되어, 그의 가족은 이르쿠츠크에서 넓은 집에서 풍족하게 살던 것 과는 달리 모스크바에서 방 하나인 아파트를 구해 궁핍하게 지냈습니다.


러시아 젊은 음악 인재 선발 경연대회인 Новые имена (새로운 이름) 에 참가하여 우승함으로써 젊은 나이에 소비에트 연방에서 이름을 알리게 되었고, 국내와 국외 연주를 다니면서 세계적으로 유명해지게 되었습니다. 16살 때에 영국의 버킹검 궁전에서 왕족들 앞에서 피아노 연주를 했고, 뉴욕의 UN 빌딩에서, 로마의 교황청에서 피아노 연주회를 열었으며, 유명세에 따라 스폰서들도 생기게 되어 생활이 조금씩 나아지게 되었습니다. 당시에 학생의 신분으로 300달러의 월 급여를 받았는데, 그 때에는 어마어마한 액수였습니다. 18살 때인 1993년 남아프리카의 요하네스버그에서 열렸던 국제 음악 콩쿠르에서 국제 대회 첫 우승을 했고, 23살 때인 1998년에는 4년 마다 열리는 차이코프스키 음악 경연대회에 참가하여 우승을 해 세계를 놀라게 했습니다. 소비에트 연방에서는 국제 대회에서 우승을 한 사람에게는 자동차라든지 금일봉을 선물로 주었는데, 한번은 옐찐 대통령이 금일봉을 선물로 주면서 유머스럽게 '미국 달러'가 이 봉투 안에 들어있다고 하기도 했습니다. 해외 여행이 자유롭지 못했고 미국 청바지와 달러가 귀했던 당시의 상황에서는 그럴만도 했습니다.



해 마다 160여 회의 콘서트를 소화하는 가장 바쁜 음악가 중의 한 명이지만 매 번 감정에 몰입한 연주로 격찬을 받고 있고, 세계적인 오케스트라 들이 협연을 하기위해 줄을 서 있지만 그는 러시아의 작은 도시들을 50여 군데 순회하며 자신 만의 연주회를 갖기를 계획하고 있습니다. 현재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피아노 재즈 음악 연주자로 꼽히고 있는 등, 독특한 음악 세계를 펼치고 있으며, 새로운 젊은 음악가들을 선발하기 위해 자신이 설립한 음악 경연대회도 이끌고 있습니다. 그는 이런 음악계의 바쁜 일정을 즐기고 있으면서도 시간 날 때 마다 자선 축구대회에 참가를 하고, 일 년에 두 세번은 스빠르딱 축구 경기를 관람하러 경기장에 갑니다. 2m 에 가까운 장대 키에, 러시아의 동화와 전설에 나오는 나라를 지켜낸 건장하고 강한 영웅 (сибирский богатырь) 들과 같은 체격으로 우람한 외모를 보이는 피아니스트 입니다.


Мацуев 가 파리에서의 콘서트를 마친 후에, 폐암으로 사망한 Сергей Рахманинов (쎄르이 라흐니노프)의 아들이 Мацуев 에게 금연을 하면 큰 선물을 주겠다고 제안했고 Мацуев 가 금연을 하자, Рахманинов 가 작곡 했으나 일반에게 알려지지 않았던 сюитаФуга 의 악보를 약속대로 선물로 주었습니다. Мацуев 는 Рахманинов 가 스위스로 이민을 가서 살았던 집에서 그 곡들의 연주와 녹음을 했습니다.


현재는, 발쇼이 극장의 프리마 발레 댄서 Екатерина Шипулина (예까쩨나 쉬리나) 와 결혼을 하여, 41살인 올해 10월 말에 첫 딸을 얻어 모스크바에서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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