쎄씨가 태어 난 후, 한달 가량 지났을 때 모스크바에 사는 아내의 친구 집에서 처음 쎄씨를 데려 올 때는 손바닥에 올려 놓을 수 있을 만큼 작고 드마보이 처럼 부시시한 새하얀 털에 꼬리 끝에만 작은 검은 색의 털이 나 있는게 정말 귀엽고도 우스꽝스럽기도 했습니다.
한달 만에 엄마에게서 떨어지는게 좀 빠른 면도 있었지만 그 때는 벌써 혼자 음식을 먹기 시작할 때여서 괜찮다고 생각했었고, 영리하기도 해서 일주일 만에 대소변 보는 곳을 가려서 깔끔하게 처리하곤 했습니다. 자라면서 갈색과 검은 색의 털이 자라 샴 고양이의 멋진 모습이 되었는데, 어릴 때는 활기가 넘쳐서 머리 위로 뛰어 다니기도 하면서 어처구니 없는 행동들을 하기도 했고, 집에 사람이 있을 때는 전혀 근처에도 안 가다가 집에 사람이 없으면 화분의 흙을 파 헤쳐 화초를 쓰러뜨려 놓곤 하기도 했고, 기둥에 카펫 조각을 붙여 긁을 수 있도록 만들어 주었음에도 여러 해가 지나는 동안 소파를 긁어 너덜 너덜하게 만들어 놓곤 했습니다.
젊을 때는 에어컨 위에도 단숨에 뛰어 올라 가고, 책장의 가운데 칸에도 뛰어 올라가 앉아 어디 있는지 한참씩 찾게 만들기도 했는데, 한번은 택배가 온 사이 순간적으로 문을 열어 둔 사이에 빠져나가 집에 없는 줄을 몰랐다가 두어시간이 지난 후에야 알고 찾아 다니다가 한층 아래 아파트 계단에서 찾아 낸 적도 있었습니다.
커튼 뒤에 숨어 '쎄씨 어디있니?' 하고 찾는 놀이를 하기를 좋아 했고, 가슴에 올라 어깨에 기대어 '골골골'하며 한참씩 소리를 내며 사랑을 표현하기를 좋아했고, 다리 주위를 돌며 꼬리로 다리를 감싸거나 살며시 부비면서 애정을 나타내기를 좋아했었습니다. 앉아 있는 의자에 와서 무릎에 올라가도 되는지 물어 보기라도 하는듯이 의자를 잡고 서서는 빤히 올려다 보며 허락을 기다리고, 무릎에 올라앉아 있다가는 책상 위 햇볕이 드는 곳에 웅크리고 앉아 바라보기를 즐기기도 했습니다.
두,세달 전에 몇번 토한 적이 있었는데 병원에 데려 갔지만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고 지내왔는데, 지난 달 14번 째 생일이 지난 후인 약 3주 전에 검은 묽은 변과 함께 젤리 같은 변을 보면서 먹는 양이 줄었고 병원에 갔더니 FIP 라고 하면서 치사율이 높고 확진이 어려우며 치료가 불가능하므로 나이가 있는 만큼 때가 되었다는 얘기를 들었고, 링거주사와 영양제 주사를 맞고 집에 왔는데 활기가 돌고 하더니 일주일 정도 지나자 더 안 좋아져서 다른 병원엘 데리고 갔는데, 거기서는 림프종이라고 암이라고 그것도 말기라고 했습니다. 병원에서 처방해 준 스테로이드제와 진통제로 견디며 거의 강제로 먹이다시피 하는 음식과 즙이 많은 통조림, 가루로 갈은 고형식을 손바닥에 얹어 입에 대어 주면 햝아 먹는 정도로 연명해 가며, 등뼈가 앙상하게 손에 잡히도록 수척하게 말라 갔고, 기력이 없어 화장실에 가기도 힘들어 해서 화장실에 옮겨다 주어 변을 보도록 해 주었습니다. 고통이 심할 것 같은 데도 그저 조용하고 맥없이 있을 뿐, 어떤 소리도 내지 않았고, 하루는 좀 나아 보이다가 또 하루는 더 안좋아지는 나날이 계속 되었고, 눈동자의 동공이 풀어지는 것을 보고 마지막 날이 다가 옴을 알았습니다. 호흡하기도 힘들어 해서 병원에 데려가서 링거를 놓아 줄까 생각도 했지만 더 이상의 고통을 더해 주는 것은 피하고 싶었습니다.
새벽 1시 경에, 힘이 없어 걷지도 못하던 쎄씨가 침대 위로 뛰어 올라 오더니 숨을 할딱이며 입가에 푸른색이 돌 정도로 힘들어 했고 가슴에 안고 쓰다듬어 주기를 한참 후에 진정이 되어서는 우리 손과 팔을 한참 동안이나 햝아 주더니, 현관을 돌아 이방 저방을 기웃거리며 돌아 보고는 안방 문간에 기진 맥진 해서 앉았습니다. 쎄씨가 그런 모습을 보이는 걸 보고 마지막 작별인사를 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침대에 안아 올려 함께 데리고 있었는데 입으로는 숨을 쉬지 않으면서 배만 움직이는 때도 가끔 있었고 그러다가, 아침 7시가 조금 지난 때에 숨을 한번 크게 쉬더니 작은 소리와 함께 저 세상으로 떠나고 말았습니다.
눈을 감겨 주고, 호수가 바라 보이는 양지바른 언덕에 제일 좋아했던 통조림과 함께 묻어 주었지만, 혼자 있기를 싫어하고 항상 가족과 함께 주변에 있기를 좋아했고 가족의 한 일원으로 여기며 살아 온 쎄씨가, 차가운 땅속에 그 곳에 있는 게 아니라 언제나 우리 가슴 속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무덤 위에 놓아 준 활짝 핀 붉은 장미 한 송이로 영혼을 달래며, 다음 생에는 사람으로 태어나 오래 행복하게 살라고 기도 했습니다.
집안이 빈 것 같고 허전한 느낌에 슬픔이 밀려 옵니다. 쎄씨는 우리에게 너무도 큰 사랑을 주고 떠났습니다.
사랑하는 쎄씨야,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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