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3월 1일은 대한의 독립을 외친 유관순 열사의 애국심을 가슴에 새깁니다. 선열들이 목숨 바쳐 지키신 우리의 조국과 태극기를 뒤로 하고 한반도기를 내세우는 일부 한국인들은 오늘 부끄러운 자신을 돌아보길 바랍니다.
1942년 1월 27일 소비에트 연방의 유력 신문인 Правда (프라우다=진실)에는 Таня (타냐)라는 제목으로 2차 세계 대전 중에 독일군에 포로가 되어 영웅적인 삶을 마감한 한 젊은 여성의 기사가 실렸습니다. 그녀의 실제 이름은 Зоя Космодемьянская (조야 코스모딤얀스까야)로 밝혀졌는데, Таня (타냐)라는 이름은 자신의 실제 신분을 숨기기 위한 가명이었으며 러시아에서 사회주의 혁명 후에 일어났던 러시아 내전에서의 영웅 이름에서 따온 것이었습니다.
그녀는 1923년 9월 13일, 모스크바의 남쪽에 위치한 소비에트 연방의 한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는데, 부모는 선생님이었고 할아버지는 정교회의 성직자였습니다. 사회주의 혁명 후에 종교 활동은 모두 금지되었고 그런 내력으로 인해 Зоя (조야)는 사회주의 시대에 힘든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Зоя (조야)가 6살 되던 해에 Зоя (조야)의 부모는 시베리아로 이주를 해 그곳에서 1년 이상을 살았는데, Зоя (조야)의 언니가 공산당원이어서 모스크바 근교로 가족이 이사를 오도록 도왔습니다. Зоя (조야)는 학교에서 우수한 학생이었고 진실과 공정함을 따지는 올 곧고 직설적인 성격의 학생이었습니다.
18살이 되던 해에 Зоя (조야)는 어린 나이에 군 입대에 자원을 했고, 친구들과 함께 특수 훈련소에 입소를 해서 방해공작 및 게릴라전을 습득했습니다. 나이가 어리면서 체력과 정신력이 좋은 인원들로 선정된 특수 부대는 전쟁터와 인근에서 사람들사이에 평범하게 숨어서 임무를 수행하기에 적합했고, 단기간의 교육을 받고 바로 임무에 투입이 되었으나 실제 임무는 아주 위험한 임무들이 많았습니다. 독일군이 모스크바에 거의 근접한 시점에 모스크바의 서부전선 지역으로 파견된 그녀는 독일이 점령한 지역과 점령이 예상되는 지역들에서 임무를 수행했습니다. 그녀에게 배당된 첫 임무는 모스크바로의 고속도로 진입 차단을 위해 도로에 지뢰를 매설하는 일이었고 그녀는 동료들과 함께 성공적으로 임무를 완수했습니다. 당시에 스탈린은 독일군이 진격을 하더라도 소비에트 연방에서 물자를 조달하지 못하도록 음식과 물, 거주지등을 모두 사전에 태워버리는 초토화 정책으로 독일군이 점령하는 지역을 미리 황폐화시켰습니다.
대원들에게 지급되는 무기는 아주 빈약해, Коктейль Молотова (화염병)으로 모스크바를 지키고 독일군의 진격 속도를 늦추려 했던 것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러나, 대원들은 화염병으로 독일군들의 숙소를 습격하는 등의 많은 활약을 해 엄청난 피해를 주어 독일군들에게는 아주 성가신 존재가 되었습니다.
Зоя (조야)가 소속된 팀은 10명이었는데 그 중에 2명이 살아남았으나 남자 대원이 배반을 함으로써, Зоя (조야)는 한 달도 안 되는 짧은 활동 끝에 독일군에 생포되고 말았습니다. 생포된 후에 조야는 물고문과 손톱이 뽑히는 심한 고문을 받았으나 입을 다물고 오직 자신의 이름만을 말하며 어떤 정보도 발설하지 않았습니다. 독일군은 매섭도록 차가운 날씨에 고문으로 인해 피투성이가 된 그녀의 몸을 일부러 사람들에게 보여주려 나체에 가까운 몸을 이리저리 끌고 다녔습니다. 온 몸에 덴 자국과 찔린 자국들이 낭자했고 이빨도 모두 뽑힌 상태였으나 Зоя (조야)는 꼿꼿하게 머리를 치켜들고 절대 숙이지 않았습니다. 1941년 11월 29일, 독일군은 온 마을 사람들을 모두 모아 놓고 목을 매달아 그녀를 교수형에 처했습니다. 독일군은 시신을 칼로 훼손한 채 한 달 이상이 넘도록 그대로 방치해 두었습니다. 독일 신문사의 기자가 사진을 찍었고 그 사진을 마을마다 붙이며 독일군은 소비에트 연방에 겁을 주려고 했으나, 러시아 사람들의 애국심은 더 불타올랐습니다. Зоя (조야)는 죽음을 앞둔 자리에서 목청을 다해 힘껏 외치며, 우리 조국을 지키고 맞서 싸우자면서 남은 한 사람까지 조국을 지키기 위해 투쟁을 할 것을 독려했습니다.
지금 Зоя (조야)는 모스크바의 Новодевичье кладбище (노바뎨비치 수도원)의 묘지에 안장되어 잠들어 있고, 러시아 독립의 상징, 제국주의에 대한 항거의 상징으로 빛나고 있습니다.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이 NATO에 동진 정책을 멈추라고 경고를 보냈듯이, 동구권 국가들을 점령하고 러시아를 옭죄는 미국과 NATO, 그리고 NATO에 가입이 되고 말 운명에 처한 우크라이나에 대한, 러시아가 자국의 생존을 위해 할 수 밖에는 없는 최소한의 생존권 확보 및 극단적인 자구책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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